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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존

제로 존 (Zero Zone) · 1993 · Com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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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기판에서 나온 낙하 퍼즐

1990년대 초 국내 오락실에는 이름을 들어 본 적 없는 기판이 꽤 많이 굴러다녔습니다. 큰 간판 게임 옆자리, 구석 쪽 기계에 꽂혀 있던 것들입니다. 제로 존도 그런 자리에 있던 게임입니다. 만든 곳이 코마드라는 국내 제작사인데, 이 회사는 그 시절 오락실 기판을 여러 편 내놓으며 나름의 목록을 쌓은 곳입니다.

당시 낙하형 퍼즐은 오락실에서 가장 확실한 장사 수단이었습니다. 조작을 설명할 필요가 없고, 옆에서 보던 사람이 곧바로 동전을 넣게 만드는 힘이 있었으니까요. 그 흐름 한가운데에서 나온 게 이 게임입니다. 화면을 처음 보는 순간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는, 그런 종류의 설계입니다.

제로 존 퍼즐 게임 화면 1 - 오락실 (1993)

어떤 게임인가

제로 존(Zero Zone)은 1993년에 나온 오락실용 낙하형 퍼즐 게임입니다. 위에서 조각이 떨어지고, 그 조각을 아래에 쌓아 가며 정해진 조건을 맞추면 쌓인 것이 지워지는 구조입니다. 지우지 못하고 계속 쌓기만 하면 더미가 화면 위까지 차오르고, 그러면 판이 끝납니다. 이 장르를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설명이 더 필요 없는 골격입니다.

조작은 좌우 이동과 회전, 그리고 빠르게 떨어뜨리기입니다. 버튼 수가 적어서 앉자마자 손이 움직입니다. 대신 이 장르가 늘 그렇듯, 쉬운 건 조작이지 게임이 아닙니다. 조각이 떨어지는 속도가 올라가기 시작하면 같은 조작으로 전혀 다른 난이도가 됩니다.

두 사람이 함께 붙을 수 있다는 점도 이 게임의 성격을 말해 줍니다. 낙하 퍼즐은 혼자 점수를 올리는 것보다 옆 사람과 나란히 앉아 누가 먼저 무너지는지 보는 쪽이 훨씬 재미있고, 오락실 입장에서도 동전이 두 배로 들어옵니다. 그래서 이 시기 퍼즐 기판은 대부분 이인용을 기본으로 달고 나왔습니다.

판이 어떻게 굴러가는가

처음 이삼 분은 여유롭습니다. 조각이 천천히 내려오고, 생각할 시간이 넉넉합니다. 이때 바닥을 어떻게 깔아 두느냐가 나중에 전부 돌아옵니다. 초반에 편한 대로 아무렇게나 놓으면 가운데가 울퉁불퉁해지고, 속도가 붙은 뒤에는 그 울퉁불퉁한 바닥을 고칠 시간이 없습니다.

속도가 한 단계 올라갈 때마다 체감 난이도는 그보다 크게 뜁니다. 생각을 마치고 손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 손이 먼저 나가고 생각이 따라붙는 상태가 됩니다. 이 지점에서 무너지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잘하는 사람의 화면을 보면 조각을 놓는 위치가 화려하지 않고 오히려 지루할 만큼 평평합니다.

한 판이 끝나는 방식도 잔인할 만큼 명확합니다. 애매하게 지는 법이 없습니다. 쌓인 더미가 천장에 닿는 그 순간 끝이고,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화면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 명확함이 다시 동전을 넣게 만드는 힘입니다.

막히는 지점과 넘기는 요령

처음 하는 분들이 가장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한쪽 구석에 깊은 구멍을 만드는 것입니다. 한 칸짜리 골이 깊게 파이면 그걸 메울 수 있는 조각이 올 때까지 다른 조각을 전부 옆에 쌓아야 하고, 그러는 사이에 바닥 높이가 걷잡을 수 없이 올라갑니다. 구멍은 생기자마자 메우는 게 싸게 먹힙니다.

두 번째 요령은 빠르게 떨어뜨리기를 아껴 쓰는 것입니다. 급할 때 눌러야 할 버튼인데, 익숙해지면 습관적으로 누르게 됩니다. 그러면 위치를 잘못 잡았을 때 고칠 기회가 사라집니다. 위치가 확정된 뒤에만 누른다고 정해 두면 실수로 날리는 조각이 눈에 띄게 줄어듭니다.

세 번째는 욕심을 줄이는 것입니다. 한 번에 여러 줄을 지우면 점수가 크지만, 그걸 노리다 쌓인 높이가 위험선을 넘으면 그대로 끝입니다. 높이가 절반을 넘어가면 점수를 포기하고 한 줄씩이라도 꾸준히 지워 높이를 낮추는 쪽이 결국 더 오래 버티고 더 많은 점수를 남깁니다.

그 시절 오락실에서

국내 제작사가 만든 오락실 기판은 대체로 화면이 소박하고 소리가 단출했습니다. 개발 규모가 작았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대신 그 자리에 있던 게임들은 값이 싸고 고장이 적어서, 동네 오락실이나 문방구 앞 기계에 꽂히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제로 존도 그런 게임입니다. 화려한 기억으로 남는 대작은 아니지만, 이런 게임이 자리 하나씩 채우고 있었기에 그 시절 오락실 풍경이 완성됐습니다. 지금 다시 해 보면 오히려 군더더기 없는 구조가 눈에 들어옵니다. 설명도 연출도 없이 조각 하나 떨어뜨리는 것으로 시작해서, 몇 분 뒤에는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