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덤 그랑프리
킹덤 그랑프리 (Kingdom Grandprix World) · 1994 · Raiz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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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팅인데 순위를 다툰다
세로 슈팅 게임의 목표는 보통 하나입니다. 살아남아서 끝까지 가는 것. 그런데 이 게임은 거기에 순위를 얹었습니다. 화면 위쪽에는 다른 참가자들의 순위가 표시되고, 나는 적을 쏘아 넘기는 동시에 앞선 기체를 따라잡아야 합니다. 슈팅 게임에 레이스라는 개념을 끌어들인, 지금 봐도 낯선 조합입니다.
이 설정 때문에 플레이의 리듬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보통의 슈팅에서는 위험한 구간에서 몸을 사려도 되지만, 여기서는 시간을 끄는 것이 곧 순위 하락으로 이어집니다. 안전하게 가느냐 앞질러 가느냐를 매 순간 저울질하게 됩니다.
어떤 게임인가
킹덤 그랑프리(Kingdom Grandprix)는 라이징이 만든 세로 스크롤 슈팅입니다. 판타지 세계를 배경으로 여러 참가자가 경주를 벌인다는 설정이고, 플레이어는 그중 한 기체를 골라 코스를 달립니다. 몰려오는 적을 처리하고 보스를 쓰러뜨리는 슈팅의 골격 위에, 다른 참가자보다 빨리 도착해야 한다는 조건이 얹혀 있습니다.
기체는 여러 종류가 있고, 사격 방식과 속도, 특수 능력이 각각 다릅니다. 앞으로 강하게 쏘는 기체, 넓게 퍼뜨리는 기체, 속도가 빠른 기체 등이 있어서 어느 것을 고르느냐에 따라 같은 코스가 다르게 느껴집니다.
속도와 안전 사이
이 게임의 핵심은 부스트를 언제 쓰느냐입니다. 속도를 올리면 순위가 올라가지만 그만큼 화면이 빨리 흘러가고, 적과 탄을 피할 시간이 줄어듭니다. 처음에는 위험해 보이는 구간마다 속도를 낮추게 되는데, 그러면 순위가 계속 뒤로 밀립니다.
요령은 구간을 나누는 것입니다. 적이 적고 지형이 단순한 구간에서는 최대한 밀어붙이고, 탄이 몰리는 구간에서는 과감하게 늦춥니다. 코스를 알수록 이 판단이 정확해지고, 그래서 반복 플레이의 보람이 큽니다.
앞선 기체를 추월하는 순간도 중요합니다. 다른 참가자는 그냥 배경이 아니라 실제로 부딪히면 손해를 보는 대상이라, 추월할 때는 라인을 미리 잡아 둬야 합니다.
라이징이라는 이름
라이징은 90년대 슈팅 게임 팬들 사이에서 특별한 대접을 받는 이름입니다. 이 회사가 만든 게임들은 하나같이 개성이 뚜렷했고, 안전한 길을 가는 대신 매번 다른 것을 시도했습니다. 킹덤 그랑프리도 그런 태도가 그대로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같은 시기 슈팅 게임들이 탄막의 밀도를 높이거나 화력의 규모를 키우는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 이 회사는 슈팅에 경주를 붙여 보는 쪽을 택했습니다.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이런 시도들이 있었기에 슈팅 장르가 한동안 계속 재미있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 하는 사람에게
첫 판은 순위를 잊고 그냥 끝까지 가 보는 것을 권합니다. 코스가 어떻게 생겼고 어디에 무엇이 나오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순위까지 신경 쓰면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한 번 완주해서 지형을 익힌 다음에 속도를 붙이면 훨씬 수월합니다.
기체는 처음에는 사격이 넓게 퍼지는 쪽이 편합니다. 조준이 서툴러도 어느 정도 맞기 때문에, 회피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익숙해진 뒤에 화력이 집중된 기체로 옮겨 가면 보스를 훨씬 빨리 정리할 수 있습니다.
국내 오락실에서 흔히 볼 수 있던 게임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슈팅을 좋아한다면 한 번쯤 붙잡아 볼 만한 독특한 물건입니다.
코스를 외우면 달라진다
이 게임이 반복 플레이에 보답하는 방식은 분명합니다. 어디에 무엇이 나오는지 알고 나면, 위험한 구간에서 미리 자리를 잡고 안전한 구간에서 과감하게 속도를 올릴 수 있습니다. 같은 코스인데 순위가 몇 계단씩 달라집니다.
특히 보스 앞의 구간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시간을 얼마나 아꼈느냐가 최종 순위를 크게 좌우하는데, 처음 하는 사람은 대체로 이 구간에서 지나치게 몸을 사립니다. 몇 번 죽어 보면서 어디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지 선을 찾아 가는 과정이 이 게임의 핵심입니다.
판타지 세계를 배경으로 한 화면과 음악도 계속 붙잡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기계와 우주가 대부분이던 그 시절 슈팅 사이에서, 이 게임의 그림은 확실히 눈에 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