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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던전

딥 던전 (Deep Dungeon 1) · 1988 · Scap Tr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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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만 보이는 미궁

던전 RPG에는 독특한 긴장이 있습니다. 화면에 보이는 것은 눈앞의 벽과 통로뿐이고, 자기가 지금 어디쯤 있는지는 오직 머릿속과 종이에만 있습니다. 한 칸씩 나아갈 때마다 새로운 통로가 열리고, 잘못 들어선 길을 되짚어 나오는 동안에도 적은 계속 나타납니다.

딥 던전(Deep Dungeon)은 그 방식을 그대로 따르는 작품입니다. 미궁으로 들어가 아래로 내려가며 목적을 이루는 것이 전부이고, 그 단순한 목표를 향해 한 층씩 파고듭니다.

딥 던전 RPG 게임 화면 1 - MSX (1988)

어떻게 하는 게임인가

일인칭 시점에서 앞으로 가거나 방향을 틀며 미궁을 돌아다닙니다. 걷다 보면 적이 나타나고, 싸워서 이기면 경험과 돈을 얻습니다. 그것으로 힘을 키우고 장비를 갖춰 더 깊은 층으로 내려갑니다.

싸움은 명령을 골라 진행하는 방식입니다. 공격할지 마법을 쓸지 도망칠지를 정하고, 그 결과가 글로 표시됩니다. 화면에서 무언가 화려하게 움직이지는 않지만, 남은 체력을 보며 다음 수를 고르는 긴장은 분명합니다.

중요한 것은 언제 돌아 나오느냐입니다. 깊이 들어갈수록 얻는 것이 많지만, 체력이나 마법이 떨어진 상태에서 한 번 더 싸우다가 그동안 쌓은 것을 통째로 잃습니다.

미궁 안에는 함정이나 특별한 장치가 놓여 있기도 합니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자리를 만나면 그것을 푸는 방법을 찾아야 하고, 그 과정에서 지도가 한 조각씩 더 채워집니다.

딥 던전 RPG 게임 화면 2 - MSX (1988)

살아 나오는 요령

지도를 그리는 것이 첫째입니다. 이런 게임에서 길을 잃는 것은 곧 죽는 것과 같습니다. 한 칸씩 종이에 옮겨 그리면서 진행하면 헤매는 시간이 크게 줄어듭니다.

둘째는 물러날 기준을 미리 정해 두는 것입니다. 체력이 절반 아래로 떨어지면 무조건 돌아 나온다는 식으로 선을 그어 두고, 그 선을 지키는 것이 좋습니다. 한 층만 더 가 보자는 생각이 이런 게임에서 가장 흔한 실패 원인입니다.

셋째는 같은 층에서 충분히 싸워 두는 것입니다. 아래층의 적은 위층과 세기가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준비 없이 내려가면 첫 싸움에서 무너집니다. 지루하더라도 지금 층에서 힘을 쌓는 편이 결국 빠릅니다.

돈을 아끼는 것도 방법입니다. 당장 좋아 보이는 장비를 사기보다, 다음 층에서 필요할 것을 생각해 조금 모아 두는 편이 낫습니다. 이런 게임은 한 단계씩 준비를 갖춰 나가는 흐름이 정석입니다.

그 시절 RPG

1980년대 후반은 일본에서 RPG가 자리를 잡던 시기입니다. 서양에서 온 던전 탐색 방식과, 이야기를 앞세운 일본식 방식이 나란히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앞쪽, 즉 미궁을 파고드는 전통적인 방식에 가깝습니다.

가정용 컴퓨터에서 이런 게임을 한다는 것은 인내를 요구하는 일이었습니다. 저장하는 데도 시간이 걸렸고, 한 판을 진행하려면 자리에 오래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게임이 계속 만들어진 것은, 자기 손으로 지도를 완성해 가는 경험이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화면에 보이는 것이 적으니 상상으로 채우는 부분이 컸습니다. 글로 표시되는 짧은 문장과 단순한 그림만으로 미궁의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방식은 지금 게임과 전혀 다른 방향이지만, 그 나름의 몰입이 있었습니다.

지금 해 본다면

요즘 게임처럼 알아서 길을 안내해 주지 않습니다.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스스로 판단해야 합니다.

그 불친절함이 이 장르의 성격입니다. 익숙해지면 오히려 그 점이 좋아지는데, 내가 알아낸 만큼만 앞으로 갈 수 있다는 규칙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종이와 연필을 옆에 두고 천천히 해 볼 마음이 있다면, 이 계열 게임이 왜 오랫동안 사랑받았는지 알 수 있는 작품입니다. 미궁 하나를 끝까지 내려가 본 사람이라면 그 성취감이 오래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