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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트럼 2000

스펙트럼 2000 (Spectrum 2000 Vertical) · 2000 · Yona Te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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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 오락실에 남은 세로 슈팅

2000년이라는 연도를 보고 잠깐 갸웃하게 되는 게임입니다. 그 무렵 오락실 화면은 이미 대전 격투와 리듬 게임, 그리고 큼직한 체감형 기계가 차지하고 있었고, 세로로 긴 화면에 작은 기체 하나 띄워 놓고 위로 올라가는 슈팅은 한물간 물건 취급을 받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기판은 그 한물간 형식을 그대로 붙들고 나왔습니다. 유행을 따라가지 않고, 슈팅을 좋아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만 담아 놓은 물건입니다.

이름부터가 그렇습니다. 새 천 년을 앞두고 여기저기 붙던 '2000'이라는 숫자를 제목에 그대로 얹었습니다. 지금 보면 촌스럽지만, 당시에는 그 숫자 하나로 최신형이라는 인상을 주려던 관습이 있었습니다. 화면에 뜬 제목을 보고 있으면 그때 오락실 간판과 전단지의 분위기가 같이 떠오릅니다.

스펙트럼 2000 슈팅 게임 화면 1 - 오락실 (2000)

어떤 게임인가

스펙트럼 2000(Spectrum 2000)은 화면이 아래에서 위로 흐르는 세로 스크롤 슈팅입니다. 플레이어는 화면 아래쪽의 기체 하나를 조종하고, 위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적기와 적탄을 피하면서 총알을 쏘아 부숩니다. 목표는 단순합니다. 맞지 않고 살아남아 화면 끝의 큰 적까지 도달하는 것입니다.

조작은 레버와 버튼 몇 개가 전부입니다. 레버로 기체를 상하좌우로 옮기고, 버튼을 눌러 앞으로 총알을 쏩니다. 버튼을 계속 누르고 있으면 알아서 연사가 되는 구성이 보통이라, 손가락을 혹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익혀야 할 것은 딱 하나, 기체의 어느 부분에 맞아야 죽는가입니다. 세로 슈팅은 기체 그림 전체가 아니라 한가운데의 작은 한 점만 판정에 쓰는 경우가 많아서, 보기에는 스칠 듯한 탄도 실제로는 지나가 버립니다. 이걸 몸으로 익히기 전까지는 괜히 넓게 피하다가 오히려 다른 탄에 맞습니다.

한 판이 흘러가는 방식

한 판은 대체로 같은 리듬으로 굴러갑니다. 잔챙이 적기들이 정해진 경로로 줄지어 들어오고, 그것들을 처리하는 사이사이에 좀 더 단단한 적이 섞여 나오다가, 마지막에 화면을 크게 차지하는 보스가 등장합니다. 잔챙이 구간은 적이 나오는 자리를 외우면 편해지고, 보스 구간은 공격 패턴을 몇 번 보고 나면 안전한 자리가 어디인지 감이 잡힙니다.

막히는 지점은 대개 두 곳입니다. 하나는 적 숫자가 갑자기 늘어나면서 화면이 지저분해지는 구간입니다. 여기서는 욕심내서 다 부수려 하지 말고, 자기가 지나갈 길만 확보하며 아래쪽에 붙어 있는 편이 낫습니다. 다른 하나는 보스가 화면을 넓게 덮는 공격을 쓸 때입니다. 이때는 오히려 보스 가까이 붙는 쪽이 안전할 때가 있습니다. 탄이 퍼져 나가기 전이라 사이가 넓기 때문입니다.

파워업 아이템을 흘리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화력이 약한 상태로 뒤쪽까지 가면 적을 제때 못 부수고, 못 부순 적이 쏘는 탄이 쌓여서 결국 맞습니다. 슈팅에서 죽는 이유는 대부분 손이 느려서가 아니라 화력이 부족해서입니다.

요나 테크라는 이름

요나 테크는 2000년 전후에 아케이드 기판을 만들던 작은 개발사입니다. 이 시기에는 자본이 크지 않은 회사들이 기존에 검증된 장르를 골라 기판을 내놓는 일이 흔했습니다. 대작을 만들 여력은 없지만, 슈팅처럼 규칙이 명확하고 한 판이 짧은 장르는 적은 인원으로도 완성도 있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게임들은 화려한 홍보 없이 조용히 오락실 구석에 놓였다가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이름을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고, 자료도 많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지금 이 게임을 다시 켜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조금 특별한 일입니다.

지금 해 보면

오랜만에 세로 슈팅을 잡으면 처음에는 답답합니다. 요즘 게임처럼 친절한 안내가 없고, 죽으면 그냥 죽습니다. 하지만 몇 판 하다 보면 이 장르가 왜 오래 사랑받았는지 알게 됩니다. 한 판이 짧고, 실패의 이유가 분명하고, 다시 시작하는 데 부담이 없습니다. 방금 죽은 자리를 다음번에는 넘어가는 순간의 기분이 이 장르의 전부라고 해도 됩니다.

처음이라면 목표를 낮게 잡는 편이 좋습니다. 끝까지 가겠다고 마음먹지 말고, 첫 보스까지만 안 죽고 가 보자고 정해 놓고 반복하면 실력이 붙는 게 눈에 보입니다. 그렇게 한 구간씩 밀어 두는 재미로 하는 게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