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운싱 볼스
바운싱 볼스 (Bouncing Balls) · 1991 · Com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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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 오락실 구석에는 유명 회사 로고가 붙지 않은 기판들이 꽤 있었습니다. 화면 구성이 어딘가 익숙한데 제목은 처음 보는 게임들, 알고 보면 국내 업체가 만든 물건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바운싱 볼스도 그런 축에 듭니다. 만든 곳은 코마드, 인천에 있던 국내 오락실 기판 제작사입니다. 남의 나라 유행을 국내에서 소화해 자기 이름으로 내놓던 시절의 결과물이라, 지금 보면 그 자체가 하나의 기록입니다.
바운싱 볼스(Bouncing Balls)는 위에서 공이 떨어지고 플레이어가 그것을 받아 쌓거나 붙여 없애는 낙하형 퍼즐입니다. 조이스틱으로 떨어지는 위치를 정하고 버튼으로 내려놓는 흐름은 이 장르를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에게는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익숙합니다. 화면이 꽉 차기 전에 계속 지워 내면서,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누가 먼저 무너지나 겨루는 게 이 게임의 본 모습입니다.
한 판의 흐름
시작하면 화면 위쪽에서 공이 하나씩 내려옵니다. 플레이어가 할 일은 그것을 좌우로 옮겨 원하는 자리에 놓는 것, 그리고 놓인 결과가 조건을 만족하면 지워지는 것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지워지면 그 위에 쌓여 있던 것들이 아래로 내려앉고, 그 과정에서 새로 조건이 맞아떨어지면 연쇄가 일어납니다. 낙하형 퍼즐의 재미는 예나 지금이나 이 연쇄에 있습니다.
한 번에 지우는 것보다 중요한 건 지울 준비를 해 두는 일입니다. 눈앞의 것을 즉시 없애면 화면은 잠깐 깨끗해지지만 점수는 얼마 안 됩니다. 반대로 두세 겹으로 쌓아 두었다가 한 번에 무너뜨리면 같은 시간에 몇 배를 벌 수 있습니다. 다만 쌓는 동안 화면 위쪽이 좁아지니, 어디까지 쌓고 언제 터뜨릴지가 실력 차이가 갈리는 지점입니다.
속도는 시간이 갈수록 올라갑니다. 처음에는 천천히 내려오던 공이 어느 순간부터는 생각할 틈을 주지 않습니다. 이때부터는 매번 최선의 자리를 찾기보다, 화면 아래쪽을 평평하게 유지하면서 위험한 구멍을 만들지 않는 쪽으로 방침을 바꾸는 게 오래 버티는 길입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막히는 곳
가장 흔한 실수는 한쪽 구석에 높은 탑을 쌓아 두는 것입니다. 그 자리를 정리하려면 여러 수를 들여야 하는데, 속도가 붙은 뒤에는 그럴 여유가 없습니다. 화면 전체를 고르게 유지하는 편이 화려한 연쇄를 노리는 것보다 결국 오래갑니다.
두 번째는 다음에 올 것을 보지 않는 습관입니다. 이런 부류의 퍼즐은 지금 손에 든 것만으로 자리를 정하면 반드시 막힙니다. 다음 것까지 염두에 두고 자리를 비워 두는 감각이 붙기 시작하면, 실력이 눈에 띄게 달라집니다.
세 번째는 실수 한 번에 무너지는 마음가짐입니다. 낙하형 퍼즐에서 한 칸 잘못 놓는 일은 늘 일어납니다. 중요한 건 그 자리를 복구할 수 있는 형태로 주변을 유지해 두는 것입니다. 구멍을 하나 만들었으면 다음 몇 수는 그 구멍을 메우는 데 쓰는 게 맞습니다.
둘이 하면 완전히 다른 게임
이 장르가 오락실에서 오래 버틴 이유는 대전에 있습니다. 혼자 할 때는 오래 버티기 싸움이지만, 옆자리에 사람이 앉으면 목표가 바뀝니다. 내가 잘 쌓는 것보다 상대 화면을 좁히는 게 이기는 길이 되고, 그러면 판이 훨씬 급해집니다. 연쇄를 크게 만들어 한 번에 밀어 넣는 쪽과, 작게 자주 끊어 상대의 호흡을 흐트러뜨리는 쪽으로 취향이 갈립니다.
옆 사람 화면을 곁눈질하는 것도 실력의 일부입니다. 상대가 큰 연쇄를 준비하느라 위쪽이 아슬아슬해지면, 그때가 밀어붙일 순간입니다. 반대로 내 화면이 위험한데 상대가 여유로우면 욕심을 접고 정리부터 하는 게 맞습니다.
코마드와 그 시절 국내 기판
코마드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에 걸쳐 오락실용 기판을 꾸준히 내놓은 국내 업체입니다. 이 회사 게임들은 대체로 완성도가 고르지 않고, 해외 유행작의 구조를 빌려 온 티가 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다만 그 시절 국내 오락실은 일본에서 들여온 기판 값이 만만치 않았고, 그래서 값싸게 자리 하나를 채워 줄 국산 기판에 대한 수요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게임들은 큰 오락실의 좋은 자리보다는 동네 문방구 앞이나 작은 가게 구석에 놓이는 일이 많았습니다. 화려한 대작 옆에서 100원을 다투는 자리였던 셈입니다. 지금 다시 켜 보면 대단한 게임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 시절 국내에서도 이런 것을 만들어 팔았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남는 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