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닉 코만도 패미컴판
바이오닉 코만도 (Bionic Commando Europe) · 1988 · Ca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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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 버튼이 없는 액션 게임
액션 게임을 켜면 누구나 먼저 하는 일이 있습니다. 버튼을 눌러 뛰어 보는 것입니다. 이 게임은 그게 안 됩니다. 아무리 눌러도 주인공은 제자리에 서 있을 뿐입니다. 처음 잡은 사람 열에 아홉은 여기서 손을 놓습니다. 고장 난 줄 알기 때문입니다.
고장이 아니라 설계입니다. 주인공에게는 다리 대신 팔이 있습니다. 어깨에서 뻗어 나가는 기계 와이어를 위쪽이나 대각선으로 쏘면 천장, 발판 모서리, 난간에 갈고리가 걸립니다. 걸린 상태에서 줄이 감기며 몸이 딸려 올라가고, 매달린 채로 좌우로 흔들다가 놓으면 그 관성만큼 날아갑니다. 요컨대 이 게임의 이동은 걷기와 매달리기 두 가지뿐이고, 높은 곳으로 가는 유일한 길은 갈고리입니다.
이 규칙 하나 때문에 게임 전체의 몸놀림이 다른 어떤 액션 게임과도 닮지 않았습니다. 발판 사이 구멍을 만나면 뛰어넘는 게 아니라 위쪽 천장에 줄을 걸어 그네처럼 건너갑니다. 익숙해지면 땅에 발을 붙이지 않고 천장만 타고 한 화면을 통째로 지나가게 되는데, 그 순간의 손맛이 이 게임을 지금도 이야기하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어떤 게임인가
바이오닉 코만도(Bionic Commando)는 캡콤이 오락실용으로 먼저 내놓았던 작품을 패미컴으로 옮기면서 사실상 다시 만든 액션 게임입니다. 오락실판은 옆으로 흐르는 스테이지를 순서대로 밀고 가는 구조였는데, 패미컴판은 그 위에 지도와 잠입이라는 층을 얹었습니다.
시작하면 위에서 내려다보는 넓은 작전 지도가 나옵니다. 지도 위에는 번호가 붙은 적 기지들이 흩어져 있고, 헬기를 몰아 원하는 곳으로 내려가면 그때부터 옆으로 흐르는 액션 스테이지가 열립니다. 기지 안에서 목표를 해치우고 나오면 다시 지도로 돌아오고, 방금 얻은 물건이나 정보 덕에 잠겨 있던 다른 기지가 열립니다. 순서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긴 하지만, 어디를 먼저 칠지 고르는 재미가 있습니다.
지도 위를 헬기로 지나다니다 보면 적 트럭 부대와 마주치기도 합니다. 그때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짧은 전투 화면으로 넘어가는데, 여기서만은 자유롭게 사방으로 움직이며 쏠 수 있어서 본편의 갑갑함과 대비가 됩니다.
무기와 장비를 고르는 재미
기지 하나를 깰 때마다 새 무기나 장비가 손에 들어옵니다. 총은 기본 권총에서 시작해 세 갈래로 퍼지는 것, 관통하는 것, 로켓 등으로 늘어나고, 스테이지에 들어가기 전에 무엇을 들고 갈지 직접 고릅니다. 좁은 통로가 많은 기지에서는 관통 계열이, 적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넓은 방에서는 퍼지는 계열이 편합니다.
장비 쪽도 재미있습니다. 적의 총알을 잠시 막아 주는 방패, 특정 색 바닥을 밟아도 아프지 않게 해 주는 부츠, 통신을 가로채 적의 대화를 엿듣게 해 주는 장치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특히 통신 장치는 그냥 소품이 아니라, 그걸 갖고 특정 기지의 통신실에 들어가야만 다음 길이 열리는 식으로 진행에 직접 얽혀 있습니다.
기지 안에는 갇혀 있는 아군도 있습니다. 구해 내면 다음에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떤 장비가 필요한지를 알려 줍니다. 지도만 보고 헤매다가 이 대화 한 줄에 길이 트이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막히는 곳
가장 큰 벽은 역시 갈고리 조작 그 자체입니다. 요령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줄을 걸 곳을 먼저 보고 그 밑에 서는 것입니다. 매달릴 데가 없는 자리에서 아무리 쏴 봐야 허공만 긁습니다. 둘째, 매달린 뒤에는 좌우 방향키를 리듬 있게 번갈아 눌러 진자처럼 폭을 키운 다음 가장 멀리 나갔을 때 손을 놓는 것입니다. 급하게 놓으면 앞이 아니라 아래로 떨어집니다.
두 번째 벽은 낙하입니다. 이 게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은 대개 실수이고, 떨어지는 도중에는 방향을 거의 못 바꿉니다. 그래서 잘하는 사람일수록 바닥을 안 밟습니다. 위험한 구간에서는 아예 천장에 붙어 이동하고, 적이 밀집한 방은 매달린 채로 위에서 정리하고 내려갑니다.
물속 구간과 얼음 바닥 구간은 따로 조심할 만합니다. 물에서는 관성이 달라져서 평소 감각대로 줄을 놓으면 엉뚱한 데로 날아가고, 얼음에서는 착지한 뒤에도 미끄러져 구멍에 빠집니다. 두 곳 모두 한 발씩 끊어 가며 천천히 움직이는 편이 결국 빠릅니다.
지금 해 봐도 남는 것
이 게임이 나온 뒤로 갈고리를 쓰는 액션은 많아졌지만, 점프를 아예 없애고 갈고리 하나로 버틴 작품은 여전히 드뭅니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규칙을 하나로 밀어붙였기 때문에, 익숙해진 다음의 움직임이 다른 게임에서 얻을 수 없는 감각으로 남습니다.
국내에서는 오락실판보다 이 패미컴판을 먼저 만난 사람이 많습니다. 복사팩에 흔히 들어 있었고, 제목을 몰라도 팔에서 줄 나가는 게임이라고 하면 대개 알아들었습니다. 시작하자마자 점프가 안 돼서 그냥 껐다가, 나중에 누가 하는 걸 보고 다시 켜 본 기억을 가진 사람도 많습니다.
시간을 조금만 들여 갈고리에 손이 익으면, 그때부터는 스테이지를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천장과 발판 모서리가 전부 손잡이로 보이기 시작하면 이 게임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