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 파이터즈
SD 파이터즈 (Sd Fighters Korea) · 1996 · Sem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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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이면 오락실 격투 게임 자리는 이미 일본 회사들이 다 차지하고 있던 때입니다. 그 틈에 국산 기판으로 대전격투를 내놓는다는 건 웬만한 배짱이 아니면 못 할 일이었습니다. 세미콤은 정면으로 붙는 대신 2등신 캐릭터라는 우회로를 골랐습니다. 머리가 몸통만 한 캐릭터들이 진지하게 필살기를 쓰는 그림은, 그 시절 오락실에서 확실히 눈에 띄었습니다.
SD 파이터즈(SD Fighters)는 여덟 명의 캐릭터 중 하나를 골라 일대일로 겨루는 2D 대전격투 게임입니다. 조작은 레버와 버튼 세 개로, 펀치와 킥과 점프가 각각 배정되어 있습니다. 잡기와 커맨드 필살기가 있고, 라운드를 이기면 다음 상대로 넘어가는 익숙한 흐름을 그대로 따릅니다. 붙어서 두들기고 거리를 재다 필살기를 지르는, 이 장르의 기본 문법 안에서 움직이는 게임입니다.
2등신이 만드는 차이
캐릭터가 2등신이라는 건 그냥 그림체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몸통이 짧으니 판정 상자도 짧아지고, 그만큼 점프 궤적과 대공기의 감각이 정상 비율 격투 게임과 달라집니다. 익숙한 감으로 대공을 내밀면 상대 머리 위로 헛치는 일이 자주 생깁니다.
머리가 크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서 있는 상태에서 상단으로 오는 공격이 머리에 걸리는 빈도가 체감으로 높습니다. 그래서 몇 판 해 보면 자연스럽게 앉아서 다리를 긁는 하단 중심 운영으로 손이 갑니다. 처음 앉은 사람이 위화감을 느끼는 지점이 대개 여기입니다.
연출은 반대로 크게 갑니다. 필살기 하나에 화면을 꽉 채우는 이펙트가 붙고, 얻어맞는 쪽은 과장되게 날아갑니다. 캐릭터가 작으니 상대적으로 이펙트가 더 커 보이는 효과가 있어서, 실제 데미지보다 한 방이 시원해 보입니다.
캐릭터를 고르는 재미
여덟 명은 그 시절 대전격투 기준으로 적지도 많지도 않은 숫자입니다. 각자 사거리와 속도가 눈에 띄게 다르게 잡혀 있어서, 두세 명만 돌려 봐도 자기 손에 맞는 캐릭터가 갈립니다. 리치가 긴 캐릭터로 거리를 재는 쪽과, 빠르게 파고들어 잡기로 끝내는 쪽의 성격 차이가 분명한 편입니다.
밸런스가 대작들처럼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지는 않습니다. 특정 기술 하나가 유난히 강해서 그것만 반복해도 CPU가 잘 못 넘기는 구간이 생깁니다. 혼자 클리어를 노린다면 이런 패턴을 찾는 것이 사실상의 공략이 됩니다. 반대로 사람끼리 붙을 때는 서로 그 패턴을 아는 순간부터 게임이 급하게 단조로워지기도 합니다.
CPU전에서 막히는 지점
초반 몇 명은 무난하게 넘어가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CPU가 이쪽 입력에 즉각 반응하는 식으로 강해집니다. 이 시기 중소 기판 격투 게임 대부분이 그렇듯, 난이도를 올리는 방식이 패턴의 다양화가 아니라 반응 속도의 상향입니다. 그래서 정면에서 주고받으려 하면 손해를 봅니다.
넘기는 요령은 단순합니다. 먼저 손을 내밀지 않고, 상대가 다가와 기술을 내미는 순간을 하나 흘려보낸 다음 그 경직에 맞춰 반격하는 것입니다. 점프 공격으로 들어가는 것도 후반부에는 위험합니다. 뜨는 순간 이미 대공이 준비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미콤과 국산 기판의 시절
세미콤은 1990년대 한국 아케이드 기판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이름입니다. 퍼즐과 액션을 가리지 않고 여러 장르를 내놓았고, 일본 인기작의 얼개를 빌려 자기 그림으로 다시 만드는 방식을 자주 썼습니다. 완성도로 원작을 넘어서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기판 값이 훨씬 쌌기 때문에 동네 오락실이나 문방구 앞 기계로는 오히려 많이 깔렸습니다.
SD 파이터즈 역시 그런 위치의 게임입니다. 대작 격투 게임이 한 대씩 놓인 큰 오락실이 아니라, 기계가 서너 대뿐인 동네 가게에서 만나던 부류입니다. 화려한 신작에 100원을 넣기 아까울 때 옆자리에서 가볍게 한 판 하던 게임이라고 하면 감이 맞습니다.
이 게임은 이후 세미콤이 캐릭터와 스테이지를 늘려 다시 내놓은 판본으로 이어집니다. 같은 뼈대에 살을 붙여 재활용하는 방식 역시 그 시절 국산 기판 업체가 자주 쓰던 생존법이었습니다. 지금 다시 해 보면 기술적으로 앞선 게임은 아니지만, 국산 기판이 대전격투라는 가장 경쟁이 심한 장르에 어떻게 발을 들이려 했는지가 화면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