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AKSILGAME

예스노 신리 토키메키 차트

예스노 신리 토키메키 차트 (Yesno Sinri Tokimeki Chart) · 1992 · Taito

방향버튼ASZX보조QERT동전Shift시작Enter

게임 화면 하단에서 —키 변경 Controls Settings·저장·불러오기 Save State / Load State

점수도 목숨도 없는 오락실 기계

오락실 기계라고 하면 보통은 점수판이 있고, 실수하면 목숨이 줄고, 언젠가는 게임 오버가 뜹니다. 그런데 이 기계 앞에는 그런 게 없습니다. 화면에 질문이 하나 뜨고, 예 아니면 아니오를 고릅니다. 그러면 다음 질문이 뜹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다 고르고 나면 결과 화면이 나오고, 자리에서 일어나면 됩니다.

지금 감각으로는 오락실에 왜 이런 기계가 있었나 싶지만, 1990년대 초 일본 오락실에는 이런 종류의 기계가 실제로 한 자리씩 있었습니다. 게임을 하러 온 사람보다는, 게임을 하는 친구를 기다리는 사람이나 둘이 같이 와서 뭔가 화젯거리를 찾던 사람들이 앉던 자리입니다. 동전 하나로 몇 분간 대화거리를 사는 기계라고 보면 가장 가깝습니다.

예스노 신리 토키메키 차트 보드·카드 게임 화면 1 - 오락실 (1992)

어떤 게임인가

예스노 신리 토키메키 차트(Yesno Sinri Tokimeki Chart)는 타이토가 1992년에 내놓은 심리 테스트형 문답 기계입니다. 화면에 짧은 질문이 차례로 나오고, 그때그때 예 또는 아니오 중 하나를 고릅니다. 고른 답이 쌓이면 그것을 바탕으로 성향을 분류한 결과가 나옵니다. 잡지 뒤쪽에 실리던 심리 테스트 코너를 그대로 기계에 옮겨 놓았다고 보면 됩니다.

조작은 이보다 단순할 수 없습니다. 선택지 둘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 전부이므로, 레버를 좌우로 움직이거나 버튼 하나를 눌러 정하면 됩니다. 반사 신경도, 연습도, 커맨드 외우기도 필요 없습니다. 오락실 기계 중에서 조작 설명이 가장 짧은 축에 듭니다.

분류상으로는 문답 기계이니 퀴즈 쪽에 가깝지만, 맞고 틀리는 답이 없다는 점에서 보통의 퀴즈 게임과는 다릅니다. 퀴즈 게임은 지식을 겨루고 틀리면 끝나지만, 이 기계는 어떤 답을 골라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저 고른 대로 다른 결과가 나올 뿐입니다.

예스노 신리 토키메키 차트 보드·카드 게임 화면 2 - 오락실 (1992)

혼자보다 둘이 앉는 기계

이런 기계의 재미는 화면 안이 아니라 화면 앞에 있습니다. 혼자 앉아 질문에 답하고 결과를 보면 삼십 초 만에 끝나지만, 둘이 앉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한 사람이 답을 고르는 동안 옆에서 왜 그걸 고르냐고 참견하게 되고, 결과가 나오면 맞다 아니다를 두고 한참 떠들게 됩니다.

그래서 이 기계는 같이 온 사람이 있을 때 진가가 나옵니다. 상대의 답을 보면서 이 사람이 이런 질문에 이렇게 답하는구나 하고 알게 되는 것, 그게 이 기계가 파는 물건입니다. 결과가 정확한지 아닌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습니다.

말이 벽이 되는 기계

다만 이 기계에는 넘기 어려운 문턱이 하나 있습니다. 질문과 결과가 전부 일본어 문장으로 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액션 게임이나 슈팅 게임은 글자를 못 읽어도 화면만 보면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있지만, 이 기계는 질문의 뜻을 모르면 답을 고를 이유 자체가 사라집니다.

그런 이유로 국내 오락실에서는 이런 종류의 기계를 거의 볼 수 없었습니다. 들여와 봐야 앉을 사람이 없으니 자리값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한국 오락실에 들어온 일본 기계들은 대개 글을 몰라도 되는 장르였고, 문장이 중심인 기계는 자연히 걸러졌습니다.

지금 이 기계를 켜 보는 사람도 같은 문턱을 만납니다. 일본어를 읽을 수 있다면 당시 일본의 젊은 층이 어떤 것을 화젯거리로 삼았는지 엿보는 재미가 있고, 읽을 수 없다면 화면 구성과 그림, 음악 정도를 구경하게 됩니다.

기록으로서의 값어치

이 기계를 지금 다시 꺼내 보는 이유는 잘 만든 게임이어서가 아닙니다. 오락실이라는 공간이 무엇을 담고 있었는지를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오락실은 실력을 겨루는 곳이기만 한 게 아니라, 동전 몇 개로 시간을 때우고 사람과 어울리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사진 스티커 기계나 점괘 기계가 오락실 한쪽에 자리를 잡았던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타이토는 오락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다루던 큰 회사였고, 그런 회사가 이런 가벼운 기계까지 만들어 내보냈다는 사실 자체가 당시 시장의 넓이를 말해 줍니다. 잘 팔리는 대작 옆에는 늘 이런 작은 기계들이 있었고, 대부분은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습니다. 이 기계가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그 자체로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