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
다크스토커즈 (Darkstalkers the Night Warriors 940705 Euro) · 1994 · Ca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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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들이 링에 오른 1994년
1994년 오락실은 격투 게임 천지였습니다. 대부분이 도복이나 권투 글러브를 두른 사람끼리 주먹을 주고받는 사이, 캡콤은 드라큘라와 늑대인간, 미라와 설인을 데려와 링에 세웠습니다. 처음 이 기판이 들어온 날 캐릭터 선택 화면 앞에서 한참을 서 있던 기억이 납니다. 사람 모습을 한 캐릭터가 거의 없었으니까요.
뱀파이어(Darkstalkers: The Night Warriors)는 캡콤이 CPS-2 기판으로 내놓은 대전 격투 게임입니다. 서양 괴담과 동양 요괴, 고전 호러 영화의 괴물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지구를 노리는 외계의 존재에 맞서게 한다는 설정입니다. 국내에는 일본판 제목이 붙은 기판이 들어와서 다들 뱀파이어라고 불렀습니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림
캐릭터가 크고, 프레임이 많고, 동작이 과장되어 있습니다. 모리건이 망토를 박쥐로 흩뜨리고, 펠리시아가 고양이처럼 네 발로 튀어 오르고, 사스콰치가 배를 부풀렸다가 터뜨리는 동작이 하나하나 만화적인 리듬으로 움직입니다. 같은 회사의 스트리트 파이터와 조작 감각은 비슷한데 화면에서 받는 인상은 전혀 다릅니다.
승리 포즈와 패배 연출도 캐릭터마다 성격이 다릅니다. 그래서 자기 차례가 아니어도 뒤에서 구경하는 사람이 늘 붙어 있는 게임이었습니다.
체인 콤보라는 새 문법
약공격에서 중공격, 강공격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체인 콤보가 이 게임의 핵심입니다. 그전까지 콤보는 상대가 경직된 프레임을 계산해 억지로 끼워 넣는 기술이었는데, 여기서는 버튼을 순서대로 누르기만 해도 연결됩니다. 손에 익지 않은 사람도 화면을 화려하게 만들 수 있으니 진입 문턱이 크게 낮아졌습니다.
공중 가드가 들어온 것도 큰 변화입니다. 점프 공격 한 번에 판이 기울던 흐름이 줄고, 공중에서 서로 견제하다 착지 지점을 노리는 공방이 생겼습니다.
기억에 남는 얼굴들
간판은 흡혈귀 데미트리 막시모프와 서큐버스 모리건 앤슬랜드입니다. 늑대인간 존 탈베인, 고양이 여인 펠리시아, 사무라이 갑옷을 두른 비샤몬, 미라 아나카리스, 설인 사스콰치, 물속에서 올라온 리자드맨, 인조인간 빅터, 좀비 록가수 자벨, 고대 로봇 후이칠까지 성격이 겹치는 캐릭터가 없습니다.
마지막에 기다리는 것은 우주에서 온 파이론입니다. 몸을 불꽃으로 바꿔 화면을 가로지르고, 막아도 체력이 깎이는 공격을 던져서 동전을 몇 개 더 쓰게 만드는 상대였습니다. 사람과 싸우는 감각으로 접근하면 대개 두 판을 못 버팁니다.
이후로 이어진 것들
이 작품은 뱀파이어 헌터와 뱀파이어 세이버로 이어지며 시스템이 점점 빨라졌고, 캡콤 대전 격투의 실험장 노릇을 했습니다. 여기서 다듬어진 체인 콤보와 공중 공방은 이후 크로스오버 격투 게임의 기본기가 됩니다.
모리건은 캡콤을 대표하는 얼굴로 자리 잡아 다른 회사 캐릭터들과 싸우는 게임마다 출연했습니다. 본가 시리즈보다 객원 출연으로 더 자주 보이는 캐릭터가 되었을 정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