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지
젠지 (Zenji) · 1984 · Pony Can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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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설명에 선불교가 등장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젠지는 그 흔치 않은 쪽입니다. 만든 사람은 빛나는 화면과 미로의 재미에 선의 사유를 얹어 보려 했다고 했고, 실제로 화면을 켜면 검은 바탕 위에 형광빛 관이 얽혀 있는 기하학적인 그림이 나옵니다. 게임 자체는 대단히 단순한데, 그 단순함이 묘하게 오래 붙잡습니다.
젠지(Zenji)는 얽혀 있는 미로 조각을 하나씩 돌려서 미로 전체를 가운데 근원과 연결하는 퍼즐 액션입니다. 플레이어는 굴러다니는 얼굴 모양 말을 조종해 미로 위를 다니고, 조각 위에 서서 그 조각의 방향을 돌립니다. 조각이 제대로 이어지면 그 부분에 불이 들어오고, 화면 전체가 하나로 이어지면 판이 끝납니다. 제한 시간이 있고, 미로 위를 떠도는 불꽃에 닿으면 죽습니다.
무엇을 하는 게임인가
화면에 놓인 관들은 처음에는 제각각 어긋나 있습니다. 어떤 것은 직선, 어떤 것은 굽은 모양인데, 플레이어가 그 위에 올라가 방향을 돌릴 수 있습니다. 목표는 가운데에서 뻗어 나온 흐름이 모든 조각을 타고 끝까지 닿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어진 부분은 색이 바뀌어 표시되니, 어디까지 연결됐는지는 눈으로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시간과 적이 얹힙니다. 제한 시간이 줄어드는 동안 미로 위로 불꽃이 떠다니고, 이것들은 정해진 길을 따라 계속 돌아다닙니다. 그래서 조각을 돌리려면 그 자리에 가야 하는데, 가는 길이 안전한지를 매번 봐야 합니다. 계산만 잘해서 되는 게 아니고 손도 따라 줘야 하는, 퍼즐과 액션이 반씩 섞인 구조입니다.
가끔 조각 위에 숫자가 나타나 9부터 0까지 줄어듭니다. 사라지기 전에 그 자리를 밟으면 보너스 점수가 들어옵니다. 점수를 노린다면 이걸 챙겨야 하는데, 하필 위험한 자리에 뜨는 경우가 많아 욕심과 안전 사이에서 매번 갈등하게 됩니다.
요령과 막히는 지점
처음 하는 사람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눈에 보이는 대로 아무 조각이나 돌리는 것입니다. 이 게임의 연결은 근원에서부터 뻗어 나가기 때문에, 근원과 이미 이어진 부분의 끝자락부터 차례로 정리하는 게 훨씬 빠릅니다. 저쪽 구석부터 손대면 다 맞춰 놓고도 중간이 끊겨 있어 아무 소용이 없는 상황이 생깁니다.
두 번째는 경로 계획입니다. 조각을 돌리는 데 드는 시간보다 그 자리까지 걸어가는 시간이 더 깁니다. 그러니 다음에 손댈 곳을 정할 때 지금 위치에서 가까운 순서로 묶어 도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화면 좌우를 왔다 갔다 하다 보면 시간만 녹습니다.
세 번째는 불꽃을 피하는 방식입니다. 이 적들은 대체로 일정한 경로를 반복해 도니, 무작정 피해 다니기보다 몇 초 지켜보고 흐름을 읽는 편이 낫습니다. 지나간 직후의 자리가 가장 안전하다는 걸 알면 움직임이 훨씬 편해집니다.
판이 올라가면서 달라지는 것
초반 판은 미로가 작고 조각 수가 적어 연습장에 가깝습니다. 시간도 넉넉해 이것저것 돌려 보다 보면 요령이 잡힙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입니다. 판이 넘어갈수록 미로가 커지고, 조각의 배치가 까다로워지고, 떠도는 불꽃 수가 늘어납니다.
미로가 커진다는 건 이동 거리가 길어진다는 뜻이고, 그건 곧 시간 압박이 커진다는 뜻입니다. 후반으로 가면 정답을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최단 경로로 돌아다니며 손을 빠르게 놀려야 합니다. 이 게임이 퍼즐처럼 시작해서 액션처럼 끝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래서 실력이 늘면 접근이 바뀝니다. 처음에는 화면을 보고 한 조각씩 판단하지만, 익숙해지면 판이 뜨는 순간 전체 형태를 눈에 담고 어느 쪽부터 돌지 대략 정한 다음 움직이게 됩니다.
만든 곳과 이식판 이야기
젠지는 액티비전이 1984년에 내놓은 게임입니다. 이 회사는 원래 아타리에서 나온 개발자들이 세운 곳으로, 남들이 안 하는 발상을 게임 한 편으로 압축하는 데 능했습니다. 젠지도 그렇습니다. 대단한 화면이나 긴 이야기 없이, 미로를 잇는다는 발상 하나로 한 편을 채웠습니다.
이 게임은 여러 기종으로 나왔고, 그중 하나가 MSX판입니다. 일본에서는 포니 캐년이 유통을 맡았습니다. 국내에서 MSX는 오락실 게임을 집에서 대신하는 기계로 쓰이는 일이 많았는데, 이런 퍼즐 계열은 그 안에서 조금 다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요란하지 않고, 짧게 켜서 몇 판 하고 끄기에 알맞은 부류였습니다.
지금 다시 켜 보면 화면은 소박한데, 손에 익는 속도가 빠릅니다. 규칙 설명이 한 줄이면 끝나고, 그다음부터는 순전히 어떻게 도느냐의 문제가 되는 구성이라 세월을 덜 타는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