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스타
펄스타 (Pulstar) · 1995 · A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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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트가 아니라 금속처럼 보였던 화면
오락실 구석에서 이 게임의 데모 화면이 돌아가는 걸 처음 봤을 때, 저는 동전을 넣을 생각도 못 하고 한참을 서서 구경했습니다. 우주선 몸체에는 차가운 금속 광택이 돌았고, 거대한 보스는 유기체처럼 관절을 꺾으며 화면을 가득 채웠습니다. 손으로 한 점씩 찍어 만든 그림이 아니라, 3차원으로 모델링한 이미지를 그대로 도트로 구워 넣은 결과였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은 화면 전체가 하나의 질감으로 통일되어 있습니다. 배경의 구조물, 적 기체, 폭발 이펙트까지 같은 재질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당시 슈팅 게임들이 밝고 알록달록한 색을 쓰던 것과 비교하면 어둡고 무거운 인상이었고, 그 점이 오히려 이 게임을 기억에 남게 만들었습니다.
어떤 게임인가
펄스타(Pulstar)는 우주선을 조종해 화면 오른쪽으로 나아가며 적을 격추하는 횡스크롤 슈팅 게임입니다. 조작은 8방향 이동과 샷 버튼 하나로 매우 단순합니다. 대신 샷 버튼을 누른 채 기다리면 에너지가 차오르고, 손을 떼는 순간 화면을 가로지르는 굵은 차지 샷이 뻗어 나갑니다.
이 차지를 언제 풀 것인가가 사실상 게임의 전부입니다. 잔챙이를 잡느라 차지를 흘려보내면 정작 단단한 적이 나왔을 때 손에 아무것도 남지 않고, 반대로 차지만 아끼다 보면 눈앞의 적탄에 그대로 부딪힙니다.
앞뒤로 붙였다 떼는 보조 유닛
기체 앞에 붙는 보조 유닛은 이 게임의 두 번째 축입니다. 이 유닛은 적탄을 막아 주는 방패이자 그 자체로 공격 판정을 가진 무기이고, 필요하면 떼어 내 앞으로 날려 보낼 수도 있습니다. 좁은 통로에서는 앞에 붙여 길을 뚫고, 뒤에서 적이 쏟아지는 구간에서는 뒤로 돌려 방벽으로 씁니다.
아이템을 먹으면 이 유닛에서 나가는 무기의 성질이 바뀝니다. 직선으로 관통하는 것, 화면 위아래로 갈라지는 것, 벽을 타고 흐르는 것 등이 있어서 어느 구간에 어떤 무기를 들고 들어가느냐로 난이도가 크게 달라집니다.
외우지 않으면 넘길 수 없는 구간
이 게임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적이 나오는 순서와 위치가 매번 똑같은 대신, 처음 보는 배치에는 거의 대응할 수 없게 짜여 있습니다. 벽이 좁혀 오는 구간, 화면 밖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대형 기체, 격추 순서를 틀리면 빠져나갈 틈이 사라지는 편대까지, 한 번 죽고 나서야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게 되는 배치가 계속 나옵니다.
죽으면 파워업이 초기화되기 때문에 한 번의 실수가 다음 실수를 부릅니다. 그래서 이 게임을 붙잡았던 사람들은 죽으면서 배치를 외우고, 다음 판에는 그 구간에 맞는 무기를 들고 들어가는 식으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몇 판 만에 끝을 보는 종류의 게임이 아니라, 한 스테이지를 넘기는 데 며칠이 걸리는 종류의 게임입니다.
계보
이 게임의 감각은 몇 년 뒤 나온 블레이징 스타로 이어집니다. 프리렌더로 만든 기체와 배경, 차지 샷을 축으로 삼은 설계가 그대로 계승되었고, 대신 색이 훨씬 밝아지고 속도감이 붙었습니다. 두 게임을 나란히 해 보면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형제라는 게 바로 느껴집니다.
지금 다시 해 봐도 이 게임의 화면은 낡았다는 느낌이 잘 들지 않습니다. 색을 아껴 쓰고 질감을 밀어붙인 그림이라, 해상도가 낮아도 무엇이 그려져 있는지 또렷하게 읽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