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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철권 오락실판

블러디 로어 (Bloody Roar Japan Jun 21 1997) · 1997 · Eigh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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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격투에서 게이지가 차면 보통 강력한 필살기 한 방을 씁니다. 이 게임은 다릅니다. 게이지를 터뜨리면 캐릭터가 짐승으로 변합니다. 사람이던 캐릭터가 늑대가 되고 호랑이가 되고 두더지가 되며, 그 순간부터 몸집과 리치와 기술표가 통째로 바뀝니다. 오락실에서 이 장면을 처음 본 사람들은 대체로 옆 사람 어깨를 쳤습니다.

블러디 로어(Bloody Roar)는 조안스로프라 불리는, 짐승으로 변신하는 능력을 가진 인물들이 겨루는 3D 대전 격투 게임입니다. 국내 오락실에서는 동물철권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철권처럼 3D 무대에서 붙는 격투인데 캐릭터가 동물로 변한다는 점을 그대로 이름에 담은, 아주 실용적인 작명이었습니다.

동물철권 오락실판 대전격투 게임 화면 1 - 오락실 (1997)

변신은 언제 하는가

이 게임의 전부라고 해도 좋을 부분이 변신 타이밍입니다. 화면 아래 게이지는 공격을 맞히거나 맞으면서 차오르고, 원하는 순간에 터뜨려 짐승 상태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짐승 상태는 단순히 세지는 게 아닙니다. 공격력과 리치가 오르고 짐승 전용 기술이 열리며, 무엇보다 맞으면서 체력이 조금씩 회복됩니다. 대신 게이지가 계속 줄어들어서 시간이 지나면 사람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짐승 상태에서 크게 얻어맞으면 게이지가 통째로 날아가며 강제로 풀립니다.

그래서 변신에는 도박의 성격이 있습니다. 밀리고 있을 때 반격 카드로 쓸 수도 있고, 이기고 있을 때 굳히기로 쓸 수도 있습니다. 초심자에게 권하는 쪽은 후자입니다. 상대를 구석에 몰아넣고 흐름을 잡은 다음 변신해서 밀어붙이는 편이, 궁지에서 역전을 노리고 터뜨렸다가 곧바로 풀리는 것보다 확실합니다.

동물철권 오락실판 대전격투 게임 화면 2 - 오락실 (1997)

사람 상태를 버리지 마세요

가장 흔한 오해가 사람 상태는 변신을 기다리는 시간이라는 생각입니다. 실제로는 반대에 가깝습니다. 사람 상태의 움직임이 짐승 상태보다 빠르고 가벼운 캐릭터가 많고, 게이지를 채우는 일 자체가 사람 상태에서 이루어집니다.

사람 상태에서 제대로 압박하지 못하면 게이지가 안 차고, 게이지가 안 차면 변신 자체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변신은 목표가 아니라 보상입니다. 이 순서를 뒤집어 생각하면 계속 지게 됩니다.

캐릭터마다 사람 상태와 짐승 상태의 격차도 다릅니다. 변신하면 완전히 다른 캐릭터가 되는 쪽이 있고, 변신해도 성격이 크게 안 변하는 대신 두 상태 모두 안정적인 쪽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후자를 골라 기본기를 익히는 편이 수월합니다.

3D 격투 전성기의 한복판

1997년은 3D 대전 격투가 가장 뜨거웠던 시기입니다. 이 게임은 플레이스테이션 기반의 기판에서 돌아갔는데, 이 계열 기판의 특징은 성능이 압도적이지는 않아도 가정용 이식이 매끄럽다는 점이었습니다. 실제로 이 게임도 오락실 출시 몇 달 뒤에 가정용으로 나왔습니다.

만든 곳은 슈팅 게임으로 이름을 알린 회사였습니다. 탄막과 스크롤을 다루던 팀이 3D 격투로 옮겨와 만든 첫 작품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변신이라는 큼직한 한 가지 아이디어로 승부를 본 구성이 이해가 갑니다. 기술 체계의 정교함으로 선배들과 겨루는 대신, 아무도 안 한 것 하나를 확실하게 밀었습니다.

오락실에서 불린 이름

동물철권이라는 통칭은 이 게임이 국내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3D 격투는 곧 철권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은 상태였고, 새로 들어온 3D 격투는 철권 앞에 특징을 붙인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실제 오락실에서의 인기는 철권이나 버추어 파이터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다만 변신이라는 요소가 워낙 눈에 띄어서, 격투 게임을 잘 못 하는 사람도 한 번쯤 앉아 보게 만드는 힘이 있었습니다. 무슨 기술인지 몰라도 게이지가 차면 버튼을 눌러 짐승이 되는 것 하나는 누구나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리즈는 그 뒤로도 여러 편이 이어지며 변신 시스템을 다듬어 갔습니다. 이 첫 작품은 나중 작품들에 비하면 거칠지만, 짐승으로 변한다는 발상이 격투 게임 안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작동한 자리라는 점에서 여전히 해 볼 가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