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즈 3D
볼즈 3D (Ballz 3d Fighting At Its Ballziest USA Europe) · 1994 · Accol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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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투 게임의 캐릭터는 보통 팔다리가 붙은 사람 모양으로 그려집니다. 그런데 이 게임의 캐릭터는 크고 작은 공 여러 개를 공중에 띄워 사람 형태로 얼기설기 이어 붙인 모습입니다. 팔은 공 세 개, 다리는 공 두 개, 머리는 큰 공 하나 하는 식입니다. 걷거나 주먹을 뻗을 때마다 그 공들이 각자 따로 움직이면서 몸 전체가 출렁이는데, 처음 보면 이게 격투 게임의 캐릭터가 맞나 싶어 웃음부터 나옵니다. 그런데 몇 판 하다 보면 이 우스꽝스러운 겉모습 아래에 의외로 정직한 대전 격투의 뼈대가 깔려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볼즈 3D(Ballz 3D: Fighting at its Ballziest)는 캐릭터와 배경을 전부 구 단위로 계산해 그려 내는 대전 격투 게임입니다. 두 캐릭터가 원형 링 위에서 맞붙고, 체력을 먼저 깎아 낸 쪽이 이깁니다. 링을 원형으로 둔 덕에 두 캐릭터는 앞뒤로만 붙는 게 아니라 링 둘레를 따라 돌면서 서로 각도를 바꿔 가며 싸웁니다. 화면은 늘 두 사람을 함께 잡도록 회전하고 확대·축소되는데, 이 카메라 움직임이 당시 2D 기기에서는 보기 드문 그림이었습니다.
공으로 만든 몸이 만들어 내는 감각
이 게임의 핵심은 캐릭터를 이루는 공이 각각 독립적으로 움직인다는 점입니다. 발차기를 하면 다리를 이루는 공들이 순서대로 뻗어 나가고, 맞으면 몸을 이루는 공들이 충격 방향으로 흩어졌다가 제자리를 찾아옵니다. 그래서 같은 기술이라도 히트할 때마다 그림이 조금씩 달라 보이고, 타격감이 딱딱하지 않고 물컹하게 전해집니다.
이 방식은 캐릭터마다 실루엣을 크게 바꾸기도 쉬웠습니다. 공의 크기와 개수, 배치만 바꾸면 뚱뚱하고 느린 몸도, 가늘고 긴 팔다리를 가진 몸도 금세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등장 캐릭터들의 체형 차이가 유난히 크고, 그 체형이 곧 리치와 몸통 판정의 차이로 이어집니다. 팔이 긴 캐릭터는 멀리서 툭툭 건드리는 싸움을 하고, 몸집이 큰 캐릭터는 맞는 판정도 커서 다가가는 과정 자체가 위험 부담이 됩니다.
조작과 한 판의 흐름
조작은 그 시절 대전 격투의 문법을 그대로 따릅니다. 방향키로 이동하고 점프하고 앉으며, 버튼으로 약공격과 강공격, 발차기를 냅니다. 앉아서 하는 공격은 아래쪽을 노리고, 점프 공격은 상대의 머리 쪽 공을 노립니다. 가드는 뒤로 물러서서 잡고, 상대가 낮게 들어오면 앉아서 막아야 합니다.
여기에 커맨드 입력으로 나가는 필살기가 얹힙니다. 방향키를 굴리고 버튼을 누르는 방식이라 익숙한 사람이라면 금방 손에 붙습니다. 다만 캐릭터가 공 뭉치라서 필살기의 시각적 신호가 사람 형태 게임만큼 또렷하지 않은 편이라, 처음에는 상대가 무슨 동작을 시작했는지 읽기가 조금 어렵습니다. 몇 판 반복해서 각 캐릭터의 동작 실루엣을 눈에 익히는 게 실력 향상의 첫 단추입니다.
한 판의 흐름은 단순합니다. 라운드를 이겨 나가면서 상대를 하나씩 넘기고, 위로 올라갈수록 상대의 반응 속도와 견제 빈도가 올라갑니다. 난이도 선택이 있어서 처음에는 낮은 쪽으로 놓고 조작을 익히다가, 익숙해지면 높여 가며 도전하는 구성입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막히는 지점
가장 많이 막히는 곳은 거리 감각입니다. 원형 링에서 서로 돌면서 싸우다 보니 평면 격투 게임처럼 '한 걸음 앞'이 어디인지 감이 잘 잡히지 않습니다. 카메라도 함께 돌기 때문에 방향키의 왼쪽·오른쪽이 화면상 어디를 향하는지 순간적으로 헷갈립니다. 이 감각이 붙기 전까지는 헛스윙이 잦습니다.
요령은 무리해서 파고들지 않는 것입니다. 상대가 다가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리치가 긴 공격으로 먼저 건드리고, 맞았다 싶으면 이어서 붙는 식으로 하면 안정적입니다. 무작정 점프해서 들어가는 건 가장 위험한 선택입니다. 몸을 이루는 공이 넓게 퍼져 있어서 공중에서는 피격 범위가 실제로 넓어 보이고, 대공 공격에 그대로 걸립니다.
또 하나는 라운드 사이에 상대의 패턴을 기억해 두는 일입니다. 컴퓨터 상대는 특정 거리에서 특정 기술을 반복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 거리를 한 번 파악하면 대응이 훨씬 쉬워집니다.
만든 곳과 그 시절 사정
이 게임을 만든 곳은 PF 매직이고, 발매는 어콜레이드가 맡았습니다. 1994년은 가정용 기기에서 3D 표현이 막 화두로 떠오르던 때였습니다. 다각형을 제대로 굴릴 성능은 아직 없는데 3D처럼 보이는 그림은 만들고 싶던 시기라, 여러 회사가 저마다의 편법을 궁리했습니다. 구를 겹쳐 입체감을 내는 이 게임의 방식도 그런 시도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흥미로운 건 여기서 쓰인 구 기반 캐릭터 기술이 나중에 PF 매직의 가상 애완동물 소프트웨어 계열로 이어졌다는 점입니다. 격투 게임에서 실험한 표현 방식이 전혀 다른 장르의 대표작으로 살아남은 셈입니다.
제목을 두고 벌어진 일화도 남아 있습니다. 영어권에서 이 단어가 가진 속어적 뉘앙스 때문에 다른 기기 판에서는 표기를 손봐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애초에 그 말장난을 부제까지 밀어붙인 데서 이 게임이 어떤 태도로 만들어졌는지가 드러납니다.
지금 해 보면
이 게임은 같은 시기의 정통 대전 격투와 정면으로 겨루려던 물건은 아닙니다. 기술 체계의 깊이나 대전 균형은 그쪽에 미치지 못합니다. 대신 다른 어떤 게임과도 닮지 않은 그림을 갖고 있고, 그 점만으로 한 번 켜 볼 이유가 충분합니다.
친구와 둘이 붙었을 때 가장 재미있는 종류의 게임이기도 합니다. 서로 무슨 기술이 나가는지도 잘 모르는 채로 공 뭉치 두 개가 링 위에서 뒹구는 광경을 보고 있으면,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웃게 됩니다. 국내에서는 정식 유통보다는 복사판이나 잡지 소개로 이름이 오르내린 쪽에 가까워서, 아는 사람은 확실히 기억하고 모르는 사람은 아예 처음 보는 그런 게임으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