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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트 파이터

큐트 파이터 (Cute Fighter) · 1998 · Sem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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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등신 캐릭터가 싸우는 대전격투

대전격투 캐릭터는 대개 근육질에 다리가 길고 표정이 험합니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머리가 몸통만 한 2등신 캐릭터로 같은 싸움을 시키는 게임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맞으면 눈이 튀어나오고, 날아가면 몸이 종잇장처럼 접히고, 필살기를 쓰면 화면이 요란해집니다. 진지한 격투를 그대로 두고 겉모습만 우스꽝스럽게 바꾼 셈인데, 이 조합이 의외로 잘 맞았습니다.

큐트 파이터도 그 계보에 놓입니다. 제목부터 귀엽다는 말을 앞세우고 있고, 실제로 화면에 나오는 인물들이 아기자기합니다. 무섭게 생긴 캐릭터가 화면을 채우던 시기에, 오히려 그 반대로 가는 게 눈에 띄는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큐트 파이터 대전격투 게임 화면 1 - 오락실 (1998)

어떤 게임인가

큐트 파이터(Cute Fighter)는 두 사람이 마주 서서 라운드를 겨루는 2D 대전격투 게임입니다. 상대의 체력을 먼저 비우면 한 판을 가져가고, 정해진 승수를 먼저 채우면 이깁니다. 방향키로 다가가고 물러나고 앉고 뛰며, 버튼으로 공격의 세기를 나눠 쓰는 기본 틀은 이 장르의 표준을 그대로 따릅니다.

캐릭터를 고르는 화면부터 성격이 드러납니다. 저마다 생김새가 다른 인물들이 늘어서 있고, 고른 뒤에는 각자의 필살기를 방향 입력과 버튼 조합으로 꺼내 씁니다. 커맨드는 널리 쓰이던 방식을 따르기 때문에, 다른 대전격투를 해 본 사람이라면 몇 판 안에 손이 익습니다. 처음 이 장르를 잡는 사람에게도 캐릭터가 작고 동작이 큼직해서 상황을 읽기가 수월한 편입니다.

귀여운 그림과 진지한 규칙

이런 부류의 게임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은 겉모습과 손맛의 균형입니다. 그림만 귀엽고 조작이 뻣뻣하면 금방 질리고, 반대로 규칙이 지나치게 빡빡하면 귀여운 그림을 보고 앉은 손님이 도망갑니다. 그래서 이런 게임들은 대체로 판정을 너그럽게 잡고, 한 방의 위력을 키워서 승부가 빨리 나도록 만듭니다.

빨리 끝나는 승부는 오락실에서 미덕이었습니다. 뒤에 줄이 서 있으면 한 판이 길어지는 게 부담이고, 한 대 맞고 대세가 기울면 다음 사람에게 자리를 넘기기도 쉽습니다. 실력 차가 나도 몇 번의 역전 기회가 남아 있어서, 친구끼리 붙었을 때 일방적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도 이런 구성의 장점입니다.

국산 대전격투가 놓였던 자리

이 게임을 만든 세미콤은 1990년대 국내에서 오락실 기판을 만들던 회사입니다. 퍼즐과 액션, 대전격투까지 여러 장르에 손을 댔고, 국내 오락실과 문방구 앞 오락기에 자기 게임을 꾸준히 올렸습니다. 대작과 정면으로 겨루기보다, 값이 싸고 규칙이 단순한 기판으로 빈자리를 채우는 방식이었습니다.

국산 대전격투의 처지는 쉽지 않았습니다. 이 장르는 손님이 두 명 이상 붙어야 성립하는데, 손님은 이미 이름을 아는 일본 대작 앞에 몰려 있었습니다. 아무리 잘 만들어도 옆에 앉을 상대가 없으면 그 기판은 비어 있게 됩니다. 그래서 국산 격투 게임은 대형 오락실보다 동네 가게나 문방구 오락기에서 더 자주 보였습니다. 거기서는 선택지가 적었기 때문에, 있는 게임을 하게 되었으니까요.

1998년의 오락실

이 게임이 나온 때는 국내 오락실이 급격히 어려워지던 시기입니다. 경제 위기로 문 닫는 가게가 늘었고, 남은 가게도 새 기판을 들이기를 주저했습니다. 동시에 집집마다 개인용 컴퓨터가 놓이고 온라인 게임이 막 퍼지기 시작하면서, 오락실에 오던 손님이 다른 곳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런 시기에 나온 국산 기판은 태생부터 불리했습니다. 홍보에 쓸 돈이 없었고, 잡지에 크게 소개되는 일도 드물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게임들은 널리 알려지기보다 어느 동네 어느 가게에서 몇 명에게만 기억되는 식으로 남았습니다. 지금 이런 작품을 다시 꺼내 보는 일은 그 흩어진 기억을 다시 모아 보는 일에 가깝습니다.

지금 붙어 본다면

혼자 컴퓨터를 상대하는 것보다 사람과 붙을 때 훨씬 재미있는 게임입니다. 이 시기 국산 기판의 컴퓨터 상대는 대체로 사람의 입력을 읽고 반응하는 방식이라, 뒤로 갈수록 이상하게 강해지고 같은 수가 통하지 않게 됩니다. 이럴 때는 무작정 공격을 반복하지 말고, 다가가는 척하다 멈추거나 점프를 섞어 상대의 반응을 흐트러뜨리는 편이 낫습니다.

캐릭터는 처음에 마음에 드는 생김새로 하나 골라 붙잡는 것을 권합니다. 필살기 두어 개만 손에 익으면 그다음부터는 거리를 재고 기다리는 싸움이 되기 때문에, 여러 캐릭터를 돌려 쓰기보다 하나를 계속 쓰는 쪽이 훨씬 빨리 늡니다. 몇 판만 해도 이 게임이 무엇을 노렸는지는 충분히 전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