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
4 En Raya (4 En Raya SET 1) · 1990 · ID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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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의 오락실 기판 목록에는 격투 게임과 슈팅이 가득합니다. 그 사이에 말을 하나씩 떨어뜨려 넉 줄을 만드는 보드게임이 끼어 있습니다. 그것도 일본이나 미국이 아니라 스페인 회사가 만든 물건입니다. 이런 조합 자체가 이 게임을 기억하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4 En Raya는 스페인의 IDSA가 1990년에 내놓은 아케이드 퍼즐 게임입니다. 제목은 스페인어로 넉 줄이라는 뜻이고, 세로로 세운 판에 말을 위에서 떨어뜨려 가로든 세로든 대각선이든 같은 색 넉 개를 먼저 이으면 이기는, 흔히 사목이라 부르는 그 보드게임을 그대로 옮겨 놓았습니다.
규칙과 한 판의 흐름
판은 격자 모양이고 말은 위에서 떨어져 그 열의 가장 아래 빈 칸에 쌓입니다. 그래서 원하는 자리에 바로 놓을 수 없고, 그 아래가 채워져 있어야만 그 칸을 쓸 수 있습니다. 이 한 가지 제약이 단순해 보이는 게임을 생각할 거리로 만들어 줍니다.
기본 전략은 두 방향을 동시에 노리는 것입니다. 한 줄만 만들려 들면 상대가 끝을 막으면 그만이지만, 한 수로 두 군데가 동시에 완성 직전이 되면 상대는 한쪽밖에 막지 못합니다. 이 이중 위협을 만드는 것이 사목의 거의 전부이고, 반대로 상대가 그 모양을 만들기 전에 미리 끊어 놓는 것이 수비입니다.
또 하나 조심할 것은 자기가 놓은 수가 상대에게 발판을 깔아 주는 경우입니다. 어떤 칸에 말을 놓으면 바로 그 위 칸이 열립니다. 그 위 칸이 상대의 완성 자리라면, 이쪽이 한 수 두는 순간 상대가 이깁니다. 이 게임에서 초보가 지는 가장 흔한 방식이 이것입니다.
오락실판만의 것
보드게임을 그대로 옮기기만 했다면 동전을 넣을 이유가 없습니다. 이 기판은 원래 규칙 위에 아케이드다운 요소를 하나 얹었습니다. 상대의 말을 쏘아 그 차례를 무효로 만드는 동작이 들어 있어서, 순수한 두뇌 싸움에 손 속도와 타이밍이 섞입니다.
여기에 제한 시간이 붙습니다. 종이나 실물 판으로 둘 때처럼 오래 생각할 수 없고, 시간 안에 수를 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정석대로 두는 실력보다, 빠르게 위험한 자리를 알아보는 감각이 더 중요해집니다.
두 명이 마주 앉아 붙을 때가 가장 재미있습니다. 규칙을 설명할 필요가 없어서 처음 만난 사람과도 바로 한 판을 시작할 수 있고, 한 판이 몇 분이면 끝납니다. 혼자 할 때는 컴퓨터를 상대하게 되는데, 이쪽은 실수를 거의 하지 않아서 이중 위협을 만들지 못하면 좀처럼 이기기 어렵습니다.
스페인 아케이드라는 배경
이 시기 아케이드 기판은 일본과 미국 회사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서 스페인 업체들이 자국과 인근 시장을 겨냥해 소규모로 기판을 만들던 흐름이 있었고, 이 게임도 거기 속합니다. 하드웨어 구성도 검소해서, 8비트 시절 표준 부품 위에 최소한의 회로만 얹은 형태입니다.
이런 기판은 대형 게임과 정면으로 겨루지 않습니다. 대신 술집이나 동네 가게처럼 큰 기계를 놓기 어려운 자리에, 값싸고 고장 덜 나고 누구나 규칙을 아는 물건으로 들어갑니다. 이 게임의 소재 선택은 그 자리에 정확히 맞춰진 것입니다.
컴퓨터를 이기는 요령
혼자 붙을 때 가장 먼저 알아 둘 것은 가운데 열이 유리하다는 점입니다. 가운데를 지나는 줄이 가장자리를 지나는 줄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같은 말 하나라도 가운데에 놓았을 때 만들어지는 가능성이 큽니다. 첫 수를 어디에 둘지 고민된다면 가운데부터가 정답에 가깝습니다.
두 번째는 상대의 완성 자리를 매 수마다 확인하는 습관입니다. 자기 공격만 보다가 상대가 넉 줄을 완성하는 것을 놓치는 일이 정말 자주 벌어집니다. 특히 대각선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서, 판이 반쯤 찼을 때 대각선을 한 번씩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어이없이 지는 판이 크게 줄어듭니다.
세 번째는 홀짝 감각입니다. 각 열에 말이 몇 개 쌓였느냐에 따라 그 열의 다음 칸이 누구 차례에 열릴지가 정해집니다. 자기 차례에 열리는 자리에 완성 지점을 만들어 두면 상대는 막을 수 없습니다. 이 계산까지 하게 되면 같은 게임이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지금 해 보면
국내 오락실에서 이 기판이 돌던 기억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유럽 지역 물량이 대부분이었고, 국내 수입 경로와도 거리가 멀었습니다. 다만 사목이라는 게임 자체는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어서, 화면을 보는 순간 무엇을 하는 것인지 바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은 실력을 갈고닦는 대상이라기보다 잠깐 앉아 머리를 쓰는 물건에 가깝습니다. 옆 사람과 한 판씩 주고받다 보면 몇 수 앞을 읽는 감각이 조금씩 살아나고, 그 사이에 시간이 꽤 지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