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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라메키 스타 로드

키라메키 스타 로드 (Kirameki Star Road Ver 2 10j 1997 08 29) · 1997 · Ta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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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 게임에서 문제가 화면에 글로 나오지 않고 스피커에서 흘러나온다면 어떨까요. 키라메키 스타 로드는 그 발상으로 만들어진 게임입니다. 곡의 한 대목이 재생되고, 제한 시간 안에 그 곡의 제목이나 부른 사람을 골라야 합니다. 오락실이라는 시끄러운 공간에서 소리를 듣고 답하게 만든다는 것 자체가 도전적인 선택이었고, 그만큼 이 게임이 놓인 자리는 조용한 구석이거나 헤드폰이 딸린 기계 앞이었습니다.

키라메키 스타 로드(Kirameki Star Road)는 타이토가 1997년에 내놓은 아케이드 퀴즈 게임입니다. 플레이어는 연예 기획자 입장이 되어 문제를 맞혀 나가고, 정답을 쌓을수록 담당하는 아이돌들의 인기가 올라가는 구성입니다. 정해진 수의 문제를 넘기면 성적을 평가받고, 어느 계층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화면이 이어집니다. 문제와 화면 구성이 전부 일본어로 되어 있고 다루는 소재도 당시 일본 대중음악이라, 처음부터 일본 안에서 소비될 것을 전제로 만들어진 게임입니다.

키라메키 스타 로드 보드·카드 게임 화면 1 - 오락실 (1997)

소리로 내는 문제라는 것

음악을 듣고 맞히는 문제는 글자로 내는 문제와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글로 된 문제는 읽고 생각할 시간을 자기가 조절할 수 있지만, 소리는 흘러가 버립니다. 앞부분을 놓치면 되돌릴 수 없고, 제한 시간은 곡이 재생되는 동안에도 계속 줄어듭니다. 그래서 이 방식의 퀴즈는 아는지 모르는지가 훨씬 빨리 판가름 납니다. 아는 곡이면 앞의 두세 마디만 듣고도 손이 먼저 가고, 모르는 곡이면 끝까지 들어도 답이 안 나옵니다.

이런 구조에서 요령이라 할 만한 것은 하나입니다. 모르는 문제에 시간을 다 쓰지 않는 것입니다. 대개 이런 게임은 선택지가 넷쯤 주어지는데, 확신이 없을 때 끝까지 고민하다 시간을 넘기면 아무것도 못 고른 채 오답 처리됩니다. 반쯤 짐작이라도 되면 시간이 남아 있을 때 찍는 편이 낫습니다.

곡의 어느 대목이 나오는지도 힌트가 됩니다. 후렴이 나오면 대체로 널리 알려진 곡이고, 전주나 간주가 나오면 그 곡을 제대로 아는 사람만 맞히라고 낸 문제입니다. 재생되는 부분의 성격으로 문제의 난이도를 가늠하고, 어려운 쪽이다 싶으면 빨리 판단을 내리는 것이 시간 관리에 도움이 됩니다.

키라메키 스타 로드 보드·카드 게임 화면 2 - 오락실 (1997)

기획자가 되는 구성

단순히 문제를 풀고 점수를 받는 데서 끝내지 않고, 담당 아이돌의 인기가 올라가는 이야기를 얹은 것이 이 게임의 성격을 정합니다. 정답을 맞히는 행위가 곧 담당 가수를 키우는 것으로 번역되니, 판이 이어질수록 계속하고 싶은 이유가 생깁니다. 오락실 퀴즈 게임은 문제를 틀리면 그대로 끝나는 냉정한 구조인데, 그 냉정함을 이야기로 감싼 셈입니다.

성적을 어느 계층에서 인기를 얻었는지로 보여 주는 장치도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맞힌 문제의 성격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니, 자기가 어떤 음악을 아는 사람인지가 화면에 드러납니다. 옛날 곡을 잘 맞히는 사람과 최신 곡을 잘 맞히는 사람의 결과가 다르게 나오는 구조는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에게도 볼거리가 됩니다.

타이토와 F3 시절의 퀴즈 게임

이 게임은 타이토의 F3 시스템 기판에서 돌아갔습니다. F3는 1990년대 중반 타이토의 주력 기판으로, 슈팅과 액션에서 이름난 작품들을 여럿 낳았지만 그만큼 음원 성능도 좋았습니다. 음악을 문제로 내는 게임을 만들려면 음질이 받쳐 줘야 하는데, 이 기판이 그 조건을 채워 준 것입니다. 1997년이면 F3가 이미 오래 쓰인 기판이었고, 타이토가 그 위에서 다양한 장르를 시험해 보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퀴즈 게임 자체가 이 시절 일본 오락실의 한 축을 이루던 장르였습니다. 격투와 슈팅이 손 빠른 사람들의 것이었다면, 퀴즈는 그렇지 않은 손님도 붙을 수 있는 종류였습니다. 여러 회사가 자기 색깔의 퀴즈 게임을 내놓았고, 그중에서 이 게임은 음악이라는 소재로 차별화를 시도한 쪽에 속합니다. 뒤에 휴대용 기기로 옮겨 간 것도 이 방식이 나름의 지지층을 얻었다는 뜻입니다.

한국 오락실에서 보기 어려웠던 이유

이 게임은 국내 오락실에서 거의 볼 수 없었습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문제가 전부 일본어이고, 정답을 알려면 당시 일본 대중음악을 알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1997년이면 국내에 일본 대중문화가 공식적으로 들어오기 전이라, 이런 문제를 풀 수 있는 손님이 애초에 많지 않았습니다.

퀴즈 게임이라는 장르 자체가 국내 오락실에서는 자리를 잡기 어려웠습니다. 언어 장벽이 그대로 벽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림이나 조작으로 재미를 전하는 게임은 말이 안 통해도 손님이 붙지만, 문제를 읽어야 하는 게임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국내 오락실 기억 속에 퀴즈 게임이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이 게임도 별도의 통칭 없이 원제 그대로 불립니다.

지금 이 게임을 해 볼 때도 같은 조건이 따라옵니다. 문제를 다 맞히기는 어렵습니다. 대신 1990년대 후반 일본 오락실에 이런 장르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소리로 문제를 내는 방식이 얼마나 다른 감각을 주는지를 확인하는 쪽으로 접근하면 볼 것이 있습니다. 무엇을 묻는지 몰라도 곡이 흘러나오고 선택지가 떠오르는 그 몇 초의 긴장은 언어와 상관없이 전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