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레가
배틀 가레가 (Battle Garegga World Sat Feb 3 1996) · 1996 · Raiz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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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면 잘할수록 더 어려워지는 슈팅
대부분의 게임은 플레이어가 강해지면 편해집니다. 이 게임은 반대입니다. 점수를 많이 벌수록, 아이템을 많이 먹을수록, 죽지 않고 오래 버틸수록 적이 쏘는 탄이 빨라지고 촘촘해집니다. 그래서 이 게임을 깊이 파고든 사람들은 결국 이상한 결론에 도달합니다. 살아남기 위해 일부러 죽는 것입니다. 슈팅 게임에서 자폭이 하나의 기술로 취급되는, 흔치 않은 작품입니다.
가레가(Battle Garegga)는 라이징이 만든 종스크롤 슈팅입니다. 플레이어는 반란군의 전투기 한 대를 몰고 여섯 개의 스테이지를 거슬러 올라가며, 지상과 공중에서 쏟아지는 화력을 뚫고 각 구간 끝의 거대한 병기를 상대합니다. 두 사람이 함께 붙을 수 있고, 화면 전체가 잿빛과 갈색으로 무겁게 깔린 특유의 분위기가 첫인상을 결정합니다.
네 대의 기체와 세 갈래 무기
기체는 네 대이고 성격이 뚜렷하게 갈립니다. 앞으로 곧게 뻗는 정면 화력이 강한 기체, 화면을 넓게 덮는 기체, 속도가 빠른 대신 다루기 까다로운 기체가 있어서 어느 것을 고르느냐에 따라 같은 스테이지가 전혀 다르게 느껴집니다. 처음이라면 정면 화력이 두툼하고 판정이 무난한 기체로 시작하는 편이 낫습니다.
무기는 색이 다른 세 가지 아이템으로 갈아탑니다. 곧게 쏘는 계열, 넓게 퍼지는 계열, 적을 알아서 쫓아가는 계열이 있고, 아이템을 먹을 때마다 화력이 올라갑니다. 여기에 기체 주위를 도는 보조 유닛이 붙는데, 이 보조 유닛을 어디에 배치하느냐로 탄이 나가는 방향이 달라집니다. 조작 방식에 따라 앞뒤로 늘어세우거나 좌우로 벌려 놓을 수 있어서, 자기 진행 방식에 맞게 배치를 정하는 것이 이 게임의 기본 준비 과정입니다.
훈장에서 점수가 갈립니다
이 게임의 점수는 적을 부수는 것만으로 벌리지 않습니다. 특정 적을 부수면 나오는 훈장을 놓치지 않고 연달아 주워야 하는데, 하나라도 흘리면 훈장의 가치가 처음 값으로 되돌아갑니다. 그래서 고득점을 노리는 사람은 적을 부수는 순서까지 정해 두고, 훈장이 화면 밖으로 나가기 전에 회수할 수 있는 위치를 계산하며 움직입니다.
문제는 이 점수 벌이가 곧바로 난이도로 되돌아온다는 것입니다. 훈장을 잘 모을수록 랭크가 올라가고, 랭크가 올라가면 후반 스테이지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탄막이 나옵니다. 점수를 벌면서 동시에 랭크를 낮게 유지해야 하는 이 모순이 이 게임을 20년 넘게 연구하게 만든 이유입니다.
자폭이 기술이 되는 이유
랭크를 내리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 자기 기체를 잃는 것입니다. 죽으면 화력이 초기화되고 랭크도 함께 내려가므로, 위험한 구간에 들어가기 전에 남는 잔기 하나를 미리 버려 상황을 정리하는 운영이 성립합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멀쩡한 기체를 벽에 박는 이상한 행동이지만, 이 게임에서는 정석에 가까운 판단입니다.
물론 아무 때나 버리면 안 됩니다. 죽고 나면 화력이 약해져 잡졸을 제때 정리하지 못하고, 그러다 연달아 죽으면 오히려 상황이 나빠집니다. 그래서 어느 구간의 어느 지점에서 버릴지가 사람마다 다르고, 그 판단을 정리한 진행 방식이 곧 그 사람의 실력이 됩니다.
어두운 화면과 잘 보이지 않는 탄
이 게임에는 오래된 악명이 하나 있습니다. 배경이 잿빛과 갈색으로 어둡고 파편이 잔뜩 날리는데, 적탄 역시 작고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습니다. 특히 지상 구조물이 폭발하며 화면이 어지러워지는 순간에 탄 하나가 섞여 들어오면 알아채기 어렵습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이유도 모르고 죽는 대부분의 상황이 여기서 나옵니다.
요령은 기체를 화면 아래쪽에 두고 시야를 넓게 쓰는 것, 그리고 자기 기체 바로 앞의 좁은 영역만 집중해서 보는 것입니다. 화면 전체를 보려고 하면 오히려 놓칩니다. 판정 범위가 기체 그림보다 훨씬 작다는 점도 알아 두면 좋습니다. 겉보기에는 스칠 것 같은 탄도 실제로는 지나갑니다.
라이징이라는 회사와 국내에서의 자리
라이징은 90년대 중후반에 슈팅 게임을 집중적으로 내놓은 회사입니다. 이 작품 이후로도 같은 계보의 종스크롤 슈팅이 이어졌고, 랭크 시스템과 훈장 점수 구조는 그 후속작들에서도 다듬어져 계속 쓰였습니다. 음악의 완성도가 높기로도 유명해서, 게임을 하지 않고 곡만 찾아 듣는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
국내 오락실에서 이 게임은 대중적인 인기작은 아니었습니다. 어렵고 화면이 어두워서 지나가는 손님이 붙잡기에는 문턱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대신 슈팅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작품으로 통했고, 한 대뿐인 기판 앞에 사람이 모여 남이 하는 것을 지켜보던 풍경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도 슈팅 게임의 난이도 설계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불려 나오는 이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