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자드 위저드
리자드 위저드 (Lizard Wizard) · 1985 · Tech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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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에 나온 게임이 팩맨 기판 위에서 돌아갑니다. 팩맨은 1980년작이니 다섯 해나 지난 하드웨어인데, 그때까지도 이 기판을 재활용해 새 게임을 만들어 파는 회사가 있었습니다. 낡은 기판을 싸게 구해 새 롬을 얹으면 개발비와 제조비가 크게 줄어드니, 작은 업체로서는 합리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리자드 위저드는 그렇게 만들어진 게임입니다. 화면을 보면 확실히 그 시절 물건인데, 하려는 것은 팩맨과 전혀 다릅니다.
리자드 위저드(Lizard Wizard)는 마법사를 조종해 화산에서 튀어나오는 바위를 쏘아 부수고, 그 틈에 갇혀 있던 사람들을 구해 지상으로 올려 보내는 액션 게임입니다. 아래쪽에서는 화산이 계속 무언가를 뱉어 내고 위쪽에는 발판이 있는 구조로, 아래를 정리하면서 위로 실어 나르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내야 합니다.
쏘는 일과 나르는 일
이 게임의 핵심은 두 가지 역할을 번갈아 한다는 데 있습니다. 하나는 사격입니다. 화산에서 날아오르는 바위를 공중에서 맞혀 없애야 하는데, 놓치면 바위가 불길로 변합니다. 그리고 그 불을 도마뱀들이 삼켜 힘을 얻습니다. 즉 하나 놓칠 때마다 상황이 조금씩 나빠지는 구조입니다.
다른 하나는 구조입니다. 화산 입구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데리고 위쪽 발판까지 올려 보내야 합니다. 이 일을 하는 동안에는 사격에 신경을 못 쓰고, 그 사이에 아래쪽이 엉망이 됩니다. 그래서 언제 위로 올라가고 언제 아래를 정리할지 결정하는 것이 이 게임의 전부입니다.
여기에 특정 판에서는 별도의 적이 지상으로 올라오려 합니다. 이것들이 위쪽에 도달하기 전에 처리해야 하므로, 안 그래도 바쁜 손이 더 바빠집니다. 판이 올라갈수록 이 세 가지 일이 겹치는 밀도가 높아집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막히는 곳
가장 흔한 실패는 구조에 욕심을 내는 것입니다. 사람을 데려가는 동안 아래쪽 바위를 여러 개 놓치면, 돌아왔을 때 이미 화면이 감당 못 할 상태가 되어 있습니다. 한 번에 다 나르려 하지 말고, 아래를 정리해 여유를 만든 다음 올라가는 순서를 지키는 편이 훨씬 안정적입니다.
두 번째는 조준입니다. 이 게임은 여덟 방향 조작이라 서 있는 방향이 곧 쏘는 방향입니다. 몸을 돌리는 데 걸리는 짧은 시간이 실전에서는 꽤 큽니다. 그래서 목표가 어디로 올라올지 미리 예측하고 그 방향을 향한 채 기다리는 것이 정석입니다. 보고 나서 돌리면 늦습니다.
세 번째는 자리 잡기입니다. 화산 입구 바로 위는 위험합니다. 바위가 튀어나오는 순간 반응할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올라오는 궤적을 보고 맞히는 자리를 찾으면 여유가 생깁니다.
기판과 만든 곳 이야기
이 게임을 만든 곳은 미국의 작은 업체이고, 다른 회사 이름으로 유통되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 북미 오락실 업계는 1983년의 큰 침체를 겪고 난 뒤라 규모가 크게 줄어 있었고, 새 기판에 큰돈을 들이기 어려운 회사들이 기존 하드웨어를 재활용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팩맨 기판은 그런 재활용의 단골이었습니다. 널리 깔려 있어 구하기 쉽고, 개발 도구와 노하우가 이미 퍼져 있었으며, 무엇보다 오락실 주인이 기존 기계에 롬만 바꿔 끼울 수 있었습니다. 다만 그만큼 표현의 한계도 분명합니다. 색이 적고 스프라이트 수가 제한적이라, 화면에 무언가 잔뜩 띄우는 연출은 애초에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이 게임의 화면은 단순합니다. 화산 하나, 발판 몇 개, 그리고 위아래로 오가는 것들이 전부입니다. 대신 그 제약 안에서 규칙을 잘 짜 놓아서, 몇 판 하다 보면 의외로 손을 놓기 어렵습니다.
지금 해 볼 만한가
국내 오락실에서 이 기판을 봤다는 이야기는 찾기 어렵습니다. 한국 오락실이 크게 늘어난 시기와 겹치기는 하지만, 그때 들어온 것은 대체로 일본 쪽 인기 기판이었습니다. 이런 북미 소규모 업체 물건이 태평양을 건너 문방구 앞 기계까지 오는 경로는 사실상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게임은 지금 잡아 볼 가치가 있습니다. 규칙이 몇 줄로 설명되고, 그 몇 줄이 서로 엮여서 계속 선택을 요구합니다. 화려한 것 없이 구조만으로 재미를 만들던 시절의 설계를 확인하기에 좋은 표본입니다. 다섯 해 묵은 기판 위에서도 새 게임이 나올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도 흥미로운 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