램피지
램피지 월드 투어 (Rampage World Tour REV 1 3) · 1997 · Mid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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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수는 쪽이 주인공입니다
대부분의 게임에서 도시는 지켜야 할 것입니다. 이 게임은 정반대입니다. 화면 가득 늘어선 빌딩이 전부 부술 대상이고, 창밖으로 도망치는 사람들이 전부 먹을거리입니다. 벽에 매달려 주먹을 휘두르면 콘크리트가 조각조각 떨어져 나가고, 층이 무너지면서 건물 전체가 주저앉습니다. 화면 아래에서는 군인들이 총을 쏘고 헬기가 날아다니지만, 그건 잠깐 성가신 일일 뿐입니다.
이 단순한 쾌감 하나로 시리즈가 십 년 넘게 이어졌습니다. 원작은 1986년에 나왔고, 이 작품은 그로부터 한참 뒤에 나온 후속작입니다. 기본 발상은 그대로 두고 그림과 연출만 크게 손봤습니다. 건물이 무너지는 모습이 훨씬 요란해졌고, 캐릭터의 표정과 동작에 만화 같은 과장이 잔뜩 들어갔습니다.
어떤 게임인가
램피지 월드 투어(Rampage World Tour)는 거대 괴물이 되어 화면 안의 건물을 전부 부수면 다음 도시로 넘어가는 액션 게임입니다. 조작은 이동과 점프, 그리고 공격 세 가지뿐입니다. 벽에 붙으면 자동으로 매달리고, 그 상태에서 계속 때리면 건물이 조금씩 무너집니다. 도시 하나에 있는 건물을 다 없애면 판이 끝나고, 다음 도시로 이동합니다.
체력은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줄어들기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건물 창문 안에는 음식과 사람이 있어서, 창을 부수고 손을 넣어 집어 먹으면 체력이 회복됩니다. 부수는 행위와 먹는 행위가 하나로 이어져 있어서, 결국 계속 움직이며 부수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습니다. 게임이 아주 단순한데도 손이 쉬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고릴라와 도마뱀과 늑대
고를 수 있는 괴물은 셋입니다. 커다란 유인원, 거대한 도마뱀, 그리고 늑대 인간입니다. 성능 차이가 크지는 않지만 생김새와 동작이 달라서, 자기 취향대로 고르게 됩니다. 여럿이 할 때는 서로 다른 괴물을 골라야 화면에서 누가 누구인지 구분이 됩니다.
이들은 원래 사람이었다가 실험 사고로 괴물이 된 설정입니다. 체력이 바닥나면 괴물 상태가 풀리면서 벌거벗은 사람으로 변해 도망치는데, 이 연출이 이 시리즈의 상징 같은 장면입니다. 남은 목숨이 있으면 다시 괴물이 되어 돌아옵니다.
창문 안을 들여다보는 재미
이 게임의 소소한 재미는 창문을 부수고 안을 확인하는 순간에 있습니다. 안에 있는 게 항상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잘못 집어 먹으면 체력이 깎이거나 잠깐 몸을 못 가누는 것들도 섞여 있습니다. 감전되어 뼈만 보이도록 몸이 비치는 연출, 입에서 불을 뿜는 연출 같은 게 하나씩 준비되어 있어서, 손해를 봐도 웃게 됩니다.
후속작에서 새로 들어간 것이 특수 능력을 주는 통입니다. 이걸 먹으면 잠깐 동안 멀리 있는 목표를 공격하는 수단이 생깁니다. 원작에서는 오로지 주먹으로만 부숴야 했는데, 여기서는 손이 닿지 않는 곳도 처리할 수 있게 되어 진행이 한결 빨라졌습니다.
셋이 붙으면
이 기판은 세 사람이 동시에 할 수 있습니다. 오락실에서 이 게임이 재미있었던 이유의 절반은 여기 있습니다. 협력해서 같은 건물을 함께 부수면 훨씬 빨리 무너지지만, 동시에 서로를 때려서 상대가 붙잡고 있던 자리를 빼앗을 수도 있습니다. 옆 사람이 먹으려던 음식을 가로채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래서 셋이 붙으면 항상 도시를 부수는 게임이 아니라 서로를 방해하는 게임이 됩니다. 화면이 무너지는 건물과 튀는 파편으로 정신없어지고, 누가 제일 많이 부쉈는지 점수로 갈리기 때문에 승부욕도 붙습니다. 혼자 할 때와 여럿이 할 때의 성격 차이가 이 게임만큼 큰 작품도 드뭅니다.
도시를 옮겨 다니는 구성
제목대로 무대는 한 도시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여러 나라의 도시를 차례로 돌면서 배경과 건물 모양이 바뀌고, 도시마다 알아볼 만한 건물이 하나씩 섞여 있습니다. 판 수가 상당히 많아서 끝까지 가려면 꽤 오래 붙잡고 있어야 합니다. 다만 하는 일 자체는 처음부터 끝까지 같기 때문에, 길게 앉아 하기보다 짧게 몇 판씩 하는 쪽이 맞는 게임입니다.
난이도가 올라가는 방식도 단순합니다. 뒤로 갈수록 군대의 화력이 세지고, 건물이 단단해지며, 체력이 줄어드는 속도가 부담스러워집니다. 요령은 창문을 지나칠 때마다 습관적으로 한 번씩 때려 보는 것입니다. 회복을 미루다가 마지막 건물 하나를 남기고 쓰러지는 일이 자주 생깁니다.
국내 오락실에서는 1990년대 후반에 들어온 편이라 대전격투와 슈팅에 밀려 대수가 많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한번 자리에 앉으면 설명이 필요 없는 게임이었습니다. 건물을 때리면 부서지고, 사람을 잡으면 먹는다는 것만 알면 그걸로 끝이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