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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서

팬서 (Panther) · 1986 · Ir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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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리지가 존재하지 않는 게임

이 게임에 관해 가장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은 게임 내용이 아니라 파는 방식입니다. 팬서는 상자에 담긴 카트리지로 나온 적이 없습니다. 1986년 일본에서 운영되던 통신 소프트웨어 배급망을 통해서만 내려받을 수 있었고, 그것이 유일한 판매 경로였습니다.

지금이야 게임을 내려받아 사는 것이 당연하지만, 1986년에 그렇게 팔린 소프트웨어는 극히 드물었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은 실물 매장에 진열된 적도, 중고로 돌아다닌 적도 거의 없습니다. 아이렘이라는 큰 회사의 작품인데도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은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요구 사양도 그 시절 기준으로 높았습니다. 대부분의 MSX 게임이 훨씬 적은 메모리로 돌아가던 때에 상당한 용량을 요구했기 때문에, 기계를 가진 사람이라고 모두 실행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통신으로만 팔린 데다 사양까지 가렸으니 사실상 극소수만 접한 게임입니다.

팬서 슈팅 게임 화면 1 - MSX (1986)

어떤 게임인가

팬서(Panther)는 아이렘이 MSX용으로 내놓은 액션 게임입니다. 아이렘은 오락실 쪽에서 문 패트롤과 알 타입 같은 작품으로 이름을 알린 회사이고, MSX로도 자사 오락실 게임을 옮기거나 새로 만드는 작업을 꾸준히 했습니다.

같은 이름의 게임이 여럿 있어 혼동하기 쉽습니다. 아이렘은 1980년에도 팬서라는 오락실 전차 게임을 낸 적이 있고, 비슷한 시기 서양 컴퓨터용으로도 같은 이름의 전혀 다른 게임이 나왔습니다. 이 MSX판은 그 어느 쪽과도 별개로 다뤄야 하는 작품입니다.

팬서 슈팅 게임 화면 2 - MSX (1986)

아이렘이라는 회사

아이렘은 1970년대 후반부터 오락실 기판을 만들어 온 일본 회사입니다. 국내 오락실 세대에게 가장 익숙한 이름은 문 패트롤과 알 타입, 그리고 스파르탄 엑스일 것입니다. 특히 알 타입은 횡스크롤 슈팅의 형태를 결정지은 작품으로 지금까지 이야기됩니다.

이 회사는 오락실에서 쌓은 기술을 가정용 기계로 옮기는 데도 부지런했습니다. MSX만 놓고 봐도 문 패트롤, 10야드 파이트, 로트 로트, 슈퍼 로드 러너, 알 타입, 자경단을 차례로 내놓았습니다. 이 목록 사이에 팬서가 끼어 있는 셈입니다.

같은 시기 다른 회사들이 자사 오락실 게임의 이식에만 매달렸던 것과 달리, 아이렘은 MSX 전용으로 새로 만든 작품도 섞어 냈습니다. 팬서는 그 계열에 속합니다.

통신 판매라는 실험

1980년대 중반 일본에는 소프트웨어를 전화선이나 전용 단말을 통해 배급하려는 시도가 여럿 있었습니다. 매장에 물건을 깔지 않아도 되니 유통 비용이 줄고, 재고 부담이 사라진다는 것이 명분이었습니다. 팬서는 그 실험대에 올랐던 게임 중 하나입니다.

문제는 그 시절 통신 환경이었습니다. 속도가 느리고 이용료가 비쌌으며, 애초에 그런 서비스에 접속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방식으로 나온 게임들은 대부분 널리 퍼지지 못한 채 사라졌습니다.

이 게임이 그나마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나중에 여러 게임을 한 카트리지에 몰아넣은 비공식 합본을 통해서였습니다. 정식 유통망에서 사라진 작품이 해적판 형태로 살아남는다는 아이러니가, 8비트 시절 자료 보존의 현실을 보여 줍니다.

지금 해 보는 의미

이 게임은 잘 만들어진 명작으로 소개하기 위해 남은 작품이 아닙니다. 오히려 게임이 어떤 경로로 사람 손에 닿는가에 따라 그 운명이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에 가깝습니다. 같은 회사가 같은 해에 낸 다른 게임들은 지금도 널리 회자되는데, 이 게임만 자료조차 드문 이유가 오로지 판매 방식 하나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국내 MSX 사용자에게는 애초에 닿을 수 없는 게임이었습니다. 일본 내 통신망 전용이었으니 국내 문방구나 대리점에 들어올 방법 자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이름을 기억하는 국내 이용자는 사실상 없다고 봐도 됩니다.

그런 게임을 지금 브라우저에서 열어 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작품을 다시 꺼내 볼 만한 가장 큰 이유입니다. 화려한 명작을 기대하기보다는 사라질 뻔했던 8비트 시절의 한 조각을 확인한다는 마음으로 접근하는 편이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