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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그레스

어그레스 (Agress English Bootleg) ·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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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인데 이름은 험악합니다

제목만 보면 격투나 슈팅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실제로는 조각을 밀어서 맞추는 조용한 퍼즐 게임입니다. 이런 이름과 내용의 간극은 그 시절 게임에서 종종 있던 일인데, 덕분에 처음 화면을 켠 사람은 잠시 당황하게 됩니다. 화려한 폭발 대신 격자와 조각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 당황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몇 판만 밀어 보면 이 게임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금방 알게 되고, 그때부터는 조각 하나를 어디로 밀지 고민하느라 시간이 훌쩍 지나갑니다. 조용한 겉모습에 비해 붙잡는 힘이 만만치 않은 종류입니다.

어그레스 퍼즐 게임 화면 1 - 오락실 (2003)

어떤 게임인가

Agress는 격자 위에 흩어진 조각들을 밀어 옮겨서 원하는 형태를 완성하는 슬라이딩 퍼즐입니다. 흔히 아는 그림 맞추기 퍼즐과 뿌리는 같지만, 단순히 순서대로 번호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조각을 이어 붙여 통하는 길이나 온전한 모양을 만드는 쪽에 가깝습니다.

조작은 방향 입력과 확정 버튼이면 충분합니다. 옮기고 싶은 조각을 고르고, 밀 방향을 정하면 그쪽으로 이동합니다. 문제는 조각이 자기 마음대로 아무 데나 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빈칸이 있어야 밀 수 있고, 한 조각을 옮기면 다른 조각의 통로가 막힙니다. 이 제약이 퍼즐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빈칸이 곧 실력입니다

슬라이딩 퍼즐의 핵심은 조각이 아니라 빈칸입니다. 빈칸을 어디에 두느냐가 다음 몇 수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초보자는 목표 조각만 쳐다보며 무작정 밀다가 빈칸을 엉뚱한 구석에 처박아 놓고 옴짝달싹 못 하게 됩니다. 그러면 원위치로 되돌리는 데만 여러 수를 낭비하게 됩니다.

숙련되면 반대로 움직입니다. 옮길 조각이 아니라 빈칸을 먼저 원하는 자리로 데려온 다음, 그 빈칸을 이용해 조각을 한 칸씩 밀어 넣습니다. 이 순서를 바꾸는 것만으로 같은 판이 훨씬 쉬워집니다. 처음 하는 분이라면 조각을 잡기 전에 빈칸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부터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시기 바랍니다.

막히는 지점과 넘기는 요령

퍼즐 게임에서 가장 흔한 실패는 거의 다 맞춰 놓고 마지막 몇 조각에서 무너지는 것입니다. 판의 대부분이 정리될수록 빈칸이 줄고 움직일 여지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뒤로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이를 피하려면 순서를 정해 두고 푸는 편이 좋습니다. 한쪽 끝이나 가장자리부터 확정해 나가고, 확정한 부분은 다시 건드리지 않는 것입니다. 가운데부터 손대면 이미 맞춘 것을 계속 허물게 됩니다. 또 제한 시간이 걸린 판에서는 완벽한 최단 경로를 찾으려 하기보다 일단 손을 움직여 형태를 잡아 가는 쪽이 낫습니다. 머릿속으로만 굴리다 시간이 다 가는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조용한 장르의 매력

이 게임은 화려한 연출로 승부하지 않습니다. 화면에 보이는 것은 격자와 조각, 그리고 남은 시간 정도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단출함 덕분에 집중이 잘 됩니다. 볼 것이 적으니 생각할 것에만 집중하게 되고, 한 판을 풀어낸 순간의 후련함이 선명하게 남습니다.

같은 퍼즐이라도 블록이 떨어지는 낙하형 퍼즐과는 결이 완전히 다릅니다. 저쪽이 반사신경과 순간 판단의 게임이라면, 이쪽은 앉아서 수를 세는 게임에 가깝습니다. 급하게 손을 움직일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라, 성격이 급한 사람에게는 오히려 훈련이 되는 종류입니다.

지금 해 볼 만한가

요즘 나오는 퍼즐 게임에 비하면 편의 기능이 거의 없습니다. 되돌리기나 힌트 같은 것을 기대하기 어렵고, 한 번 잘못 밀면 그 결과를 안고 가야 합니다. 그 불친절함이 오히려 한 수 한 수를 신중하게 만들어 준다는 점은 이 시절 게임들의 공통된 매력이기도 합니다.

한 판이 길지 않아 짬이 날 때 열기에 알맞고, 규칙을 익히는 데 설명서가 필요 없습니다. 조각을 밀어서 그림을 맞춰 본 경험이 있는 분이라면 바로 감이 올 것이고, 그 익숙한 규칙이 어디까지 어려워질 수 있는지 확인해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