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 봄버
스페이스 봄버 (Space Bomber Ver B) · 1998 · Psik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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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쿄라는 이름을 들으면 대개 화면을 가득 메우는 탄막과 이를 악물게 만드는 난이도를 떠올립니다. 스트라이커즈 1945 계열로 굳어진 인상입니다. 그런데 같은 회사가 1998년에 내놓은 이 게임은 그 이미지와 정반대편에 서 있습니다. 적으로 나오는 것이 전투기가 아니라 돼지와 문어와 웃는 얼굴이고, 주인공 기체에는 총 대신 집게가 달려 있습니다.
스페이스 봄버(Space Bomber)는 화면이 위로 흐르는 종스크롤 슈팅이면서, 적을 붙잡아 던지는 집게가 핵심인 아케이드 게임입니다. 쏘아 없애는 것만이 아니라 붙잡아 재활용하는 선택지가 늘 함께 놓여 있고, 그 하나의 장치가 같은 장르 다른 게임들과 이 게임을 갈라놓습니다.
집게가 이 게임의 전부입니다
기체 앞에 달린 기계 집게로 적을 붙잡을 수 있습니다. 붙잡힌 적은 기체 뒤로 줄줄이 따라붙고, 최대 세 마리까지 데리고 다닐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매달린 적들은 그 자체로 방패 노릇을 하다가, 던지는 순간 다른 적에게 큰 피해를 주는 탄환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붙잡은 적이 스테이지를 넘어가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앞 스테이지에서 좋은 놈을 확보해 두면 그것을 다음 판 보스전까지 아껴 뒀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던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에서는 잡을 수 있는 적을 만났을 때 지금 쓸지 아껴 둘지를 계속 저울질하게 됩니다. 일반적인 슈팅에서 파워업 아이템을 관리하는 감각과 비슷하되, 그 자원이 화면 위를 돌아다니는 적이라는 점이 다릅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가장 흔히 하는 실수는 집게를 아예 잊고 발사 버튼만 누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게임은 그저 평범하고 조금 심심한 종스크롤 슈팅이 되어 버립니다. 반대로 집게에 익숙해지면 적 무리 한가운데에 던져 넣어 한 번에 쓸어버리는 장면이 자주 나오고, 화면 정리 속도가 눈에 띄게 달라집니다.
기체 선택과 숨겨진 기체
기본 기체는 정직하게 앞으로 뻗는 탄을 쏩니다. 초심자가 쓰기 좋고, 집게 운용을 익히기에도 무난합니다. 다만 이 게임에는 타이틀 화면에서 특정 커맨드를 입력해야 나오는 숨은 기체가 따로 있습니다. 하나는 기본 기체보다 강한 파도 모양의 탄을 쏘고, 다른 하나는 집게 대신 드릴 공격을 쓰며 탄이 부채꼴로 퍼집니다.
이 숨은 기체들은 단순한 보너스가 아니라 플레이 방식 자체를 바꿉니다. 특히 집게 대신 드릴을 쓰는 쪽은 이 게임의 간판 장치를 포기하는 대신 순수한 화력으로 밀어붙이는 구성이라, 사실상 다른 게임을 하는 느낌에 가깝습니다. 한 게임 안에 성격이 다른 선택지를 넣어 두는 것은 사이쿄가 다른 작품에서도 즐겨 쓰던 방식입니다.
보스가 이상합니다
이 게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것이 보스입니다. 하늘을 나는 돼지 모양 기체가 나오고, 거대한 폭탄이 보스로 등장했다가 쓰러뜨리면 장난감 원숭이가 되어 버리는 식입니다. 세계관을 진지하게 설명하려는 시도가 아예 없고, 그냥 웃기려고 만든 것들이 줄지어 나옵니다.
다만 생김새가 우스꽝스럽다고 보스가 만만한 것은 아닙니다. 보스전에서는 탄이 제법 촘촘하게 깔리고, 이때 아껴 둔 포획물을 던져 순식간에 체력을 깎는 것이 이 게임의 정석 공략이 됩니다. 보스 앞에 도착했을 때 집게에 아무것도 없다면 그 싸움은 훨씬 길고 위험해집니다.
사이쿄의 다른 얼굴
사이쿄는 1990년대 슈팅 장르를 떠받친 회사 중 하나입니다. 스트라이커즈 1945 시리즈로 이름을 알렸고, 검과 마법을 소재로 삼은 솔 디바이드나 헬리콥터를 회전시켜 쏘는 제로 거너처럼 형식을 계속 비틀어 보는 시도도 함께 해 왔습니다. 이 게임 역시 그 실험 계열에 속합니다. 정통 탄막으로 승부하지 않고, 붙잡아 던지는 장치와 만화 같은 그림체로 다른 재미를 노린 것입니다.
그래서 이 게임은 사이쿄 팬들 사이에서도 평이 갈립니다. 매운 난이도를 기대하고 잡으면 싱겁고, 반대로 슈팅이 무섭기만 한 장르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는 좋은 입문작이 됩니다. 적어도 화면을 보고 겁먹을 일은 없는 슈팅입니다.
처음 하는 사람에게
슈팅의 기본은 이 게임에서도 그대로입니다. 기체의 실제 피격 판정은 그림보다 작으니 스치는 탄에 놀라지 말고, 화면 아래쪽에 붙어 탄을 넓게 보면서 좌우로 조금씩 흘리는 식으로 피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화면 위쪽으로 파고들면 반응할 시간이 사라집니다.
여기에 이 게임만의 습관을 하나 더 붙이면 됩니다. 잡을 수 있는 적이 보이면 일단 집게를 써 보는 것입니다. 세 마리를 채운 채로 스테이지를 넘어가는 습관이 붙으면 보스전이 눈에 띄게 편해지고, 그때부터 이 게임이 왜 이런 장치를 넣었는지가 손으로 이해됩니다.
두 명이 함께 할 수 있어서 옆 사람과 나란히 앉으면 화면이 더 소란스러워집니다. 서로 잡아 둔 것을 언제 던질지 눈치를 보게 되는 것도 이 게임의 소소한 재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