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프
고프 (Gorf) · 1981 · Dave Nutting Associa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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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가 사람에게 말을 걸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 게임은 로봇 음성으로 플레이어를 비웃고 위협합니다. 계급에 따라 부르는 호칭이 달라지고, 죽으면 조롱합니다. 1981년 오락실에서 기계가 또박또박 영어로 말을 거는 것은 그 자체로 사람을 불러 모으는 구경거리였습니다.
고프(Gorf)는 성격이 다른 다섯 개의 임무를 차례로 통과하는 고정 화면 슈팅입니다. 화면 아래의 기체를 좌우로 움직이며 위쪽의 적을 쏘는 기본은 같지만, 임무마다 적의 배치와 행동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한 판이 곧 다섯 개의 다른 게임인 셈입니다.
다섯 개의 임무
첫 번째는 방벽 뒤에 숨어 줄지어 내려오는 적을 쏘는 구성입니다.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해 본 사람이라면 곧바로 익숙할 텐데, 방벽이 조금씩 부서지니 언제까지 숨어 있을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이후의 임무들은 각각 다른 문법을 요구합니다. 어떤 판에서는 적이 대열을 이루고 있다가 갑자기 급강하해 달려들고, 어떤 판에서는 화면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소용돌이 속에서 싸웁니다. 마지막은 커다란 모선이 상대인데, 약점을 정확히 노려야만 부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판마다 규칙이 바뀌는 구조는 당시로서는 드물었습니다. 그 시절 대부분의 게임은 같은 화면이 조금씩 빨라지기만 했는데, 이 게임은 아예 다른 종류의 문제를 순서대로 내놓습니다.
잘하는 법
첫 임무에서는 방벽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방벽은 소모품이고, 뒤에 숨어 있으면 자기 총알도 막힙니다. 방벽 옆으로 나와 쏘고 다시 들어가는 리듬을 익혀야 합니다.
급강하하는 적이 나오는 판에서는 대열에 있는 적보다 이미 내려오기 시작한 적을 먼저 봐야 합니다. 위쪽을 노리다가 아래로 파고든 적에게 부딪히는 것이 가장 흔한 죽음입니다.
모선전에서는 약점 외의 부분을 쏴도 소용이 없습니다. 무작정 쏘지 말고 자리를 잡아 정확한 지점을 노리는 것이 정답이고, 그동안 날아오는 것을 피하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계급이라는 장치
이 게임은 진행할수록 플레이어의 계급이 올라갑니다. 화면에 계급이 표시되고 음성도 그 계급으로 불러 줍니다. 지금 보면 소박하지만, 점수 외에 진행 정도를 보여 주는 장치를 넣은 초기 사례입니다.
계급이 올라가면 게임도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계급은 자랑거리이면서 동시에 각오이기도 했습니다. 잘하는 사람이 높은 계급으로 진행하는 것을 옆에서 구경하는 것도 오락실의 재미 중 하나였습니다.
음성 합성이라는 기술
1980년대 초에 기계가 말을 하려면 전용 음성 칩이 필요했습니다. 부품값이 비싸서 아무 게임에나 넣을 수 없었고, 넣은 게임은 그 자체를 광고 문구로 썼습니다. 이 게임은 그 기술을 게임 진행에 녹여, 플레이어를 도발하는 상대의 목소리로 썼습니다.
소리가 게임의 일부가 된다는 발상은 이후 수많은 게임에 이어집니다.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이지만, 그 출발점에 이런 기계들이 있었습니다.
한국 오락실에서
한국에서 이 시기의 미국 게임은 정식으로 들어오기보다 복제 기판으로 도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원래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놓여 있기도 했고, 음성 부품이 빠져 조용한 판본을 만나는 일도 있었습니다.
지금 다시 해 보면 다섯 개의 임무가 각각 얼마나 다른지가 인상적입니다. 오락실 슈팅이 어떻게 다양해지기 시작했는지를 보여 주는 이정표 같은 작품입니다.
왜 이 게임이 특별했나
당시 오락실 게임의 표준은 하나의 화면을 반복하며 속도만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이 게임은 그 관습을 깨고, 아예 성격이 다른 다섯 개의 상황을 순서대로 배치했습니다. 한 번의 진행 안에서 여러 게임을 하는 듯한 구성은 이후 수많은 작품이 따라 하게 됩니다.
또 하나는 진행 정도를 눈에 보이게 만든 점입니다. 점수만으로는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알기 어려운데, 계급이 올라가는 것을 보여 주니 목표가 뚜렷해집니다. 지금 게임들이 쓰는 단계 표시와 성취 표시의 아주 이른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