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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럿츠

파이럿츠 (Pirates) · 1994 · N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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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발을 해 본 사람이라면 손이 먼저 기억합니다

화면 아래쪽에 내 캐릭터가 있고, 화면 위쪽에서 적들이 몰려나옵니다. 스틱을 움직이면 캐릭터와 함께 조준선이 따라 움직이고, 그 조준선이 닿는 자리로 총알이 날아갑니다. 몸을 굴려 탄을 피하고, 몰리면 폭탄을 던집니다. 80년대 후반 오락실을 한 번 휩쓸었던 그 조작 방식입니다.

이 게임은 그 틀에 해적을 얹었습니다. 배경은 대항해 시절의 섬과 바다이고, 총을 든 것도 나를 쏘는 것도 전부 해적입니다. 1994년이면 이미 대전 격투가 오락실을 뒤덮은 뒤라, 이런 게임이 새로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조금 뒤늦은 인상을 줍니다.

파이럿츠 슈팅 게임 화면 1 - 오락실 (1994)

어떤 게임인가

파이럿츠(Pirates)는 뒤에서 등을 바라보는 시점의 슈팅입니다. 선장의 명을 받은 두 해적이 보물 지도 세 조각을 찾아 섬을 돌아다니고, 조각이 다 모이면 마지막으로 숨겨진 보물섬으로 향합니다. 섬마다 무대가 바뀌고, 그때마다 몰려나오는 적을 정리하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버튼은 세 개입니다. 하나는 사격, 하나는 폭탄, 하나는 몸을 굴려 피하는 동작에 쓰입니다. 두 명이 동시에 들어갈 수 있고, 둘이 하면 화면을 좌우로 나눠 맡을 수 있어 훨씬 수월합니다.

무대가 바뀔 때마다 화면 구성도 함께 바뀝니다. 배경 곳곳에 놓인 상자와 나무통, 건물 같은 것들은 그냥 그림이 아니라 부술 수 있는 물체이고, 부수는 과정 자체가 점수와 아이템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적이 없는 잠깐의 틈에도 손을 놀리지 않게 됩니다.

조준과 회피가 한 동작입니다

이 방식의 게임이 어려운 이유는 분명합니다. 조준선이 캐릭터와 붙어 움직이기 때문에, 적을 겨누려고 옮긴 위치가 곧 내가 서 있는 위치가 됩니다. 쏘고 싶은 곳과 피해야 하는 곳이 다를 때 손이 꼬입니다.

그래서 순서를 정해 두는 편이 낫습니다. 총을 든 적, 그러니까 나를 직접 겨누는 적부터 먼저 지우고, 그다음에 느리게 다가오는 적과 배경 구조물을 처리합니다. 배경도 부술 수 있는데, 부수면 숨어 있던 적이 드러나므로 무작정 뒤로 미룰 일은 아닙니다.

구르기는 아까워하지 말고 씁니다. 총알이 여러 갈래로 날아오는 순간에는 조준을 포기하고 몸부터 빼는 편이 결과가 좋습니다. 폭탄은 화면이 정리되지 않아 계속 맞는 상황을 위해 남겨 둡니다.

둘이 함께하면 난이도가 눈에 띄게 내려갑니다. 한 사람이 왼쪽, 한 사람이 오른쪽을 맡고 서로 겹치지 않게만 움직여도 화면이 훨씬 빨리 정리됩니다. 이 방식의 게임은 화력이 곧 생존이라, 총구가 두 개인 것만으로도 상황이 달라집니다.

하늘을 지나가는 것들을 노려 보세요

강화 아이템은 그냥 굴러다니지 않습니다. 화면을 가로질러 지나가는 마녀나 정체 모를 생물을 계속 쏘면 그제야 떨어집니다. 그래서 눈이 아래쪽 적에만 붙어 있으면 끝까지 빈손으로 갑니다.

화면 위쪽을 한 번씩 훑어보는 습관을 들이면 화력이 달라집니다. 이런 게임에서 화력 차이는 곧 안전 거리 차이라, 한 판을 얼마나 오래 버티느냐가 여기서 갈립니다.

반대로 혼자 할 때는 욕심을 줄여야 합니다. 화면 전체를 지우려 들지 말고 나를 노리는 적만 골라 지운 다음 다음 구간으로 넘어가는 편이 오래 버팁니다. 점수를 포기하면 생존이 쉬워지는 구조라, 목표를 무엇으로 잡느냐에 따라 플레이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처음 보는 게임 앞에 앉았을 때

이름을 들어 본 적 없는 게임을 만나면 접근법은 비슷합니다. 첫 판은 점수를 포기하고 적이 어느 자리에서 나오는지만 봅니다. 두 번째 판부터 그 자리를 미리 잡고 기다리면 체감 난이도가 확 내려갑니다.

이 게임도 마찬가지입니다. 초반 구간의 적 배치는 몇 판만 돌리면 몸에 익고, 그때부터는 어디서 폭탄을 쓸지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됩니다.

대작들 사이에서

이 게임을 만든 곳은 스페인 회사입니다. 90년대 오락실은 일본 대형 제작사들의 무대였고, 유럽의 작은 회사들은 그 사이에서 유행하던 장르를 자기 식으로 다시 만들어 내놓곤 했습니다. 이 게임도 그런 자리에 있습니다.

국내 오락실에서 이 게임을 봤다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대작만큼 다듬어지지는 않았지만, 그 시절 오락실 유행이 어디까지 퍼져 나갔는지를 보여 주는 표본으로는 충분히 볼 만합니다.

이런 게임은 지금 다시 찾아보기 전에는 존재조차 모르고 지나치기 쉽습니다. 화려한 대작 옆에 한 대씩 놓여 있다가 조용히 사라진 게임들이 그 시절에는 무수히 많았습니다. 한 판만 돌려 봐도 그때 오락실이 어떤 곳이었는지 조금은 짐작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