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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 블러드

로열 블러드 (Royal Blood) · 1991 · Ko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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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에이 하면 삼국지와 노부나가를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실존 인물과 실제 지도를 놓고 내정과 전쟁을 반복하는 그 틀 말입니다. 그런데 이 회사가 같은 시스템 위에 용과 마법사를 올려놓고 만든 판타지 작품이 있습니다. 성을 함락시키는 것은 똑같은데, 성벽 앞에 서 있는 것이 기병이 아니라 드래곤입니다.

로열 블러드(Royal Blood)는 코에이가 1991년에 내놓은 전략 시뮬레이션입니다. 해외에서는 젬파이어라는 다른 이름으로 나왔고, 국내에는 원제 쪽이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가상의 섬 하나를 무대로 여섯 세력이 갈라져 있고, 그중 하나를 골라 나머지를 전부 무너뜨리고 섬을 하나로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로열 블러드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화면 1 - MSX (1991)

한 턴에 하는 일

게임은 턴제로 굴러갑니다. 자기 차례가 오면 영지에서 세금을 걷고, 병력을 사들이고, 부하 장수에게 부대를 맡기고, 공격할 곳을 정합니다. 코에이 전략물을 해 본 사람이라면 이 구조가 낯설지 않습니다. 다만 이 작품은 내정 항목이 앞선 시리즈들보다 단출한 편이라, 전체 무게가 전투 쪽으로 기울어 있습니다.

전투에 들어가면 화면이 전술 맵으로 바뀝니다. 여기서 부대를 한 칸씩 움직여 적을 치고, 상대 성을 점령하면 그 땅이 넘어옵니다. 병종은 보병과 궁병 같은 기본형부터 드래곤 같은 판타지 유닛까지 있고, 서로 상성이 있어서 무턱대고 강한 것만 사 모으면 이상한 데서 무너집니다.

승부의 기본은 수와 지형입니다. 궁병은 거리를 두고 때리는 대신 붙으면 약하고, 무거운 유닛은 강한 대신 발이 느립니다. 상대가 먼저 움직이게 만들고 유리한 자리에서 받아치는 것이 이 게임의 기본기입니다.

로열 블러드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화면 2 - MSX (1991)

캐릭터와 보물

이 작품에서 재미의 큰 축은 부하 장수입니다. 장수마다 능력치가 다르고, 누구에게 어느 부대를 맡기느냐에 따라 같은 병력이라도 결과가 크게 달라집니다. 능력 좋은 장수를 데려오는 방법도 있어서, 전쟁만 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모으는 데도 신경을 쓰게 됩니다.

여기에 특별한 힘을 가진 보물이 등장해 판을 흔듭니다. 이 물건들을 누가 쥐고 있느냐가 세력 간 힘의 균형에 직접 영향을 주기 때문에, 초반에 약한 세력을 골랐다면 정면 싸움보다 이 쪽을 먼저 노리는 것이 현실적인 길입니다.

세력마다 시작 조건이 크게 다릅니다. 넓은 땅과 좋은 장수를 처음부터 쥔 쪽이 있는가 하면, 구석에 몰려 있고 병력도 얼마 없는 쪽이 있습니다. 어느 가문을 고르느냐가 사실상 난이도 선택이라, 처음이라면 자원이 넉넉한 쪽으로 시작하는 편이 좋습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막히는 곳

가장 흔한 실패는 초반에 병력을 다 써서 한 성을 치다가 본거지가 비는 것입니다. 이 게임은 인접한 세력이 빈틈을 곧잘 파고들기 때문에, 공격에 나설 때도 지킬 병력을 남겨두어야 합니다. 성 하나를 얻고 두 개를 잃는 상황이 초반에 정말 자주 나옵니다.

돈 관리도 함정입니다. 유닛을 사는 데 돈이 들고 유지에도 돈이 들어서, 영지에서 나오는 수입을 넘겨 병력을 불려 놓으면 몇 턴 뒤에 스스로 무너집니다. 확장 속도를 수입이 따라오는 선에 맞추는 것이 결국 이 게임을 푸는 방법입니다.

코에이의 그 시절

이 작품이 나온 1991년 즈음 코에이는 역사 시뮬레이션 회사로 이미 자리를 굳힌 상태였습니다. 그 틀을 그대로 가져와 무대만 가상의 판타지 세계로 바꾼 것이 이 게임입니다. 실존 인물을 다룰 때 따라붙는 제약에서 벗어나 마법과 괴물을 자유롭게 넣을 수 있었다는 점이, 이 시도의 가장 큰 이점이었습니다.

여러 기종으로 나왔고 그중 하나가 MSX2판입니다. 국내에서 코에이 전략물은 주로 PC로 접한 사람이 많았지만, MSX가 놓여 있던 집이나 학원에서는 이런 카트리지가 두꺼운 설명서와 함께 돌아다녔습니다. 한자와 일본어가 화면을 채우고 있어도 숫자와 지도만 보고 감으로 밀어붙이던 시절의 기억이 이 계열 게임에는 늘 따라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