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리어
워리어 (Warrior) · 1983 · ASC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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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X라는 규격이 세상에 나온 게 1983년입니다. 그해에 나온 소프트라면 기계가 팔리기도 전에 만들어졌다는 뜻입니다. 아직 아무도 이 기계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르던 때, 만드는 사람들은 각자 알아서 방향을 잡아야 했습니다. Warrior는 그 첫해에 나온 물건 중 하나입니다. 만든 곳은 MSX 규격 자체를 주도한 아스키입니다.
Warrior는 전사 한 명을 조종해 미로를 돌아다니며 괴물들과 싸우는 게임입니다. 수집 정보에는 퍼즐로 분류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미로를 이동하면서 적을 상대하고 성장 요소가 얹힌, 초기 액션 RPG 계열에 가까운 구성입니다.
미로와 싸움이 붙어 있는 구조
한 판은 미로로 되어 있고, 그 안을 돌아다니는 것이 기본 행동입니다. 길목마다 괴물이 있어서 마주치면 싸워야 합니다. 싸워서 이기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지면 처음부터입니다.
미로 안에는 보물이 흩어져 있습니다. 이걸 주우면 능력이 올라가는 구조라, 단순히 출구를 향해 최단 거리로 달리는 게 아니라 구석을 돌아보며 챙길 것을 챙기는 판단이 필요합니다. 지금 몸이 약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앞으로 나가느냐, 시간을 들여 더 강해지고 나가느냐가 매 순간의 선택입니다.
구역은 여러 개로 나뉘어 있고 하나를 정리하면 다음으로 넘어갑니다. 뒤로 갈수록 미로가 복잡해지고 적도 강해집니다. 초반에 준비를 소홀히 하면 중반에서 벽에 부딪히는 구조라, 처음 몇 판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전체를 좌우합니다.
지도를 그리며 하는 게임
이 시절 미로 게임을 하던 사람들은 대개 종이와 연필을 옆에 뒀습니다. 화면이 좁고 자동 지도 같은 건 없었으니, 어디를 가 봤고 어디가 막다른 길인지 직접 기록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Warrior도 그런 게임입니다.
실제로 1984년 일본의 MSX 잡지에는 이 게임의 공략과 지도가 실렸습니다. 잡지가 지도를 실어 줄 정도라면 그냥 몇 판 하고 마는 게임은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유럽과 일본의 여러 컴퓨터 잡지에서 다뤄지기도 했습니다.
지금 처음 잡는 사람에게 이 부분이 가장 큰 장벽입니다. 게임이 아무것도 안내해 주지 않습니다. 길을 잃었을 때 되돌아갈 방법을 알려 주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첫 몇 판은 그냥 지형을 익히는 데 쓴다고 생각하는 편이 마음이 편합니다.
16킬로바이트로 만든 세계
이 게임의 카트리지 용량은 16킬로바이트입니다. 요즘 사진 한 장보다 작은 공간입니다. 그 안에 미로 여러 개와 적과 전투 규칙과 소리를 전부 넣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초기 MSX 소프트는 모든 것이 최소한입니다. 그림은 몇 가지 무늬를 조합해 만들고, 소리는 PSG 음원으로 짧은 신호음 몇 개를 냅니다. 화려함으로 승부할 수 없으니 규칙 자체로 붙잡아야 했고, 그래서 오히려 게임의 뼈대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당시 가격은 4800엔이었습니다. 지금 감각으로 옮기면 결코 싼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소프트 하나를 사면 그걸 몇 달씩 붙잡고 있어야 했던 시절이라, 게임이 불친절한 것도 어느 정도는 의도된 부분이었습니다.
아스키와 MSX
아스키는 MSX라는 규격을 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만든 회사입니다. 규격을 만든 곳이 직접 소프트도 냈다는 건, 그 기계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본보기를 보여야 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초기 아스키 소프트에는 이런 실험적인 성격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MSX는 대우와 금성 같은 회사가 국산 기종을 내면서 퍼졌습니다. 아이큐 시리즈가 대표적입니다. 학습용이라는 이름을 달고 팔렸지만 실제로는 게임기로 쓰인 비율이 훨씬 높았고, 문방구와 전자상가에서 복사한 소프트가 활발히 돌았습니다.
다만 Warrior처럼 1983년에 나온 초기 일본 소프트는 국내에 널리 퍼지지 않았습니다. 한국에 MSX가 본격적으로 보급된 건 그보다 몇 년 뒤였고, 그때는 이미 더 화려한 소프트가 잔뜩 나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게임은 한국에서 추억을 이야기할 만한 게임이라기보다, MSX가 어떻게 시작했는지 보여 주는 자료에 가깝습니다.
지금 잠깐 해 보기에는 오히려 부담이 없습니다. 규칙이 단순하고 한 판이 짧아서, 사십 년 전 컴퓨터 게임이 어땠는지 몇 분 만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