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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코스카 워즈

보코스카 워즈 (Bokosuka Wars) · 1984 · ASC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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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혼자 걸어서 적국의 성으로 갑니다

이 게임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바삼 제국의 오글레스 왕이 쳐들어와 나라를 짓밟았고, 당신의 병사들은 전부 붙잡히거나 바위와 나무로 변해 버렸습니다. 남은 것은 왕 스렌 혼자입니다. 성도 병력도 없이, 왕이 직접 걸어서 적의 성까지 가야 합니다. 가는 길에 바위와 나무를 두드려 부하를 되살리고, 갇힌 병사를 풀어 주고, 그렇게 모은 군대를 이끌고 마지막 성문 앞에 서는 것이 목표입니다. 1983년에 나온 게임의 발상치고는 대단히 야심찬 구성이었습니다.

보코스카 워즈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화면 1 - MSX (1984)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군대

보코스카 워즈(Bokosuka Wars)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화면에서 왕과 병사들을 이끌고 오른쪽 끝의 적 성까지 나아가는 게임입니다. 등장하는 단위는 왕, 기사, 병사 세 종류로 체스 말처럼 나뉩니다. 조작은 왕을 움직이는 것 하나뿐인데, 부하들이 왕을 따라 대열을 이루며 함께 이동합니다. 그래서 왕을 어느 방향으로 몰고 가느냐가 곧 진형을 어떻게 짜느냐가 됩니다.

전투는 부딪히면 일어납니다. 아군 단위와 적 단위가 맞닿으면 그 자리에서 승패가 갈리고, 진 쪽이 사라집니다. 싸움에서 이긴 단위는 경험이 쌓여 강해집니다. 별도의 전투 화면이 없고 명령을 내리는 단계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지도 위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집니다.

길 위의 바위와 나무는 장애물이자 자원입니다. 왕이 부딪히면 그 안에 갇혀 있던 병사가 풀려나 아군이 됩니다. 다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어서, 병력을 늘리려면 길을 벗어나 이것저것 두드려 봐야 합니다. 갇힌 병사가 있는 곳은 기사로 문을 부숴야 열립니다.

보코스카 워즈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화면 2 - MSX (1984)

왜 이 게임이 어렵다고 하나

이 게임의 악명은 극악한 난이도에서 나옵니다. 왕이 죽으면 그 순간 끝입니다. 부하가 아무리 많아도 소용없습니다. 그런데 왕은 앞장서서 걸어야 하고 바위를 두드리는 것도 왕의 일이라, 가장 위험한 자리에 계속 서 있게 됩니다. 이 모순이 이 게임의 핵심 긴장입니다.

전투 결과가 확률로 갈린다는 점도 어려움을 키웁니다. 강한 단위가 약한 단위에게 지는 일이 실제로 일어납니다. 그래서 아무리 계산해도 한 판이 통째로 무너지는 순간이 오고, 그때 남는 것이 없습니다. 이 게임을 처음 하는 사람이 가장 견디기 힘들어하는 부분입니다.

요령이 있다면 왕을 앞에 세우지 않는 것입니다. 부하가 생긴 뒤에는 왕이 대열의 뒤나 옆으로 빠지고, 앞은 기사에게 맡기는 방식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또 하나는 무리해서 전진하지 않는 것입니다. 초반에 바위와 나무를 충분히 두드려 병력을 불려 놓지 않으면 중반부터 물량에 밀립니다. 시간이 걸려도 병력을 모으는 편이 결국 빠릅니다. 마지막으로, 적이 여럿 붙어 있는 곳에 대열을 통째로 밀어 넣지 말아야 합니다. 한 번에 하나씩 상대할 수 있는 위치로 유인해 각개격파하는 것이 정석입니다.

장르의 조상으로 불리는 이유

이 게임은 여러 장르의 시작점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지도 위에서 여러 단위를 이끌고 적 진영을 향해 나아가는 구성, 단위마다 성장이 붙는 구성은 훗날 시뮬레이션 롤플레잉이라 불리게 되는 것의 초기 형태입니다. 동시에 명령 입력 없이 실시간으로 부대가 움직인다는 점에서 실시간 전략 게임의 조상으로 언급되기도 합니다. 1983년이라는 시점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입니다.

만든 사람은 스미이 코지이고, 처음에는 샤프 X1용으로 나왔습니다. 이후 MSX를 비롯한 여러 일본 컴퓨터로 옮겨졌고 패미컴판도 나왔습니다. 발매사인 아스키는 MSX 규격 자체를 만든 곳이기도 해서, 이 시기 MSX 소프트 목록에는 아스키 이름이 자주 보입니다.

이 게임을 지금 마주하면

한국에서 이 게임을 오락실이나 문방구에서 만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MSX가 국내에 보급된 뒤에도 이 게임은 널리 돌지 않았습니다. 화면이 수수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설명해 주는 것이 없으며, 일본어 안내를 읽어야 감이 오는 구조였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 아이들은 화면만 봐도 무엇을 할지 알 수 있는 게임을 골랐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은 재미보다 계보로 기억되는 쪽에 가깝습니다. 다만 규칙을 이해하고 몇 번 다시 시작해 보면 의외로 붙잡히는 데가 있습니다. 확률에 휘둘리면서도 대열을 어떻게 굴릴지 계속 궁리하게 되고, 왕을 살려서 한 걸음 더 나아갔을 때 오는 안도감이 분명합니다. 지금 기준으로도 한 판의 긴장이 살아 있는 게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