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노 트리거 개정판
크로노 트리거 (Chrono Trigger 1 01) · 1995 · Square
게임 화면 하단에서 —키 변경 Controls Settings·저장·불러오기 Save State / Load State
재판에 서는 주인공
축제 날 우연히 부딪친 소녀를 도와줬을 뿐인데, 얼마 뒤 주인공 크로노는 왕국의 법정에 서게 됩니다. 그런데 이 재판의 판결은 정해진 각본이 아닙니다. 축제에서 무엇을 했는지, 도시락을 몰래 먹었는지, 쓰러진 소녀를 곧바로 일으켰는지 같은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증언으로 올라옵니다. 플레이어가 무심코 한 짓이 몇 시간 뒤 법정에서 그대로 되돌아오는 이 장면은,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RPG 연출의 명장면으로 꼽힙니다.
이런 설계가 게임 곳곳에 깔려 있습니다. 과거에서 한 일이 미래를 바꾸고, 미래에서 본 광경이 과거의 선택을 다르게 보이게 만듭니다. 시간 여행이 설정으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게임 구조 자체가 되어 있는 작품입니다.
어떤 게임인가
크로노 트리거(Chrono Trigger)는 스퀘어가 만든 턴제 RPG입니다. 파이널 판타지의 사카구치 히로노부, 드래곤 퀘스트의 호리이 유지, 드래곤볼의 토리야마 아키라가 함께 참여했다고 해서 당시 일본에서 꿈의 팀으로 불렸습니다.
주인공 크로노 일행은 우연히 열린 시간의 문을 통해 서기 1000년의 현재에서 중세, 고대, 원시 시대, 그리고 폐허가 된 미래까지 오갑니다. 미래에서 세계가 이미 멸망해 있는 광경을 본 뒤, 그 원인인 라보스를 막기 위해 시대를 넘나들며 방법을 찾는 것이 큰 줄기입니다.
전투와 합체기
전투는 필드에서 곧바로 시작됩니다. 인카운터 화면 전환이 없어 흐름이 끊기지 않는데, 이게 당시로서는 대단히 신선한 방식이었습니다. 적의 위치에 따라 기술이 닿는 범위가 달라지므로, 적이 뭉쳐 있을 때 광역기를 쓰는 식의 판단이 필요합니다.
가장 유명한 시스템은 합체기입니다. 두 명이나 세 명의 기술을 맞춰 쓰면 전혀 다른 기술이 나옵니다. 크로노의 번개와 루카의 불이 만나면 화염 회오리가 되는 식입니다. 파티 조합을 바꿔 가며 어떤 합체기가 나오는지 찾아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시간을 쓰게 됩니다.
여러 개의 결말
이 게임은 클리어 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되 능력치와 장비를 그대로 들고 가는 강주회 기능을 대중화한 작품입니다. 그 덕에 언제 최종 보스에게 도전하느냐에 따라 결말이 달라지는 멀티 엔딩 구조가 성립합니다. 초반에 무모하게 라보스에게 덤벼서 보는 엔딩부터, 모든 사이드 퀘스트를 마치고 보는 결말까지 여러 갈래가 있습니다.
동료들의 개인 사연을 풀어 주는 후반부 퀘스트도 인상적입니다. 개구리 기사 개굴이의 복수, 로보가 사막을 되살리며 수백 년을 홀로 기다리는 이야기 같은 장면은 짧은 분량 안에서 큰 감정을 남깁니다.
지금 다시 해 볼 때
미츠다 야스노리와 우에마츠 노부오가 만든 음악은 게임 음악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빠지지 않고 언급됩니다. 시대마다 다른 테마가 흐르고, 같은 장소를 다른 시대에서 방문하면 같은 멜로디가 변형되어 들리는 구성이 특히 좋습니다.
진행이 매끄럽고 불필요한 레벨 노가다를 거의 요구하지 않아, 요즘 감각으로 해도 답답한 구석이 적습니다. 고전 RPG를 딱 하나만 해 보겠다면 대부분이 이 작품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