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데스
기간데스 (Gigandes) · 1989 · East Techn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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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 스크롤 슈팅에서 무기를 먹는다는 것은 보통 앞으로 나가는 총알이 세지는 일입니다. 이 게임은 그 상식을 비틀었습니다. 무기 아이템에 어느 방향으로 접근해서 먹느냐에 따라, 그 무기가 내 기체의 앞이나 뒤, 위나 아래에 붙습니다. 같은 아이템이라도 어떻게 먹었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기체가 만들어지는 셈입니다. 이 한 가지 아이디어가 기간데스라는 게임을 기억하게 만듭니다.
기간데스(Gigandes)는 라운드-37이라는 소형 전투기를 몰고 지구 깊은 곳에서 깨어난 존재와 그 세력을 상대하는 가로 스크롤 슈팅입니다. 레버로 기체를 움직이고 버튼으로 쏘는 기본 틀은 이 장르의 표준을 따르지만, 무기 배치가 플레이어 손에 맡겨져 있다는 점에서 갈라집니다.
네 방향 무장이라는 발상
기체에는 위, 아래, 앞, 뒤 네 자리가 있습니다. 화면에 뜬 무기 아이템에 아래쪽에서 위로 부딪히며 먹으면 그 무기가 위쪽 자리에 붙는 식입니다. 같은 무기를 최대 두 개까지 겹쳐 달 수 있고, 자리를 다르게 채우면 전혀 다른 사격 패턴이 나옵니다.
이 구조가 실전에서 갖는 의미는 분명합니다. 뒤에서 적이 따라붙는 구간이 있다면 뒤쪽에 무기를 달아 두어야 하고, 천장과 바닥에 포대가 붙어 있는 구간이라면 위아래를 채우는 편이 편합니다. 앞만 강화해 놓으면 화력은 세지만 등 뒤가 완전히 비게 됩니다. 어느 쪽을 택할지 판단하는 것이 이 게임의 실제 실력입니다.
처음 하는 사람은 아이템을 그냥 지나가면서 먹기 쉬운데, 그러면 무기가 죄다 한쪽에 몰립니다. 아이템이 보이면 잠깐 위나 아래로 돌아서 원하는 방향으로 접근하는 습관을 들이면 생존율이 눈에 띄게 올라갑니다. 아이템 하나를 어떻게 먹느냐가 그 뒤 몇십 초를 결정합니다.
죽어도 유지되는 무기, 스테이지가 바뀌면 사라지는 무기
이 게임에는 독특한 규칙이 하나 더 있습니다. 목숨을 잃어도 달고 있던 무기는 그대로 남습니다. 가로 슈팅에서 한 번 죽으면 기본 총알로 되돌아가 다시 일어서지 못하는 이른바 죽음의 연쇄가 흔한데, 이 게임은 그 함정을 걷어냈습니다. 덕분에 초보자도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대신 스테이지가 넘어가면 무기와 아이템이 초기화됩니다. 새 스테이지가 시작될 때마다 처음부터 무장을 다시 짜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두 규칙이 합쳐지면, 스테이지 초반에 아이템을 어떻게 먹어 두느냐가 그 스테이지 전체의 승부를 가릅니다.
그래서 요령은 명확합니다. 스테이지 초반에 나오는 아이템은 하나도 흘려보내지 말고, 그 스테이지 지형을 떠올리며 방향을 정해 먹는 것입니다. 반복해서 하다 보면 어느 구간에서 어느 방향이 필요한지 몸에 익고, 그때부터 이 게임이 제대로 굴러가기 시작합니다.
여덟 스테이지의 생체 기계
무대는 여덟 스테이지로 이어집니다. 화면을 채우는 것은 그 시절 가로 슈팅이 즐겨 쓰던 생체 기계 풍의 그림입니다. 금속과 유기체가 뒤엉킨 배경,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대는 구조물이 계속 나옵니다. 알 스타일이 가로 슈팅 전반에 짙게 남긴 영향이 이 게임에도 뚜렷합니다.
이런 배경은 눈요기로만 있는 게 아닙니다. 지형이 좁아졌다 넓어지기를 반복하면서 기체가 갈 수 있는 길을 제한하고, 그 좁은 길에 포대와 적기를 얹어 압박합니다. 무기를 위아래로 배치해 두었느냐 아니냐가 이런 구간에서 곧바로 드러납니다.
난도는 중반부터 확실히 올라갑니다. 적탄의 밀도가 늘어나는 것보다, 앞뒤 양쪽에서 동시에 압박이 들어오는 구성이 많아지는 것이 부담입니다. 화면 한복판에 머무르며 사방을 살피는 자리 잡기가 후반으로 갈수록 중요해집니다.
작은 회사의 알찬 한 방
이스트 테크놀로지는 이름이 널리 알려진 회사는 아닙니다. 1980년대 말 일본에는 이런 중소 개발사가 여럿 있었고, 대형사가 만들지 않는 자리를 저마다의 아이디어로 채웠습니다. 방향에 따라 무기가 붙는 구조 같은 발상은 자원이 넉넉한 회사보다 이런 곳에서 나오기 쉽습니다.
한국 오락실에서 이 게임은 널리 퍼진 축은 아니었습니다. 같은 시기 가로 슈팅 자리를 차지한 유명작들의 그늘이 짙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별도의 통칭도 붙지 않았고, 기억하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다만 한 번 잡아 보면 무기 배치라는 한 가지 아이디어만으로 이 게임이 왜 지금까지 이야기되는지 금방 이해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