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클 큐비클
키클 큐비클 (Kickle Cubicle Europe) · 1990 · Irem
게임 화면 하단에서 —키 변경 Controls Settings·저장·불러오기 Save State / Load State
적을 얼려서 밟고 건너간다
이 게임에서 적은 없애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재료입니다. 입김을 불어 적을 얼리면 그 자리에 네모난 얼음 덩어리가 생기고, 그것을 밀면 얼음판 위를 미끄러져 갑니다. 물 위로 밀어 넣으면 가라앉아 발판이 되고, 다른 얼음에 부딪히면 그 자리에 멈춰 벽이 됩니다. 앞을 막던 적이 곧 내 다리이자 담장이 되는 셈입니다.
키클 큐비클(Kickle Cubicle)은 이 규칙 하나로 굴러가는 액션 퍼즐입니다. 각 판에는 보물 주머니가 몇 개씩 놓여 있고, 그것을 전부 주우면 그 판이 끝납니다. 문제는 주머니들이 하나같이 물 건너편이나 적에게 둘러싸인 자리에 놓여 있다는 점입니다. 어떤 적을 어느 방향으로 얼려 어디로 밀어야 길이 생기는지를 매번 새로 궁리해야 합니다.
한 수를 잘못 두면 처음부터
조작 자체는 단순합니다. 사방으로 걷고, 버튼 하나로 입김을 불고, 얼음 덩어리 앞에 서서 밀면 됩니다. 그런데 이 단순한 조작이 만들어 내는 경우의 수가 만만치 않습니다. 얼음은 밀면 막힐 때까지 계속 미끄러지므로, 한 칸 차이로 엉뚱한 곳에 서 버리면 그 판은 사실상 풀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이 게임은 손보다 머리가 먼저 움직여야 합니다. 물에 다리를 놓을 때는 몇 칸을 메워야 하는지, 그러려면 얼음이 몇 개 필요한지를 세어 두어야 합니다. 얼릴 수 있는 적이 그 판에 몇 마리인지도 한정되어 있으니, 하나를 엉뚱한 데 써 버리면 나중에 재료가 모자랍니다.
시간 제한도 있습니다. 여유 있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만, 헤매다 보면 어느새 촉박해집니다. 처음 보는 판은 한 번 죽는 셈 치고 지형과 적의 움직임을 눈에 담은 뒤, 두 번째 시도에서 순서를 정해 한 번에 밀어붙이는 편이 결과가 좋습니다.
판이 늘어놓는 함정들
기본 규칙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진행할수록 얼릴 수 없는 적, 얼음을 밀어 없애야 하는 장애물, 제자리를 지키는 가시, 밟으면 무너지는 바닥 같은 요소가 하나씩 더해집니다. 새 요소가 나오는 판은 대개 그것 하나만 이해하면 풀리도록 짜여 있어, 갑자기 어려워졌다 싶으면 새로 나온 것을 먼저 관찰하는 것이 지름길입니다.
특히 까다로운 것은 스스로 움직이는 적입니다. 정해진 경로를 도는 적은 타이밍만 맞추면 되지만, 이쪽을 따라오는 적은 위치를 유도해서 원하는 자리에서 얼려야 합니다. 얼리고 싶은 지점까지 일부러 끌어당긴 뒤 몸을 돌려 입김을 부는 동작을 익히면 풀리는 판이 확 늘어납니다.
지역이 넘어갈 때마다 보스가 기다립니다. 보스전은 순수한 퍼즐이라기보다 정해진 패턴을 읽는 쪽에 가깝습니다. 얼음을 밀어 맞히는 것이 공격 수단이므로, 재료를 어디서 얻고 어느 각도로 밀어야 하는지를 파악하면 어렵지 않게 넘어갑니다.
아이렘이 만든 아기자기함
이 게임을 만든 곳은 알 만한 사람은 아는 슈팅 명가입니다. 빡빡한 탄막과 육중한 기계 디자인으로 이름을 알린 회사가 이렇게 동글동글하고 다정한 그림의 퍼즐을 만들었다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주인공의 발랄한 걸음걸이, 통통 튀는 음악, 적들의 순한 표정까지 하나같이 부드럽습니다.
내용물은 그렇게 순하지 않습니다. 판 수가 넉넉하고 후반으로 갈수록 요구하는 수읽기가 깊어져서, 겉모습만 보고 아이들 게임이라 여기고 잡았다가 한참 붙들리게 됩니다. 자기가 판을 직접 짜서 저장해 둘 수 있는 기능까지 들어 있어, 끝까지 깬 뒤에도 손댈 거리가 남습니다.
낯설지만 붙잡게 되는 게임
국내에서 이 게임은 널리 알려진 편이 아닙니다. 오락실보다 가정용 기기로 돌아다닌 작품이라 접점 자체가 적었고, 제목도 입에 잘 붙지 않아 별명이 따로 생기지도 않았습니다. 같은 시기에 훨씬 요란한 액션들이 넘쳐나던 시절이라, 조용한 퍼즐은 뒤로 밀리기 쉬웠습니다.
그런데 한 번 잡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규칙이 몇 줄로 끝나고, 화면 안의 정보가 전부 눈에 보이고, 풀리는 순간이 명확합니다. 안 풀리던 판이 순서 하나를 바꾸는 것만으로 스르륵 풀릴 때의 기분은 좋은 퍼즐 게임만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짧게 한두 판만 하려다 한참을 붙들리게 되는, 그런 종류의 게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