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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어 엠블렘 성전의 계보

파이어 엠블렘 성전의 계보 (Fire Emblem Seisen no Keifu Japan En By Dark Twilkitri Net v0 87d Fire Emblem Genealogy of the Holy War) · 1996 · Ninte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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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전쟁, 자식의 전쟁

이 게임은 전반부를 다 끝냈다고 생각한 순간 시간을 훌쩍 뛰어넘습니다. 주인공 시글드의 이야기가 한 매듭을 짓고 나면, 그다음 장부터는 그의 아들 세리스가 주인공이 됩니다. 전반부에서 누구와 누구를 맺어 주었느냐에 따라 후반부에 태어나 합류하는 자식들의 능력과 기술이 달라집니다. 시뮬레이션 게임에 세대라는 개념을 이렇게 정면으로 끌어들인 작품은 흔치 않습니다.

파이어 엠블렘 성전의 계보(Fire Emblem: Seisen no Keifu)는 닌텐도의 시뮬레이션 RPG 시리즈 네 번째 작품입니다. 격자 위에서 부대를 움직여 싸우고, 한 번 죽은 아군은 되살아나지 않는 시리즈 특유의 규칙 위에서, 두 세대에 걸친 전쟁 이야기를 펼쳐 놓습니다.

파이어 엠블렘 성전의 계보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화면 1 - 슈퍼 패미컴 (1996)

지도 하나가 나라 하나

이 작품의 전투 지도는 유별나게 큽니다. 다른 파이어 엠블렘이 성 하나를 두고 싸운다면, 여기서는 성 여러 개가 한 지도 안에 있고 그것을 차례로 점령해 나갑니다. 한 장을 끝내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서, 한 번 앉으면 쉽게 일어나지 못합니다.

지도가 넓다 보니 이동력이 매우 중요합니다. 말을 탄 유닛과 걸어 다니는 유닛의 격차가 크고, 성과 성 사이를 오가며 방어를 돌리는 운영이 필요합니다. 텅 빈 성을 적에게 빼앗기면 그때부터 일이 꼬이므로, 누구를 남겨 둘지 정하는 판단이 계속 요구됩니다.

사랑과 계보

남녀 유닛을 전장에서 가까이 두면 호감도가 쌓이고, 일정 수준을 넘으면 연인이 됩니다. 이 조합이 후반부의 자식 세대를 결정합니다. 부모가 지녔던 성능과 스킬, 그리고 물려준 장비가 그대로 자식에게 이어지기 때문에, 누구를 누구와 붙일지가 사실상 후반부 난이도를 정합니다.

짝을 정하지 않고 방치하면 대체 인물이 등장하는데, 성능이 눈에 띄게 떨어집니다. 그래서 전반부를 진행하는 내내 배치를 신경 쓰게 되고, 이 부분 때문에 두 번 세 번 다시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돈도 개인 것

독특한 규칙이 하나 더 있습니다. 자금이 부대 공용이 아니라 유닛 개인의 것입니다. 각자 번 돈은 각자 쓰고, 다른 유닛에게 넘기려면 연인이나 형제 관계여야 합니다. 그래서 무기를 사 줄 여유가 있는 인물과 없는 인물이 갈리고, 돈을 벌어다 줄 관계를 미리 만들어 두는 것도 전략의 일부가 됩니다.

무기도 쓸수록 닳고, 수리해서 계속 쓸 수 있습니다. 특별한 성무기는 정해진 혈통을 이은 인물만 들 수 있어서, 누가 어떤 피를 물려받았는지가 성능과 직결됩니다.

무거운 이야기

이야기는 밝지 않습니다. 배신과 학살, 종교를 앞세운 권력이 계속 등장하고, 애정을 붙인 인물이 어이없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전반부의 마지막에 벌어지는 사건은 시리즈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충격으로 이야기됩니다.

국내 정식 발매가 없었던 탓에 오랫동안 이름으로만 알려졌지만, 시리즈에서 가장 야심찬 작품이라는 평가는 지금도 유효합니다. 한 판에 걸리는 시간이 긴 만큼 각오하고 잡아야 하지만, 세대가 넘어가는 순간의 감흥은 다른 데서 얻기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