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티마 3
울티마 3 엑소더스 (Ultima Exodus) · 1987 · Pony Can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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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를 짜서 떠나는 첫 RPG
초기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은 대개 주인공 하나가 던전을 헤매는 형태였습니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네 명을 만들어 함께 데리고 다닙니다. 전투가 벌어지면 화면이 전환되고, 네 명이 각자 한 번씩 움직입니다. 지금은 당연한 방식이지만, 그때는 이 구성 자체가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시작하자마자 캐릭터를 넷 만드는 일부터 합니다. 종족과 직업을 고르고 능력치를 나눠 주는 그 화면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게 되는데, 그 고민이 이 게임의 첫 재미입니다.
어떤 게임인가
울티마 3(Ultima III: Exodus)는 소사리아라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최종 목표인 엑소더스를 쓰러뜨리는 롤플레잉 게임입니다. 화면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방식이고, 캐릭터들은 지도 위를 한 칸씩 이동합니다. 마을에 들러 장비를 사고, 성에서 정보를 얻고, 던전과 야외에서 싸워 경험치를 모읍니다.
특별한 것은 게임이 무엇을 하라고 알려 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는 마을 사람들의 말을 모아 스스로 짜맞춰야 합니다. 그래서 종이에 지도를 그리고 들은 말을 적어 두는 것이 사실상 게임의 일부가 됩니다.
전투는 별도 화면에서 벌어집니다. 네 명이 각자 무기로 치거나 마법을 쓰고, 적도 순서대로 움직입니다. 위치를 잘못 잡으면 약한 마법사가 앞줄에서 두들겨 맞으니, 대형을 신경 써야 합니다.
파티를 짜는 법
직업은 싸움에 특화된 쪽과 마법에 특화된 쪽, 그리고 둘을 섞은 쪽으로 나뉩니다. 무작정 전사만 넷 뽑으면 초반은 편하지만 마법이 없어 회복도 부활도 못 합니다. 반대로 마법사를 많이 넣으면 초반 전투에서 순식간에 쓰러집니다.
무난한 구성은 앞줄을 맡을 튼튼한 직업 둘에, 공격 마법을 쓰는 쪽과 회복 마법을 쓰는 쪽을 하나씩 두는 것입니다. 종족에 따라 오를 수 있는 능력치 상한이 다르므로, 힘이 필요한 자리와 지능이 필요한 자리를 갈라 뽑으면 나중에 편합니다.
캐릭터가 죽어도 마을에서 되살릴 수 있지만 돈이 듭니다. 초반에는 그 돈이 곧 장비값이라, 무리한 전투를 피하는 것 자체가 성장 속도를 올리는 방법이 됩니다.
초반에 해야 할 일
시작하자마자 던전으로 들어가면 거의 확실히 전멸합니다. 처음에는 마을 근처 들판에서 약한 적만 골라 잡으며 돈과 경험치를 모으는 편이 좋습니다. 어느 정도 모이면 갑옷과 무기를 갖추고, 그다음에 던전 첫 층부터 조심스럽게 내려갑니다.
경험치를 모아도 저절로 레벨이 오르지 않는 것이 이 작품의 특징입니다. 성에 찾아가 왕에게 보고해야 그때 레벨이 올라갑니다. 이걸 모르면 아무리 싸워도 강해지지 않으니, 일정 수준마다 성에 들르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식량도 계속 줄어듭니다. 야외를 오래 돌아다니면 바닥나고, 그러면 파티가 서서히 죽어 갑니다. 마을에 들를 때마다 넉넉히 사 두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배를 얻고 나서
육지를 걸어 다니는 동안에는 갈 수 있는 곳이 제한적입니다. 해적선을 물리쳐 배를 빼앗으면 그때부터 세계가 확 넓어집니다. 바다 건너에 있던 섬과 마을에 닿을 수 있게 되고,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굴러가기 시작합니다.
중반 이후에는 마을에서 들은 단서들이 하나씩 맞물립니다. 어떤 표식이 필요하고 어떤 순서로 써야 하는지가 그 단서 안에 흩어져 있어서, 적어 둔 메모를 다시 읽어 보게 됩니다. 이 과정이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스스로 길을 찾아냈을 때의 성취감은 요즘 게임에서 얻기 어려운 종류입니다.
그 시절 이 게임의 무게
울티마 시리즈는 이후 서양 롤플레잉의 뼈대를 만든 계열로 꼽힙니다. 파티 구성, 자유로운 탐험, 마을 사람과의 대화로 얻는 단서 같은 요소가 뒤이은 수많은 작품에 이어졌습니다. 이 3편은 그 형태가 처음으로 뚜렷하게 완성된 지점입니다.
국내에서는 원판을 구하기 어려워 잡지 기사와 공략으로 먼저 접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영어로 된 대화를 사전 찾아 가며 읽고, 노트에 지도를 옮겨 그리며 진행하던 경험은 이 시기 컴퓨터 롤플레잉을 해 본 사람들에게 공통된 기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