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페스트
템페스트 (Tempest REV 3 Revised Hardware) · 1980 · Atari
게임 화면 하단에서 —키 변경 Controls Settings·저장·불러오기 Save State / Load State
화면을 처음 보면 슈팅 게임이라는 생각이 잘 들지 않습니다. 별도 없고 우주선도 없고, 대신 선으로만 그려진 도형 하나가 화면 깊숙한 곳으로 빨려 들어가듯 뻗어 있습니다. 내 기체는 그 도형의 입구 테두리를 따라 빙 돌아다니고, 적은 저 멀리 안쪽 바닥에서 생겨나 테두리를 향해 기어 올라옵니다. 1980년에 나온 게임이 이런 원근을 화면에 그려냈다는 사실이 지금 봐도 낯섭니다.
템페스트(Tempest)는 아타리가 만든 종스크롤 슈팅입니다. 정확히는 스크롤이 없고, 통 모양 필드의 열린 쪽 테두리에 기체가 붙어 있는 형태입니다. 플레이어는 테두리를 좌우로 돌면서 자기 앞으로 뻗은 통로에 총알을 쏘아 넣습니다. 적이 테두리까지 올라오면 부딪혀 죽고, 그 전에 쏘아 떨어뜨리면 살아남습니다. 한 판의 목표는 단순합니다. 그 판에 배정된 적을 전부 치우는 것입니다.
한 판이 어떻게 흘러가나
조작은 회전 다이얼과 버튼 두 개뿐입니다. 다이얼을 돌리면 기체가 테두리의 칸을 하나씩 건너가고, 발사 버튼을 누르면 지금 서 있는 칸의 통로를 따라 총알이 안쪽으로 날아갑니다. 남은 버튼은 초매직이라 부를 만한 긴급 회피 수단으로, 화면 위 적을 한 번에 쓸어버리지만 판마다 정해진 횟수만 쓸 수 있습니다. 아낄수록 좋지만 아끼다 죽는 게 더 흔한 일입니다.
적은 안쪽 바닥에서 나타나 통로를 타고 올라옵니다. 올라오는 도중에는 대개 자기 통로를 벗어나지 않으므로, 어느 통로로 오는지만 보고 미리 그 칸에 가서 기다리면 처리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적이 한 마리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여러 통로에서 동시에 올라오기 시작하면 어느 쪽을 먼저 막을지 골라야 하고, 고르는 동안 반대쪽이 테두리까지 올라옵니다.
적을 다 치우면 기체가 필드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며 다음 필드가 열립니다. 필드 모양은 판마다 바뀝니다. 닫힌 원통일 때도 있고, 양 끝이 막힌 펼친 띠일 때도 있습니다. 닫힌 모양에서는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으로 바로 넘어갈 수 있지만 펼친 모양에서는 끝에 몰리면 도망갈 곳이 없습니다. 이 차이가 생각보다 크게 체감됩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막히는 곳
가장 먼저 부딪히는 벽은 원근감입니다. 멀리 있는 적은 아주 작게 그려져 있고, 내가 서 있는 칸과 그 적이 올라오는 칸이 같은 줄인지 한 칸 옆인지 순간적으로 헷갈립니다. 익숙해지는 요령은 적을 보지 말고 통로를 보는 것입니다. 내 기체 바로 아래로 뻗은 선 하나만 눈으로 따라가면, 그 선 위에 뭐가 있는지가 훨씬 빨리 들어옵니다.
두 번째는 다이얼 감각입니다. 다이얼은 미세하게 돌리면 한 칸, 크게 돌리면 여러 칸을 건너갑니다. 급할수록 크게 돌리게 되고, 크게 돌리면 원하던 칸을 지나쳐 반대쪽 위험 지대에 서 있게 됩니다. 처음에는 한 칸씩 또박또박 옮기는 연습부터 하는 편이 결국 빠릅니다.
세 번째는 테두리까지 올라온 적입니다. 일단 위로 올라온 적은 테두리를 따라 옆으로 이동하며 쫓아옵니다. 아래로 쏘는 총알로는 맞히기 어려운 위치라서, 올라오기 전에 처리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한 마리라도 놓쳤다면 욕심내지 말고 반대쪽으로 크게 도망친 뒤 거리를 벌어놓고 다시 각을 잡는 편이 낫습니다.
벡터 화면이라는 물건
이 게임이 지금도 독특해 보이는 이유는 화면을 그리는 방식에 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게임은 점을 촘촘히 찍어 그림을 만들었지만, 템페스트는 전자빔이 선을 직접 그어 화면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선이 유난히 또렷하고, 굵기 없이 날카롭게 빛납니다. 색이 들어간 벡터 화면이라는 점도 당시로서는 앞서 있던 부분이었습니다.
이 방식은 점을 많이 찍을 필요가 없으니, 도형을 통째로 돌리거나 원근에 맞춰 줄이는 표현이 상대적으로 수월했습니다. 필드가 저 멀리로 빨려 들어가는 연출, 판을 넘길 때 필드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자연스러운 것도 그 덕입니다. 대신 화면 전체를 채우는 배경 그림 같은 건 그릴 수 없어서, 검은 바탕에 선만 남은 특유의 인상이 만들어졌습니다.
아타리와 그 시절
아타리는 이 시기 오락실에서 가장 실험적인 화면을 내놓던 회사였습니다. 벡터 화면을 쓴 자사 게임들을 연이어 내놓으며 남들과 다른 그림을 밀어붙였고, 템페스트는 그중에서도 조작 장치까지 맞춰 만든 사례입니다. 레버가 아니라 다이얼을 쓴 것은 테두리를 도는 움직임에 레버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봤기 때문일 것입니다.
국내 오락실에서는 이 시기 벡터 기판 자체가 흔치 않았습니다. 나중에 여러 경로로 이름이 알려지긴 했지만, 동네 오락실에서 실물 다이얼을 붙잡고 해 본 사람보다 화면으로 먼저 접한 사람이 더 많은 게임입니다. 그래서 지금 브라우저에서 돌려볼 때도, 다이얼 대신 좌우 키로 칸을 옮기는 감각이 원판과 다르다는 점만 감안하면 됩니다.
지금 해 볼 만한가
규칙이 적고 한 판이 짧아서, 설명을 읽지 않고 시작해도 몇 번 죽어보면 무엇을 하는 게임인지 금방 잡힙니다. 반대로 잘하려 들면 끝이 없습니다. 필드가 바뀔 때마다 안전한 칸이 달라지고, 적이 올라오는 속도가 조금씩 빨라지면서 같은 방식이 계속 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40년도 더 된 게임인데 화면만 보면 지금 만든 것 같기도 하고 옛날 것 같기도 한 묘한 자리에 있습니다. 선 몇 개로 깊이를 만들어낸 화면과, 다이얼 하나로 돌아가는 단순한 조작이 이 게임의 전부이면서 동시에 오래 남은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