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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클 조

너클 조 (Knuckle Joe SET 1) · 1985 · Seibu Kaihat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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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으로 적을 두들겨 패며 옆으로 나아가는 게임이 하나의 장르로 굳어지기 전, 그 형태를 미리 보여 준 작품들이 있습니다. 너클 조는 1985년에 나왔습니다. 파이널 파이트가 오락실을 뒤집어 놓기 4년 전이고, 더블 드래곤보다도 2년 앞섭니다. 그 시점에 이미 주먹과 발차기로 화면을 밀고 나가는 게임이 있었다는 사실이, 이 작품을 들여다볼 이유가 됩니다.

너클 조(Knuckle Joe)는 세이부 카이하츠가 만들고 1985년에 나온 횡스크롤 액션 게임입니다. 주인공 조를 조작해 몰려드는 불량배들을 주먹과 발차기로 쓰러뜨리며 오른쪽으로 나아갑니다. 조작은 8방향 레버와 버튼 두 개로, 하나는 주먹 하나는 발차기입니다. 여기에 점프가 붙어 위아래로도 몸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너클 조 플랫폼 게임 화면 1 - 오락실 (1985)

1985년의 액션이란 것

지금 기준으로 보면 이 게임은 단출합니다. 잡기도 없고, 무기를 들고 휘두르는 화려한 연출도 제한적이며, 콤보라는 개념도 아직 없습니다. 하지만 그 단출함 안에 필요한 것은 다 들어 있습니다. 적은 한 방에 쓰러지지 않고 여러 번 때려야 넘어지며, 주먹과 발차기는 사거리와 판정이 서로 다릅니다. 이 두 가지만으로도 거리를 재고 타이밍을 잡는 싸움이 성립합니다.

이 시절 액션 게임의 핵심은 위치 선정입니다. 화면 안에 적이 여러 명 있을 때 어느 쪽을 등지고 설 것인가가 생사를 가릅니다. 조는 여러 명에게 둘러싸이면 순식간에 무너지므로, 한쪽 방향으로만 적을 몰아 두고 차례로 처리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뒤로 물러나면서 오는 놈을 하나씩 맞이하는, 이른바 물러서며 싸우기가 초보자가 가장 먼저 익혀야 할 요령입니다.

또 하나는 점프입니다. 지상에서 밀리면 뛰어서 적의 머리 위를 넘어 반대편으로 빠지는 것이 유효합니다. 둘러싸인 상황을 한 번에 푸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라, 이 게임을 오래 하는 사람은 점프를 도망 수단으로 자주 씁니다.

너클 조 플랫폼 게임 화면 2 - 오락실 (1985)

스테이지와 보스

진행은 여러 개의 스테이지가 이어지는 형태이고, 일정 구간마다 그 구역의 우두머리가 기다립니다. 일반 적이 나오는 구간을 몇 개 지나면 보스가 나오는 식으로 리듬이 반복됩니다. 보스는 일반 적보다 훨씬 많이 맞아야 쓰러지고, 공격 패턴도 따로 가지고 있어서 무작정 달려들면 손해입니다.

보스전의 요령도 결국 거리입니다. 상대가 공격을 내미는 순간에 맞춰 물러났다가, 동작이 끝나고 생기는 빈틈에 들어가 한두 방을 넣고 다시 빠집니다. 욕심을 내서 계속 붙어 있으면 반격을 그대로 받습니다. 이 치고 빠지기 리듬은 이후 벨트 스크롤 액션 전반에서 통용되는 원칙이 되는데, 1985년 작품에서 이미 그 감각이 요구된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중간중간에는 완전히 다른 성격의 구간이 끼어듭니다. 보스를 꺾고 나면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며 다른 라이더들을 상대하는 보너스 스테이지가 나옵니다. 격투 게임을 하다가 갑자기 주행 슈팅으로 넘어가는 셈인데, 1985년 액션 게임에서는 꽤 이례적인 구성입니다. 한 가지만 반복되는 지루함을 덜어 주는 장치이자, 당시 개발자들이 여러 아이디어를 한 기판에 욱여넣던 분위기를 보여 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세이부 카이하츠라는 회사

이 게임을 만든 세이부 카이하츠는 1982년에 세워진 일본 업체입니다. 지금 이 이름을 아는 사람은 대개 슈팅 게임 때문에 압니다. 이 회사가 1990년에 내놓은 라이덴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세이부 카이하츠는 종스크롤 슈팅의 대표 주자로 자리를 굳혔기 때문입니다. 이후 라이덴 II, 라이덴 DX, 그리고 라이덴 파이터즈 시리즈로 이어지는 계보가 이 회사의 얼굴입니다.

그래서 너클 조는 이 회사의 역사에서 조금 낯선 자리에 놓입니다. 슈팅으로 이름을 얻기 전, 아직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이것저것 시도하던 시기의 작품입니다. 초기의 세이부 카이하츠는 자체 유통망이 없어서 일본 내 판매를 다른 대형 업체에 맡기는 방식으로 게임을 냈고, 너클 조 역시 그런 형태로 시장에 나왔습니다. 규모가 작은 개발사가 살아남던 전형적인 방식입니다.

이 회사의 아케이드 부문은 1990년대 말에 사라졌고, 인력과 라이덴 판권은 다른 곳으로 넘어가 시리즈가 이어졌습니다. 한 회사의 시작점에 놓인 게임을 지금 다시 해 보는 것은, 그 회사가 나중에 무엇이 되었는지를 알고 보기 때문에 더 재밌습니다.

한국 오락실에서

1985년이면 한국 오락실이 한창 늘어나던 시기입니다. 동네마다 문방구 앞에 기계가 한두 대씩 놓이고, 오락실이라는 공간 자체가 아이들의 일상에 자리 잡던 무렵입니다. 그 시절 기계에 들어 있던 게임들은 대개 화면 하나로 승부를 보는 단순한 것들이었는데, 옆으로 흐르면서 주먹질을 하는 게임은 상대적으로 새로웠습니다.

지금 잡아 보면 조작이 뻣뻣하고 반응이 즉각적이지 않다는 점을 금방 느끼게 됩니다. 이후 나온 벨트 액션들이 다듬어 놓은 손맛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답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게임의 가치는 세련됨이 아니라 시점에 있습니다. 장르가 아직 이름도 갖지 못했던 때에, 무엇을 재밌게 만들 수 있을지 더듬어 가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몇 판 돌려 보면 이후 수많은 게임이 다듬어 낸 요소들의 원형이 하나씩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