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전승 엔젤 아이즈
투기전승 엔젤 아이즈 (Toukidenshou Angel Eyes Ver 960614 no Sound) · 1996 · Tec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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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캐릭터만 나오는 대전 격투
1990년대 중반 오락실의 대전 격투 코너는 근육질 사내들의 전시장이었습니다. 큰 덩치, 굵은 목소리, 화면을 가득 채우는 필살기. 그 틈에 등장 캐릭터가 전부 여성으로 채워진 대전 격투 게임이 한 대 놓여 있으면, 지나가던 사람도 한 번은 화면을 돌아보게 됩니다. 투기전승 엔젤 아이즈가 딱 그런 기계였습니다.
이 게임이 눈길을 끈 이유는 단순히 여성 캐릭터만 나온다는 점 때문만은 아닙니다. 당시 유행하던 실사 취향이나 근육 과시형 그림체 대신, 애니메이션풍의 선이 분명한 그림으로 캐릭터를 그렸습니다. 대사 연출과 승리 화면의 연출도 애니메이션 쪽 문법을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격투 게임을 좋아하면서 동시에 당시 일본 애니메이션 그림체를 좋아하던 층에게는 상당히 반가운 기계였습니다.
어떤 게임인가
투기전승 엔젤 아이즈(Toukidenshou Angel Eyes)는 테크모가 1996년에 내놓은 2D 대전 격투 게임입니다. 화면 양쪽에서 한 명씩 마주 보고, 체력 게이지를 먼저 깎는 쪽이 이기는, 이 장르의 기본 골격을 그대로 따릅니다. 라운드제로 진행하고, 1인 플레이는 컴퓨터가 조종하는 상대를 차례로 넘어가는 방식이며, 옆자리에 동전을 넣으면 그 자리에서 사람끼리 붙습니다.
조작은 레버와 버튼을 쓰는 전형적인 구성입니다. 레버로 걷고 뛰고 웅크리고 뛰어오르며, 버튼으로 때립니다. 레버를 뒤로 당겨 상대의 공격을 막는 것, 상대가 뛰어들 때 대공으로 받아치는 것, 밀어붙여 구석에 가두는 것 같은 이 장르의 기본기는 여기서도 그대로 통합니다. 다른 격투 게임을 해 본 사람이라면 첫 판부터 별다른 설명 없이 몸이 움직입니다.
처음 잡았을 때
대전 격투 게임을 처음 하는 사람이 가장 먼저 부딪히는 벽은 필살기 커맨드입니다. 레버를 돌리고 버튼을 누르는 그 동작이 손에 붙기까지는 시간이 걸립니다. 그런데 이 게임은 필살기를 못 써도 한동안은 버틸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뛰어들어 때리고, 착지해서 아래 공격을 넣고, 상대가 반격하려 하면 레버를 뒤로 당겨 막는 것만으로도 초반 상대는 넘어갑니다.
버티기 어려워지는 지점은 중반부터입니다. 컴퓨터 상대가 이쪽의 패턴을 읽고 앞서 손을 내밀기 시작합니다. 같은 공격을 두 번 연달아 쓰면 두 번째는 거의 막힙니다. 뛰어드는 타이밍을 한 박자씩 바꾸고, 일부러 다가갔다 물러서서 상대가 먼저 공격을 흘리게 만든 뒤 그 빈틈에 들어가는 식으로, 리듬을 흔드는 쪽으로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동전을 아끼는 요령도 다른 격투 게임과 같습니다. 체력이 많이 남았을 때 무리해서 큰 기술을 넣으려다 반격당하는 것이 가장 손해입니다. 작은 공격으로 조금씩 깎으면서 상대가 먼저 실수하기를 기다리는 쪽이, 결과적으로는 더 오래 앉아 있게 해 줍니다.
캐릭터를 고르는 재미
대전 격투 게임에서 캐릭터 선택은 그 게임을 계속할지 말지를 가르는 관문입니다. 이 게임도 캐릭터마다 팔다리가 닿는 거리, 움직임의 속도, 주력으로 쓰게 되는 공격의 성격이 다릅니다. 멀리서 견제하며 상대를 못 들어오게 막는 쪽이 편한 사람이 있고, 붙어서 계속 손을 섞는 쪽이 맞는 사람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화면에서 보기에 마음에 드는 캐릭터를 그냥 고르면 됩니다. 몇 판 해 보고 어느 순간 손이 꼬인다면, 그건 캐릭터가 나쁜 게 아니라 그 캐릭터의 거리감이 자기 습관과 안 맞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 한 번 다른 캐릭터로 바꿔 보면 같은 게임이 전혀 다르게 느껴집니다.
테크모라는 이름
테크모는 오락실과 가정용을 오가며 여러 장르를 건드린 회사입니다. 스포츠 게임으로도 이름이 알려졌고, 액션 쪽에서도 굵직한 작품을 남겼습니다. 다만 대전 격투 장르에서는 손꼽히는 이름은 아니었습니다. 이 시기 대전 격투 시장은 이미 몇몇 큰 회사의 간판 시리즈가 오락실의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새로 들어온 작품이 그 틈을 비집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게임들은 큰 히트작 옆의 구석 자리에 놓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국내 오락실에서도 널리 깔리지는 않았고, 기억하는 사람보다 처음 본다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지금 다시 켜 보면 흔히 아는 그 시절 격투 게임과는 다른 인상을 줍니다.
지금 해 볼 만한가
이 게임을 지금 권할 만한 이유는 완성도가 당대 최고여서가 아니라, 당시 오락실의 폭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대전 격투가 한창 뜨겁던 시절에는 이렇게 뚜렷한 취향을 겨냥한 작품도 계속 나왔고, 그 대부분은 이름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졌습니다.
격투 게임을 좋아한다면 십여 분만 잡아 봐도 됩니다. 조작 체계가 익숙하니 진입 장벽이 낮고, 한 판이 짧아 부담도 없습니다. 옆에 사람이 있다면 둘이 붙어 보는 쪽이 훨씬 재미있습니다. 대전 격투 게임은 결국 사람끼리 할 때 본래의 모습이 나오는 장르이고, 그건 유명한 작품이든 잊힌 작품이든 똑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