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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스 러브

페어스 러브 (Pairs Love) · 1991 · Ath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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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 맞추기는 아마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놀이 규칙 중 하나일 겁니다. 카드를 엎어 놓고 두 장씩 뒤집어 같은 그림을 찾는 것. 종이 카드만 있으면 어디서든 할 수 있고, 규칙을 설명하는 데 십 초면 충분합니다. 1991년의 오락실 기판에 이 놀이가 올라왔다는 건, 그만큼 이 규칙이 동전을 넣게 만들 만큼 붙잡는 힘이 있다고 판단했다는 뜻이겠지요.

페어스 러브(Pairs Love)는 화면에 엎어져 있는 그림 패 중에서 같은 것 두 장을 찾아 짝지어 지워 나가는 아케이드 퍼즐입니다. 한 장을 뒤집어 확인하고, 다른 한 장을 뒤집어 같으면 사라지고 다르면 다시 엎어집니다. 판을 다 지우면 다음으로 넘어가고, 그 사이 제한 시간이 계속 줄어듭니다. 둘이 함께 붙어 앉아 겨룰 수도 있습니다.

페어스 러브 퍼즐 게임 화면 1 - 오락실 (1991)

기억력 게임이 오락실에 오면

집에서 카드로 하는 짝 맞추기와 오락실 기판의 짝 맞추기는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시간입니다. 종이 카드로 할 때는 느긋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화면 위 시간 표시가 계속 줄어듭니다. 그래서 이 게임은 순수한 기억력 게임이라기보다, 기억과 속도를 함께 요구하는 게임이 됩니다.

초보자가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아무 데나 마구 뒤집어 보는 것입니다. 처음 몇 번은 어차피 모르니 뒤집어 봐야 하지만, 그 결과를 기억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뒤집었다가 다시 엎힌 그림이 어디 있었는지를 붙잡아 두는 것이 이 게임의 전부입니다.

요령이 있다면, 무작위로 뒤집지 말고 한쪽 구석부터 차례대로 훑는 것입니다. 사람 기억은 순서가 있는 것을 훨씬 잘 붙듭니다. 왼쪽 위부터 오른쪽으로 한 줄씩 확인해 나가면, 같은 횟수를 뒤집어도 머릿속에 남는 정보가 훨씬 많습니다.

시간에 쫓기기 시작할 때

판이 넘어갈수록 패의 수가 늘고 시간은 인색해집니다. 초반 판은 여유롭게 다 훑어보고 시작해도 되지만, 뒤로 갈수록 그럴 여유가 없어집니다. 이때부터는 확인과 처리를 동시에 해야 합니다. 즉 새로 뒤집는 패마다, 이미 본 것 중에 같은 게 있었는지를 즉시 떠올려야 합니다.

또 하나 신경 쓸 점은 짝을 찾았을 때 곧바로 처리하는 것입니다. 초보자는 짝인 걸 알면서도 다른 걸 더 확인해 보려다 위치를 잊어버립니다. 확실히 아는 짝은 미루지 말고 바로 지워 화면을 단순하게 만드는 편이 남은 것을 기억하기에도 유리합니다.

남은 패가 적어지면 게임이 갑자기 쉬워집니다. 그래서 이 게임의 승부는 사실상 초중반에 납니다. 판이 반쯤 지워질 때까지 얼마나 헤매지 않고 왔느냐가 남은 시간을 결정합니다.

둘이 붙을 때

둘이 함께 하면 성격이 달라집니다. 상대가 뒤집는 것을 나도 보게 되기 때문에, 남이 헛짚은 정보까지 내 것으로 챙길 수 있습니다. 상대가 실수로 뒤집어 보여 준 그림을 기억해 두었다가 내 차례에 정확히 짚어 내는 순간이 이 게임에서 가장 통쾌한 대목입니다.

반대로 내가 뒤집은 것도 상대에게 그대로 보인다는 뜻이니, 아무 생각 없이 뒤집으면 상대에게 정보만 주는 꼴이 됩니다. 이런 것을 의식하기 시작하면 단순한 기억력 겨루기가 제법 머리 쓰는 승부가 됩니다.

1991년이라는 자리

1991년 오락실은 퍼즐 게임이 한창 쏟아지던 시기였습니다. 테트리스 이후 낙하 퍼즐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그 옆에서 짝 맞추기나 그림 맞추기, 같은 그림 찾기처럼 다른 규칙을 들고 나온 게임들도 꾸준히 나왔습니다. 낙하 퍼즐이 반사신경 쪽이라면, 이런 게임들은 차분히 앉아서 하는 쪽이었습니다.

다만 오락실이라는 공간의 성격상 이런 조용한 게임은 살아남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화려한 화면과 큰 소리로 손님을 부르는 기계들 사이에서, 카드가 뒤집히는 게임은 눈에 잘 띄지 않았습니다. 페어스 러브가 국내에서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도 그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그럼에도 이런 게임들은 나름의 자리가 있었습니다. 격투나 슈팅에 지친 사람이 잠깐 머리를 식히러 앉기에 딱 좋았고, 게임을 잘 못하는 사람도 부담 없이 붙을 수 있었습니다.

아테나라는 회사

제작사인 아테나는 1980년대 후반부터 아케이드와 가정용을 오가며 게임을 만든 일본 회사입니다. 규모가 큰 곳은 아니었고, 특정 장르로 이름을 굳혔다기보다 여러 장르를 두루 시도한 편에 가깝습니다. 이런 회사들이 만든 게임은 대작의 그늘에 가려 잊히기 쉽지만, 지금 다시 보면 규칙을 깔끔하게 다듬어 놓은 물건이 적지 않습니다.

처음이라면 이렇게

첫 판은 서두르지 마시고 순서대로 훑는 방식을 한번 시험해 보시길 권합니다. 마구 뒤집는 것보다 확실히 결과가 좋다는 걸 몇 판 안에 체감하실 겁니다.

그다음은 자기만의 기억 방식을 만드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위치를 좌표처럼 외우고, 어떤 분은 그림끼리 이야기를 지어 붙입니다. 무엇이든 자기에게 잘 붙는 방법을 쓰시면 됩니다. 이 게임은 손이 빨라서 이기는 게임이 아니라, 머릿속 정리가 깔끔한 사람이 이기는 게임입니다.

마지막으로, 시간이 몰릴 때 당황하지 않는 것도 요령입니다. 급해질수록 이미 확인한 자리를 또 뒤집는 헛수고가 늘어납니다. 한 박자 숨을 고르고 아는 짝부터 지우면, 생각보다 시간이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