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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락스

미락스 (Mirax SET 1) · 1985 · Current Techn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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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의 오락실 기판은 진짜 3D를 그릴 수 없었습니다. 폴리곤을 실시간으로 계산할 성능이 없었으니까요. 그런데도 그 시절 개발자들은 화면에 깊이를 만들어 내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유사 3D라 불리는 방법들입니다. 배경을 위쪽으로 갈수록 좁아지게 그리고, 스프라이트를 아래로 내려올수록 크게 키우고, 지형이 흘러가는 속도를 층마다 다르게 주는 식으로 눈을 속입니다. 미락스는 그 방식으로 만들어진 슈팅입니다.

미락스(Mirax)는 우주선을 몰고 아래에 펼쳐진 지형 위를 날면서 밀려오는 적기와 미사일을 상대하는 슈팅 게임입니다. 화면은 가로로 놓인 모니터에 그려지고, 플레이어의 기체는 지형 위쪽에 떠 있는 형태로 보입니다. 조작은 4방향 레버와 발사 버튼 하나로, 기체를 상하좌우로 움직여 총알을 피하면서 적을 쏘아 떨어뜨리는 것이 한 판의 전부입니다.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며 할 수 있는 구성입니다.

미락스 슈팅 게임 화면 1 - 오락실 (1985)

유사 3D 화면을 읽는 법

이런 방식의 슈팅에서 처음 하는 사람이 겪는 어려움은 거리 감각입니다. 화면이 깊이를 흉내 내고 있어서, 멀리 있어 작게 보이는 적과 가까이 와서 크게 보이는 적이 섞여 나옵니다. 익숙하지 않으면 아직 멀리 있는 것을 피하려다 정작 코앞의 것에 부딪히는 일이 생깁니다.

요령은 스프라이트의 크기를 위험도로 읽는 것입니다. 작게 보이면 아직 시간이 있고, 커지기 시작하면 곧 도착합니다. 화면 전체를 고루 보려 하지 말고, 지금 크기가 커지고 있는 것들만 골라 보는 식으로 시야를 좁히면 훨씬 편해집니다.

지형이 흘러가는 속도도 단서가 됩니다. 배경이 빨리 흐르는 구간은 기체가 빠르게 전진하고 있다는 뜻이고, 그만큼 적과 마주치는 간격도 짧아집니다. 배경 속도가 변하는 순간 화면 앞쪽에 주의를 더 쏟는 습관을 들이면 갑작스러운 충돌을 줄일 수 있습니다.

미락스 슈팅 게임 화면 2 - 오락실 (1985)

오래 버티기 위한 자리 잡기

4방향 레버를 쓰는 게임은 대각선 이동이 안 되거나 어색합니다. 그래서 이동 경로를 미리 계획해야 합니다. 위로 갔다가 옆으로 가는 두 동작을 이어서 해야 하는 상황에서, 한 번에 대각선으로 빠져나가는 게임에 익숙한 손은 자꾸 늦습니다. 두 방향으로 나눠 움직인다는 것을 전제로 여유 있게 미리 자리를 잡는 것이 이 게임의 기본입니다.

기본 위치는 화면 아래쪽 가운데 근처가 무난합니다. 위로 붙으면 적이 나타나는 자리와 너무 가까워 반응할 시간이 없어지고, 좌우 끝에 붙으면 한쪽으로 몰렸을 때 도망갈 공간이 사라집니다. 가운데 아래를 기본으로 삼고 필요할 때만 벗어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이 이런 구성의 슈팅에서 통하는 원칙입니다.

적을 다 잡으려는 욕심도 줄이는 편이 좋습니다. 화면 구석으로 빠지는 적을 쫓아가는 순간 위치가 무너집니다. 눈앞으로 오는 것만 확실히 처리하고 나머지는 지나가게 두면 훨씬 오래 살아남습니다.

무명 기판 시절의 풍경

이 게임을 만든 곳은 커런트 테크놀로지라는 미국 회사입니다. 이름만 들어서는 무슨 회사인지 알기 어려운데, 실제로 1980년대 중반 오락실에는 이런 이름의 회사가 무수히 많았습니다. 일본 대형 제작사들이 대작을 내는 사이, 소규모 회사들이 기판 몇 종을 만들어 유통사에 넘기고 사라지는 일이 반복되던 시기입니다.

이런 회사의 게임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기술적으로 무리한 시도를 하는 대신 눈에 띄는 화면 효과 하나를 중심에 놓는다는 것입니다. 미락스의 경우 그 하나가 유사 3D 지형입니다. 당시 오락실 앞을 지나가던 사람의 눈에 다른 게임과 달라 보이게 만드는 것이 이런 게임의 가장 중요한 임무였고, 화면에 깊이가 있어 보이는 것만으로도 그 임무는 어느 정도 달성됩니다.

당연히 이런 게임들은 오래 놓이지 못했습니다. 몇 달 지나면 더 새로운 것이 나오고 기계는 교체됩니다. 그래서 이름을 남긴 게임보다 이름을 남기지 못한 게임이 훨씬 많고, 지금 우리가 옛 아케이드 목록에서 만나는 낯선 제목들 대부분이 그런 게임입니다.

국내 오락실과의 거리

미락스는 국내 오락실에서 널리 보급된 게임이 아닙니다. 1985년이면 국내 오락실에 일본 대형사의 인기작들이 복제 기판 형태로 빠르게 퍼지던 시기인데, 이런 무명작은 그 유통 경로를 타기 어려웠습니다. 손님이 알아보는 게임을 놓아야 동전이 들어오니, 오락실 주인들도 이름 없는 기판을 굳이 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에는 국내에서 불리던 별칭이 없습니다. 별칭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이 오래 부르면서 생기는 것인데, 애초에 부를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게임을 해 보는 의미는 다른 데 있습니다. 3D 그래픽이 나오기 한참 전, 평면에 깊이를 만들어 내려던 시도들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직접 보는 것입니다. 지금 눈으로 보면 어설프지만, 그 시절 오락실에서 화면에 지형이 흘러가고 적기가 점점 커지며 다가오는 광경은 충분히 새로웠습니다. 몇 년 뒤 진짜 폴리곤이 등장했을 때 사람들이 그토록 놀랐던 이유도, 이런 흉내 내기의 시대를 오래 겪은 뒤였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