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 랭킹 스타즈
톱 랭킹 스타즈 (Top Ranking Stars Ver 2 1o 1993 05 21 New Version) · 1993 · Ta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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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싱 게임에는 늘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실제 복싱처럼 잽으로 거리를 재고 체력을 아끼며 라운드를 버티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대전 격투 게임처럼 필살기를 꽂아 화면을 뒤집는 길입니다. 1993년이라는 해에 나온 이 게임은 망설임 없이 뒤쪽을 골랐습니다. 링 위에서 사람이 날아다니고, 주먹 한 방에 화면이 번쩍입니다.
톱 랭킹 스타즈(Top Ranking Stars)는 타이토가 1993년에 낸 아케이드 복싱 게임입니다. 북미에서는 프라임 타임 파이터라는 이름으로 나왔습니다. 여섯 명의 복서 가운데 하나를 골라 세계 타이틀을 놓고 차례로 겨루는 구성이고, 각 선수마다 생김새와 체격뿐 아니라 자기만의 필살기가 붙어 있습니다.
격투 게임의 문법을 두른 복싱
이 게임이 나온 시기를 보면 성격이 이해됩니다. 1993년은 대전 격투 게임이 오락실을 완전히 장악한 해였습니다. 스트리트 파이터 이후 등장한 수많은 격투 게임들이 필살기와 캐릭터 선택이라는 문법을 표준으로 만들어 놓았고, 다른 장르들도 그 문법을 빌려 오기 시작했습니다.
복싱은 원래 캐릭터를 고르고 기술을 쓰는 종목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게임은 복서 선택 화면을 두고, 저마다 다른 큰 기술을 붙이고, 체력 게이지를 위에 나란히 걸어 놓았습니다. 스포츠 게임의 외피를 쓴 대전 격투 게임에 가깝고, 그렇기 때문에 복싱 규칙을 잘 몰라도 격투 게임을 해 본 사람이면 바로 적응할 수 있습니다.
주먹을 고르는 법
기본은 세 가지 거리입니다. 멀리서 툭툭 내미는 가벼운 주먹, 한 발 들어가서 치는 중간 주먹, 크게 휘두르는 강한 주먹입니다. 강한 주먹은 위력이 크지만 휘두르는 동안 몸이 열리므로, 상대가 그 순간을 노리고 들어오면 그대로 얻어맞습니다.
그래서 실제 흐름은 가벼운 주먹으로 거리를 재는 데서 시작합니다. 상대가 어느 거리에서 반응하는지 몇 번 확인하고, 상대가 크게 휘두르려고 몸을 여는 순간에 맞춰 들어가는 것이 정석입니다. 무작정 강한 주먹만 내는 사람은 처음 몇 판은 이겨도 뒤로 갈수록 반격에 무너집니다.
가드도 중요합니다. 계속 막고만 있으면 몰리지만, 상대의 연속 공격이 들어올 때 가드로 한 번 끊고 반격을 넣는 흐름을 익히면 체력 관리가 훨씬 편해집니다. 맞고 나서 당황해 아무 버튼이나 누르다가 연달아 얻어맞는 것이 초보가 가장 많이 지는 방식입니다.
캐릭터 고르기
여섯 명의 복서는 체격과 속도가 다릅니다. 크고 느린 쪽은 한 방이 무겁지만 자주 못 때리고, 작고 빠른 쪽은 주먹이 가벼운 대신 촘촘하게 몰아붙일 수 있습니다. 처음이라면 빠른 쪽을 골라 조작에 익숙해지는 편이 좋습니다. 느린 캐릭터는 한 번 헛치면 손해가 커서 초보가 다루기 어렵습니다.
필살기는 판을 뒤집는 요소지만 아무 때나 나가지 않습니다. 상대가 가드를 올리고 있을 때 쓰면 막히고 오히려 빈틈이 생깁니다. 상대가 크게 휘두른 직후, 혹은 이쪽 공격에 맞아 자세가 흔들린 순간이 제일 좋은 기회입니다.
타이토 F3 기판
이 게임은 타이토가 1992년부터 밀던 F3 시스템 기판에서 돌아갑니다. F3는 이후 여러 해 동안 타이토의 주력이 된 기판으로, 큰 스프라이트를 여럿 굴리면서도 화면이 부드럽게 움직이고, 사운드 쪽도 그 시기 기준으로 넉넉했습니다. 다라이어스 계열과 버블 심포니 같은 게임들이 같은 기판을 썼습니다.
기판이 좋았다고 해서 모든 게임이 흥한 것은 아닙니다. 이 복싱 게임은 널리 깔리지 못했고, 지금은 실물 기판이 매우 드문 축에 듭니다. 1993년의 오락실은 이미 대전 격투 대작들이 자리를 다 차지하고 있었고, 격투 게임을 닮은 스포츠 게임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한국 오락실에서
한국 오락실에 복싱 게임이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축구나 농구만큼 흔하지는 않았습니다. 일대일로 붙는다는 점에서 대전 격투 게임과 자리가 겹쳤는데, 같은 자리라면 손님들이 익숙한 격투 게임 쪽을 골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게임은 오히려 지금 찾아볼 때 새롭습니다. 격투 게임의 규칙을 복싱이라는 종목에 얹으면 어떤 물건이 나오는지, 그 시기 개발자들이 유행을 어떻게 소화했는지가 그대로 보입니다. 한 판이 짧고 규칙이 단순하니, 처음 잡아도 몇 라운드 안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감이 잡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