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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 네트워크 록맨 에그제 1편 (유럽판)

배틀 네트워크 록맨 에그제 (Megaman Battle Network E Rocket) · 2001 · Ca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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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맨이 총을 내려놓은 날

록맨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대개 옆으로 스크롤하는 화면과 보스를 쓰러뜨려 얻는 무기를 떠올립니다. 그런데 2001년에 나온 이 작품은 그 공식을 통째로 버렸습니다. 화면은 위에서 비스듬히 내려다보는 시점으로 바뀌었고, 점프도 없고, 스테이지도 없습니다. 대신 인터넷 속으로 들어가 3×3 격자 위에서 카드를 뽑아 싸웁니다. 같은 간판을 달고 이렇게 다른 물건을 내놓은 사례가 흔치 않습니다.

유럽에서 이 게임은 배틀 네트워크 록맨 에그제(Mega Man Battle Network)라는 이름으로 나왔습니다. 초등학생 히카리 넷토가 자신의 넷내비 록맨을 전자 기기에 잭인시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구조이고, 전투는 실시간 이동과 카드 선택이 섞인 독특한 형태입니다. 이 한 편에서 만들어진 틀이 이후 다섯 편을 떠받쳤습니다.

배틀 네트워크 록맨 에그제 1편 (유럽판) RPG 게임 화면 1 - 게임보이 어드밴스 (2001)

잭인이라는 발상

이 게임의 세계에서는 거의 모든 물건에 전자 공간이 딸려 있습니다. 전자레인지, 자판기, 수도 시설, 학교 게시판까지 각자 안쪽에 길이 있고, 그 안에서 문제가 생기면 넷내비를 들여보내 해결합니다. 현실의 사건과 넷 안의 사건이 짝을 이루는 구성이라, 도시를 돌아다니며 잭인 지점을 찾는 것 자체가 진행 방식이 됩니다.

초기작이라 넷 구조는 다소 미로에 가깝습니다. 길이 좁고 갈래가 많아 지도를 눈에 익히기 전까지는 헤매기 쉽습니다. 그 대신 구석에 숨겨진 상자와 칩을 찾아내는 맛이 있고, 막다른 길처럼 보이던 곳이 이어지는 순간의 감각이 좋습니다.

배틀 칩과 커스텀

전투는 커스텀 게이지가 차면 화면이 멈추고 칩을 고르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이때 아무 칩이나 뽑을 수 있는 게 아니라, 같은 이름이거나 같은 알파벳 코드가 붙은 것끼리만 함께 나갑니다. 그래서 덱을 짤 때부터 코드를 정리해 두어야 손에 쓸 만한 패가 들어옵니다.

칩을 다 쓰면 다시 버스터로 버티며 게이지가 차기를 기다립니다. 이 리듬이 이 시리즈의 심장입니다. 몰아치는 구간과 견디는 구간이 번갈아 오고, 견디는 동안 얼마나 안 맞느냐가 다음 몰아치기의 여유를 정합니다.

프로그램 어드밴스

정해진 칩을 정해진 순서로 겹쳐 내면 프로그램 어드밴스라는 합체 기술이 나갑니다. 1편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캐논 계열 세 장을 이어 붙이는 조합인데, 위력이 다른 칩과 비교가 안 됩니다.

문제는 그 세 장이 한꺼번에 손에 들어와야 한다는 점입니다. 덱을 얇게 유지하고 필요한 칩만 남기는 정리가 여기서 힘을 발휘합니다. 노리고 짠 조합이 결정적인 순간에 맞아떨어질 때의 손맛이 이 게임을 오래 기억하게 만듭니다.

첫 편이 남긴 것

지금 기준으로 보면 다듬어지지 않은 구석이 분명 있습니다. 넷 이동이 번거롭고, 후반 난이도가 갑자기 뛰며, 편의 기능도 적습니다. 이후 작품들이 하나씩 손봐 나간 부분들입니다.

그럼에도 이 편에는 처음 만들어진 것만의 단단함이 있습니다. 격자 위 이동과 카드 선택을 겹친다는 착상은 여기서 이미 완성형에 가까웠고, 뒤의 다섯 편은 그 위에 살을 붙인 것에 가깝습니다. 시리즈의 출발점을 확인하고 싶다면 이 편부터 잡는 것이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