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철권
블러디 로어 (Bloody Roar) · 1997 · Hudson So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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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오락실에서 이 게임을 정식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다들 동물철권이라고 했습니다. 3D 격투 게임인데 캐릭터가 싸우다 말고 늑대나 호랑이로 변한다는 점 하나가 워낙 강렬해서, 그 특징이 그대로 이름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 시절 오락실에서 이 게임 앞에 사람이 몰린 이유도 결국 변신 장면이었습니다.
동물철권(Bloody Roar)은 사람과 짐승의 모습을 오가며 싸우는 3D 대전격투 게임입니다. 기본은 여느 3D 격투와 같습니다. 주먹과 발을 조합해 연속기를 넣고, 막고, 던지고, 상대 체력을 먼저 깎으면 이깁니다. 여기에 변신이라는 축이 하나 더 얹혀 있습니다.
변신이 만드는 판
화면에는 체력 말고 짐승 게이지가 따로 있습니다. 이 게이지가 차면 변신할 수 있고, 변신하면 공격력과 방어력이 오르고 쓸 수 있는 기술도 늘어납니다. 짐승 상태에서는 체력이 조금씩 회복되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변신을 언제 하느냐입니다. 게이지가 차자마자 바로 쓰면 편하지만, 상대에게 맞으면 변신이 풀립니다. 그래서 상대가 몰아붙일 때 무리하게 변신하면 곧바로 벗겨져 손해입니다. 반대로 상대를 눕히고 거리를 벌린 직후에 변신하면 안전하게 우위를 가져갑니다.
변신 자체가 공격 판정을 가지기도 해서, 상대가 붙어 있을 때 반격 수단으로 쓰기도 합니다. 이 타이밍 싸움이 다른 격투 게임에는 없는 이 시리즈만의 수읽기입니다.
캐릭터마다 다른 짐승
등장인물은 각자 다른 짐승으로 변합니다. 늑대, 호랑이, 토끼, 두더지, 사자처럼 종류가 다양하고, 그에 따라 싸우는 방식이 완전히 갈립니다.
늑대나 호랑이는 정직하게 강한 편이라 처음 잡기 좋습니다. 발이 빠르고 연속기가 단순해서 손에 잘 붙습니다. 반면 토끼는 점프와 이동이 특이하고, 두더지는 땅속으로 파고드는 기술을 씁니다.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익히면 상대가 대처하기 어려운 흐름을 만들 수 있습니다.
사람 상태와 짐승 상태의 기술이 다르기 때문에, 한 캐릭터를 제대로 쓰려면 사실상 두 벌의 기술을 익혀야 합니다. 그만큼 파고들 여지가 넓습니다.
벽이 있는 무대
무대 가장자리에 벽이 있어 밀어붙이면 상대가 벽에 부딪힙니다. 벽에 몰린 상대는 물러날 곳이 없어 연속기를 온전히 다 맞게 되므로, 벽까지 밀어 넣는 것 자체가 하나의 전략이 됩니다.
어떤 무대에서는 벽이 부서지면서 다른 구역으로 넘어가기도 합니다. 판이 넓어지는 연출이 시원해서, 벽을 부수려고 일부러 상대를 그쪽으로 모는 재미도 있습니다.
처음 하는 분께
격투 게임에 익숙하지 않다면 늑대나 호랑이 계열을 골라 시작하시길 권합니다. 기술이 직관적이라 버튼을 눌러도 그럴듯한 연속기가 이어집니다.
변신을 아끼는 습관을 들이세요. 게이지가 찼다고 바로 쓰기보다, 상대를 눕힌 직후처럼 안전한 순간을 노리는 것이 훨씬 이득입니다.
그리고 막는 것을 익히는 것이 가장 빠른 실력 향상입니다. 짐승 상태의 공격은 아프기 때문에, 무리해서 맞받아치기보다 일단 막고 상대 공격이 끝난 뒤에 반격하는 편이 안정적입니다.
그 시절 오락실에서
철권이 워낙 강했던 시기라 3D 격투 게임은 대부분 그 그늘 아래 있었습니다. 이 게임도 동물철권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 자체가 그 사정을 보여 줍니다.
그래도 변신이라는 뚜렷한 개성 덕에 자기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격투 게임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도 변신 한 번으로 판을 뒤집을 수 있다는 점이 진입 장벽을 낮췄고, 그래서 오락실에서 구경꾼이 많이 붙는 게임이었습니다.
지금 다시 잡아도 조작이 어렵지 않아 부담 없이 한 판 붙어 볼 수 있습니다. 변신 타이밍만 감을 잡으면 컴퓨터 상대로도 제법 그럴듯한 싸움이 만들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