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 인베이더 2000
스페이스 인베이더 2000 (Space Invaders 2000 Japan) · 1999 · Ta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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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해 넘게 살아남은 그 실루엣
화면 위쪽에 오와 열을 맞춰 늘어선 외계인들이 좌우로 움직이다 한 칸씩 내려옵니다. 이 장면 하나가 비디오 게임의 출발점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 실루엣은 티셔츠에도 찍히고 벽화에도 그려질 만큼 널리 퍼졌는데, 정작 원본은 흑백 화면에 셀로판지를 붙여 색을 낸 물건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그 원본을 그대로 넣어 두고, 그 옆에 색과 소리를 입힌 새 판을 나란히 얹었습니다.
같은 게임을 두 벌 넣어 둔 셈인데, 옛날 판을 한 번 해 보고 새 판으로 넘어가면 이십 년 사이에 무엇이 달라졌는지가 손끝으로 느껴집니다. 규칙은 똑같은데 체감은 전혀 다릅니다.
무엇을 하는 게임인가
스페이스 인베이더 2000(Space Invaders 2000)은 화면 아래에서 좌우로만 움직이는 포대를 조종해, 위에서 내려오는 외계인 편대를 전부 없애는 슈팅입니다. 조작은 좌우와 발사 버튼이 전부입니다. 이보다 단순한 조작을 찾기 어렵습니다.
핵심은 남은 적의 수입니다. 적이 줄어들수록 남은 적들이 빨라집니다. 편대가 빽빽할 때는 느긋하게 조준할 수 있지만, 마지막 한 마리가 남으면 화면 끝에서 끝까지 순식간에 지나가 버립니다. 이 가속은 원본에서 처리량이 줄면서 생긴 성질이었는데, 그게 그대로 게임의 긴장 구조가 되었습니다.
화면 아래에는 방패 몇 개가 놓여 있습니다. 적의 탄을 막아 주지만 맞을수록 갉여 나가고, 내 총알도 방패를 뚫으며 구멍을 냅니다. 방패 뒤에 숨어 버티느냐, 구멍을 뚫어 사격로를 내느냐가 첫 판단입니다.
새로 얹힌 것들
리메이크 쪽에서는 화면이 화려해집니다. 배경이 움직이고, 적을 부수면 빛이 퍼지고, 음악이 계속 깔립니다. 원본의 심장 박동 같은 네 음짜리 소리와는 완전히 다른 인상입니다. 그런데도 조작감은 원본을 크게 건드리지 않아서, 옛날에 하던 감각으로 그대로 붙을 수 있습니다.
아이템이 들어온 것이 가장 큰 변화입니다. 특정 적을 잡으면 무기가 바뀌거나 잠시 강해지는데, 이걸 언제 쓰느냐로 판이 갈립니다. 편대가 아직 두꺼울 때 강화 무기를 낭비하면 정작 빨라진 마지막 구간을 맨손으로 맞아야 합니다.
가끔 화면 위를 가로지르는 접시 모양 비행체는 예나 지금이나 점수 덩어리입니다. 잡으면 점수가 크게 붙지만 놓치면 그냥 지나가 버리니, 편대 정리와 접시 사냥 사이에서 손이 바빠집니다.
초보자가 막히는 곳
처음 하는 사람이 가장 많이 죽는 지점은 편대가 화면 아래까지 내려온 뒤입니다. 적이 내려올수록 적의 탄이 도달하는 시간이 짧아지고, 피할 여유가 사라집니다. 그래서 위쪽 줄부터 차근차근 지우는 것보다, 양쪽 끝 열을 먼저 깎아 편대의 좌우 폭을 줄이는 쪽이 안전합니다. 폭이 좁아지면 편대가 한 칸 내려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어져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흔한 실수는 방패를 다 부수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시야가 트여서 좋아 보이지만, 후반에 몰릴 때 숨을 곳이 없습니다. 가운데 방패 하나 정도는 온전히 남겨 두는 습관이 오래 버티는 데 도움이 됩니다.
오락실 밖에서도 통하는 이유
이 게임이 오래 살아남은 이유는 규칙을 설명하는 데 한 문장이면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내려오는 걸 다 쏘면 됩니다. 그런데 그 한 문장 안에 속도 조절, 위치 선정, 자원 관리가 전부 들어 있습니다. 좋은 규칙은 짧다는 걸 보여 주는 표본 같은 게임입니다.
국내에서도 오락실 초창기부터 자리를 지켰고, 나중에는 문방구 앞 기계나 전자오락실 구석에서 계속 돌아갔습니다. 화려한 게임들 사이에서도 동전을 넣는 사람이 끊이지 않았던 것은, 실력이 늘면 늘어난 만큼 정확히 더 오래 버틸 수 있다는 정직함 때문이었을 겁니다. 이 리메이크는 그 정직함을 건드리지 않은 채 겉모습만 새로 입혔습니다.
두 시대를 한 화면에서 비교하기
이 판본의 가장 큰 재미는 비교입니다. 원본을 한 판 하고 리메이크를 한 판 하면, 같은 규칙 위에서 무엇을 더하고 무엇을 그대로 두었는지가 또렷하게 보입니다. 더한 것은 색과 소리와 아이템이고, 그대로 둔 것은 편대의 가속과 방패의 소모, 그리고 좌우 두 방향뿐인 이동입니다. 손대지 않은 쪽이 게임의 뼈대라는 뜻입니다.
리메이크판을 한참 하다가 원본으로 돌아가면 화면이 텅 빈 것처럼 느껴지는데, 이상하게도 긴장은 더합니다. 배경도 효과도 없으니 남은 적의 위치와 속도만 눈에 들어오고, 그래서 실수가 곧바로 눈에 띕니다. 요즘 만든 게임 사이에서도 이 원본이 계속 되살아나는 이유를 그 몇 분 사이에 알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