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 파일럿 MSX판
타임 파일럿 (Time Pilot) · 1983 · Konami
게임 화면 하단에서 —키 변경 Controls Settings·저장·불러오기 Save State / Load State
끝이 없는 하늘
이 게임을 처음 켜면 이상한 기분이 듭니다. 화면 어디에도 벽이 없습니다. 위로 올라가도 아래로 내려가도 화면이 끝나지 않고, 대신 구름만 반대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내 비행기는 늘 화면 한가운데에 있고, 방향을 바꾸면 세상이 통째로 돌아갑니다.
당시 슈팅 게임은 대부분 화면이 한 방향으로만 흐르거나 아예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그 시절에 사방으로 열린 하늘을 만들어 놓은 것이라, 처음 해 보면 어디가 앞인지 감을 잡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그런데 몇 판 하고 나면 그 감각이 오히려 편해집니다. 도망칠 벽이 없다는 것은 곧 몰릴 구석도 없다는 뜻이니까요.
어떤 게임인가
타임 파일럿(Time Pilot)은 비행기를 몰고 사방에서 몰려드는 적기를 격추하는 전방향 슈팅입니다. 조작은 여덟 방향 이동과 사격뿐입니다. 방향키를 누르면 기수가 그쪽으로 돌아가고, 기체는 늘 앞으로 나아갑니다. 완전히 멈춰 설 수 없다는 점이 이 게임의 긴장을 만듭니다.
정해진 수의 적을 떨어뜨리면 그 시대의 거대한 모함이 나타납니다. 이것을 부수면 다음 시대로 넘어가고, 배경과 적의 생김새가 통째로 바뀝니다. 목숨은 몇 개 주어지고, 부딪히거나 맞으면 그대로 한 대를 잃습니다.
다섯 개의 시대
첫 무대는 복엽기가 날아다니던 초창기 하늘입니다. 적기가 느리고 수도 적어서 조작을 익히기 좋습니다. 다음은 프로펠러 전투기들의 시대로 넘어가고, 그다음에는 헬리콥터가 나옵니다. 헬기는 움직임이 까다로워 여기서 처음 크게 막히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 뒤로는 제트기와 미사일이 쏟아지는 현대전이 이어지고, 마지막에는 배경이 우주로 바뀌면서 비행접시가 몰려옵니다. 시대가 넘어갈 때마다 적의 속도와 탄이 확실히 달라지므로, 앞 시대에서 통하던 움직임이 뒤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중간중간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조종사가 보입니다. 이들을 스쳐 지나가며 구해 주면 점수가 붙습니다. 점수를 노리는 사람에게는 이 낙하산을 얼마나 챙기느냐가 기록을 가르는 요소가 됩니다. 다만 구하려고 무리하게 돌아 들어가다가 적기와 부딪히는 것이 초보자의 가장 흔한 죽음입니다.
오래 버티는 법
이 게임의 기본은 한 방향으로 계속 도는 것입니다. 큰 원을 그리듯 같은 방향으로 선회하면 적기들이 자연스럽게 뒤로 줄을 서게 되고, 그러면 앞은 늘 비어 있게 됩니다. 반대로 이리저리 방향을 자주 바꾸면 적이 사방에서 겹쳐 들어와 순식간에 갇힙니다.
적기 무리를 정면으로 뚫고 지나가려는 시도도 좋지 않습니다. 격추 자체는 쉬워 보이지만 부서진 잔해와 뒤따르는 기체에 부딪히기 쉽습니다. 무리를 옆으로 흘려보내면서 바깥쪽부터 하나씩 깎아 내는 편이 안전합니다.
모함이 등장하면 정면으로 달려들지 말고 크게 돌면서 옆구리를 때리는 것이 정석입니다. 모함은 주변에 호위기를 계속 붙이므로, 호위를 정리하지 않고 본체만 노리다 보면 뒤에서 얻어맞습니다.
MSX로 옮겨 오면서
원래 오락실 기판으로 나온 게임이지만, 이후 여러 가정용 기기로 옮겨졌습니다. 화면에 한 번에 뜨는 적기 수가 줄어들고 색이 단순해지는 것은 이 시절 이식에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지만, 사방으로 열린 하늘과 선회하며 싸우는 감각은 그대로 남았습니다.
규칙이 단순하고 화면 구성이 간결한 게임이라 이식에 유리한 편이었습니다. 조작이 여덟 방향과 버튼 하나로 끝나므로, 기기가 달라져도 손에 붙는 느낌이 크게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국내 오락실과 가정용 컴퓨터
80년대 초 국내 오락실에는 이런 단순한 규칙의 외국 기판이 여러 경로로 흘러 들어와 있었습니다. 제목을 모른 채 화면만 기억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사방이 뚫린 하늘에서 비행기를 돌리는 그림은 한 번 보면 다른 게임과 헷갈리지 않아서, 이름은 잊어도 화면은 기억에 남습니다.
같은 시기에 국내 가정에는 국산 개인용 컴퓨터와 이를 게임 전용으로 만든 기기가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코나미는 그 기기에 자사 게임을 부지런히 내놓던 회사였고, 오락실에서 보던 화면을 집에서 다시 만나는 경험이 그때 처음 생겼습니다. 지금 다시 해 보면, 규칙 하나만으로 게임을 끝까지 끌고 가던 시절의 힘이 그대로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