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코드브레이커
레코드브레이커 (Recordbreaker World) · 1988 · Taito
게임 화면 하단에서 —키 변경 Controls Settings·저장·불러오기 Save State / Load State
오락실 스포츠 게임에는 유독 버튼이 빨리 닳는 기계가 있었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버튼을 갈아 끼워야 하는 그 자리에 놓였던 게임 중 하나가 이 작품입니다. 100미터 달리기 한 종목에 10초 남짓, 그 10초 동안 손날이든 동전이든 자를 쓰든 사람들은 어떻게든 버튼을 더 많이 누르려고 했고, 옆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연타 방법을 서로 가르쳐 주는 풍경이 흔했습니다.
레코드브레이커(Recordbreaker)는 타이토가 1988년에 내놓은 다종목 스포츠 게임입니다. 한 명 또는 두 명이 번갈아 가며 열 개 종목에 도전해, 각 종목마다 정해진 기준 기록을 넘기면 다음 종목으로 넘어가는 구조입니다. 기준을 못 넘기면 그 자리에서 게임이 끝나기 때문에, 종목 하나하나가 사실상 관문입니다. 수록 종목은 100미터 달리기, 400미터 계주, 삼단뛰기, 장대높이뛰기, 도마, 100미터 자유형, 역도, 철봉, 100미터 허들, 포환던지기로 육상과 체조, 수영을 두루 섞어 놓았습니다.
조작은 단순하지만 손끝이 전부입니다
이 게임의 조작은 레버가 아니라 버튼으로 이루어집니다. 달리기 계열은 한 버튼을 최대한 빨리 두드려 속도를 올리는 것이 전부이고, 여기에 허들이나 도약 종목에서는 도약 버튼을 정확한 타이밍에 눌러야 합니다. 계주에서는 바통을 넘기는 순간, 수영에서는 숨을 쉬러 올라오는 순간, 던지기와 뛰기에서는 각도를 정하는 순간에 버튼이 하나씩 더 붙습니다.
조작이 단순하다는 말은 결과가 순전히 손끝에 달렸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실력이 늘었다는 것을 체감하기가 쉽고, 반대로 어제 됐던 기록이 오늘 안 나오는 일도 흔합니다. 100원으로 몇 종목까지 가느냐가 그날 컨디션을 재는 잣대가 되었던 게임입니다.
종목마다 성격이 다릅니다
달리기와 계주는 순수한 연타 속도 싸움입니다. 여기서 기준을 못 넘기는 사람은 대개 힘을 너무 줘서 손목이 굳은 경우입니다. 손가락 두 개를 번갈아 쓰거나 손날로 버튼을 문지르듯 쓰는 방법이 오락실에서 흔히 공유되던 요령이었습니다.
장대높이뛰기와 삼단뛰기, 포환던지기는 연타로 힘을 모은 뒤 각도를 정하는 구조라 두 가지를 동시에 신경 써야 합니다. 아무리 빨리 눌러도 각도가 엉망이면 기록이 안 나오고, 각도가 좋아도 힘이 모자라면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가장 많이 떨어지는 구간이 여기입니다.
철봉과 도마 같은 체조 종목은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연타보다 정해진 리듬에 맞춰 버튼을 눌러 동작을 이어가고, 마지막 착지 타이밍을 맞추는 쪽에 가깝습니다. 앞 종목의 감각으로 무작정 두드리면 오히려 실패하기 쉬우니, 화면의 동작을 보고 박자를 세는 편이 낫습니다.
잘 알려진 선배들과의 관계
버튼 연타로 육상 종목을 겨루는 형식은 이 게임이 처음이 아닙니다. 1980년대 초중반에 이미 같은 방식의 대표작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이 작품은 그 계보 위에서 종목을 더 늘리고 그림을 더 큼직하게 다듬은 쪽에 가깝습니다. 육상만이 아니라 수영과 체조, 역도까지 묶은 구성 덕분에 한 판 안에서 감각이 자주 바뀌는 것이 특징입니다.
타이토는 이 시기에 여러 장르를 넓게 다루던 회사였고, 스포츠 장르에도 꾸준히 손을 댔습니다. 다만 이 게임은 같은 시기 슈팅이나 액션 대작들만큼 널리 알려지지는 못했습니다. 종목별 기준 통과 방식이 관대하지 않아 한 판이 짧게 끝나는 편이었던 것도 이유로 보입니다.
오락실에서의 기억
국내 오락실에서 이런 종류의 게임은 대개 한두 대만 들어와 구석에 놓이곤 했습니다. 대신 사람이 몰리면 순식간에 줄이 서는 자리였습니다. 혼자 오래 하는 게임이 아니라 여럿이 기록을 비교하며 번갈아 하는 게임이었기 때문입니다.
두 명 모드에서는 같은 종목을 나란히 겨루기 때문에 옆 사람 손 속도가 그대로 보입니다. 이겨도 져도 다음 판을 하게 만드는 구조라, 동전이 빨리 줄어드는 게임이기도 했습니다. 지금 다시 해 보면 종목 수가 넉넉해 한 번쯤 끝까지 가 보고 싶어지는데, 후반 종목의 기준이 만만치 않아 결국 100미터부터 다시 시작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