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시즈
파이시즈 (Pisces) · Subelec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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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시 연도조차 확실하지 않은 게임
오락실 기판 중에는 언제 나왔는지, 정확히 어디서 만들었는지가 남아 있지 않은 물건이 의외로 많습니다. 이 게임도 그런 경우입니다. 회사 이름은 남아 있지만 그 회사에 관한 기록이 거의 없고, 출시 연도조차 정확히 특정되지 않은 채 1980년대 초 어디쯤으로만 짐작될 뿐입니다.
이런 게임이 왜 이렇게 많은가 하면, 그 시절 오락실 기판 시장이 지금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어수선했기 때문입니다. 작은 회사가 몇 명이 모여 기판을 찍어내고, 유통업자를 통해 몇백 대를 팔고, 다음 해에 문을 닫는 일이 흔했습니다. 서류도 광고도 남지 않았고, 남은 것은 기판 안의 데이터뿐입니다. 그 데이터가 훗날 보존되어 지금 이렇게 다시 돌아가고 있습니다.
무엇을 하는 게임인가
Pisces는 화면 한 장이 고정된 채로 진행되는 초기형 슈팅입니다. 아래쪽에 내 기체가 있고 위쪽에 적이 있으며, 나는 좌우로 움직이면서 위로 쏩니다. 조작은 좌우 이동과 발사 버튼이 전부이고, 아무 설명 없이 앉아도 곧바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한 판의 흐름은 화면에 있는 적을 다 없애는 것입니다. 다 없애면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고, 그때마다 적이 조금씩 빨라지거나 더 공격적으로 움직입니다. 적의 탄이나 몸통에 닿으면 기체 하나를 잃고, 남은 기체가 없으면 끝납니다. 클리어라는 개념이 없고, 얼마나 오래 버티며 점수를 쌓느냐가 유일한 목표입니다.
이 시기 게임에는 이야기도, 스테이지 구성도, 보스도 없습니다. 같은 화면이 조금씩 빨라지며 반복될 뿐입니다. 지금 기준으로는 밋밋하게 느껴지지만, 그때는 그 반복 안에서 자기 최고 점수를 깎아 나가는 것이 게임의 전부였고 또 충분했습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조심할 것
요즘 게임에 익숙한 손으로 이런 고전 슈팅을 잡으면 대개 두 가지에서 당황합니다. 하나는 판정이 관대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아슬아슬하게 스치듯 피하는 플레이는 통하지 않고, 넉넉히 거리를 두고 움직여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탄의 제한입니다. 이 시기 기판은 화면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내 탄의 수가 아주 적었습니다. 그래서 버튼을 마구 연타해도 앞서 쏜 탄이 화면 밖으로 나가거나 무언가에 맞은 뒤라야 다음 탄이 나갑니다. 빗나가는 탄 한 발이 그만큼 손해라는 뜻이고, 그래서 이 시기 슈팅은 마구 쏘는 게임이 아니라 겨냥해서 쏘는 게임이었습니다.
요령은 화면 아래에서 폭을 크게 쓰지 않는 것입니다. 반대편 끝까지 급하게 달려가면 중간에 내려오는 적에게 부딪히기 쉽습니다. 적이 오는 흐름을 보며 조금씩 자리를 옮기고, 위험한 적부터 먼저 지우는 순서를 정해 두면 훨씬 오래 버팁니다.
같은 시기 게임들과의 관계
1980년대 초에 나온 고정 화면 슈팅은 대개 두 가지 계열로 나뉩니다. 적이 위쪽에 대형을 이루고 있다가 하나씩 급강하해 내려오는 계열과, 화면을 채운 적을 차근차근 지워 나가는 계열입니다. 무명 기판들은 대체로 이미 성공한 쪽의 구조를 가져와 그림과 세부 규칙만 바꿔 내놓았습니다.
지금 저작권 기준으로 보면 문제가 될 만한 일이지만, 그때는 이런 것이 업계의 일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무명작을 지금 해 보는 재미 중 하나는, 화면을 보며 어느 유명작을 참고했는지를 알아보는 데 있습니다. 가끔은 원작보다 조작감이 낫거나, 나름의 비틀기가 들어가 있어 놀랄 때도 있습니다.
그 시절 오락실 사정
1980년대 초 한국에서 오락실은 아직 지금 떠올리는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문방구 앞이나 구멍가게 한 켠에 기판 한두 대를 놓아둔 형태가 많았고, 정식 수입품보다 복제 기판이 훨씬 흔했습니다. 아이들은 화면에 무슨 글자가 떠 있든 그냥 우주 게임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이런 무명작에는 국내 통칭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름 없이 놓여 있다가 동전 몇 개를 받아 간 뒤 사라진 물건입니다. 지금 다시 잡으면 몇 분이면 규칙을 다 알게 되지만, 그 몇 분 안에 40년 전 오락실이 어떤 곳이었는지가 꽤 정직하게 담겨 있습니다. 화려한 볼거리를 기대할 게임은 아니고, 짧게 한두 판 해 보며 그 시절의 공기를 확인하기에 알맞은 물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