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펄스
리펄스 (Repulse) · 1985 · Cru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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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임에는 이름이 두 개 있습니다. 기판에 따라 타이틀 화면에 리펄스라고 뜨기도 하고, 99: 더 라스트 워라고 뜨기도 합니다. 같은 게임인데 유통 경로가 갈리면서 제목이 갈린 경우입니다. 그래서 오래된 오락실 기억을 더듬는 사람들끼리도 서로 다른 이름을 대다가 한참 뒤에야 같은 게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리펄스(Repulse)는 위에서 아래로 화면이 흐르는 세로 스크롤 슈팅입니다. 자기 기체를 조종해 위에서 쏟아지는 적기를 격추하고, 적탄을 피하면서 화면 위쪽으로 밀고 올라가는 구조입니다. 조작은 8방향 레버와 버튼으로 끝나서, 처음 앉는 사람도 한 판이면 무엇을 하는 게임인지 알게 됩니다.
방어막을 언제 켜느냐가 전부입니다
이 게임을 다른 동시대 슈팅과 구분 짓는 것은 방어막입니다. 상시로 켜 두는 물건이 아니라 필요할 때 꺼내 쓰는 자원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의 실력은 얼마나 잘 쏘느냐보다 언제 방어막을 켜느냐에서 갈립니다.
초보자는 방어막을 아껴 두다가 정작 위험한 구간에서 쓰지 못하고 죽습니다. 반대로 겁이 많으면 안전한 구간에서 먼저 써 버리고 정작 탄이 두꺼워질 때 맨몸으로 들어갑니다. 적당한 감각은 몇 판 죽어 보면서 잡는 수밖에 없습니다. 화면 아래쪽에 남은 양을 확인하는 습관부터 들이면 훨씬 오래 삽니다.
한 판의 흐름
진행은 여러 장면으로 나뉘고, 각 장면 끝에는 덩치가 큰 적이 기다립니다. 잡몹 구간에서 기체를 강화해 두고 큰 적을 맞이하는 것이 기본 리듬입니다. 여기서 강화를 놓치면 큰 적 앞에서 화력이 모자라 오래 버티게 되고, 오래 버틸수록 맞을 확률이 올라갑니다.
적은 정해진 패턴으로 들어옵니다. 무작위로 보이는 구간도 사실은 같은 순서로 반복되기 때문에, 죽은 자리를 기억해 두면 다음 판에 그 자리에서 미리 옆으로 빠져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시절 슈팅이 대체로 그렇듯 반사신경보다 암기가 먼저입니다.
화력을 올리는 요령
적을 부수면 아이템이 나옵니다. 먹으면 탄이 굵어지거나 발수가 늘어납니다. 문제는 죽으면 강화가 날아간다는 점입니다. 잔뜩 키워 둔 상태에서 한 번 죽으면 맨몸으로 어려운 구간에 던져지고, 거기서 연달아 죽는 악순환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잘하는 사람은 강화가 충분히 올라간 뒤부터 오히려 더 조심스럽게 움직입니다. 점수를 조금 손해 보더라도 화면 아래쪽 안전한 자리를 지키면서 확실한 것만 노립니다. 욕심을 내서 아이템 하나를 더 먹으려다 통째로 잃는 것보다 낫습니다.
크럭스라는 제작사
크럭스는 1980년대 중반에 잠깐 활동한 일본의 작은 개발사입니다. 자체 유통망이 없어서 만든 게임을 다른 회사 이름으로 내보내는 일이 흔했고, 이 게임의 제목이 둘로 갈린 것도 그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회사 자체가 오래가지 못한 탓에 남긴 작품 수도 많지 않습니다.
그 시절에는 이런 회사가 드물지 않았습니다. 기술 있는 사람 몇이 모여 기판 하나를 만들고, 유통은 큰 회사에 맡기는 식입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채 사라진 개발사가 만든 게임이 정작 오락실에서는 꾸준히 돌아가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 해 보면
요즘 슈팅에 익숙한 사람에게 이 게임은 느리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탄막도 없고 화려한 연출도 없습니다. 대신 적 하나하나를 확실히 정리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초기 세로 슈팅 특유의 담백한 재미가 있습니다.
한 판이 짧아서 부담도 적습니다. 방어막 쓰는 감각만 잡으면 처음보다 훨씬 깊이 들어갈 수 있고, 그 차이가 눈에 보이기 때문에 몇 판 반복하는 맛이 있습니다. 오래된 슈팅이 어떤 식으로 사람을 붙잡아 두었는지 확인하기에 알맞은 게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