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링 크러시
롤링 크러시 (Rolling Crush Version 1 07 E 1999 02 11 Trust Lice) · 1999 · Sem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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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이 끝까지 밀려오기 전에
화면 한가운데에 대포가 하나 있고, 그 둘레를 색 구슬이 한 줄로 이어져 천천히 굴러 들어옵니다. 대포에서 구슬을 쏴 그 줄 사이에 끼워 넣고, 같은 색이 셋 이상 모이면 그 자리가 터지면서 줄이 짧아집니다. 줄의 머리가 안쪽 구멍에 닿기 전에 다 지워 내는 것이 한 판의 전부입니다.
규칙은 한 문장이면 설명이 끝나는데, 실제로 붙어 보면 손이 상당히 바쁩니다. 구슬은 쉬지 않고 밀려들고, 잘못 쏘면 오히려 줄이 길어집니다. 그래서 이 장르는 조준 실력만큼이나 어디를 비워 둘지 결정하는 판단이 승부를 가릅니다.
어떤 게임인가
롤링 크러시(Rolling Crush)는 세미컴이 1999년에 내놓은 아케이드 퍼즐입니다. 같은 해에 나온 퍼즈 루프 계열의 규칙을 따르는 게임으로, 굴러오는 구슬 줄을 같은 색으로 끊어 내는 방식이 그대로입니다. 조작은 좌우로 조준하고 버튼으로 쏘는 것이 거의 전부라 처음 앉는 사람도 한 판이면 규칙을 익힙니다.
이 계열의 핵심은 연쇄입니다. 셋을 맞춰 터뜨리면 그 자리가 비면서 양쪽 줄이 다시 붙는데, 그 붙는 자리에서 또 같은 색이 셋이 되면 연달아 터집니다. 한 발로 줄을 크게 잘라 내는 순간의 손맛이 좋아서, 이 장르는 대체로 안전하게 조금씩 치우는 쪽보다 연쇄를 노리고 한 발을 아끼는 쪽이 점수와 생존 양쪽에서 유리합니다.
어디서 어려워지는가
초반 몇 판은 줄이 짧고 색도 두세 가지뿐이라 대충 쏴도 넘어갑니다. 문제는 색이 늘어나면서 시작합니다. 색이 넷, 다섯으로 늘면 손에 들린 구슬이 지금 필요한 색이 아닐 확률이 급격히 올라가고, 쓸 데가 없어 아무 데나 박아 넣은 구슬이 나중에 줄을 막는 마개가 됩니다.
그래서 요령은 버리는 자리를 정해 두는 것입니다. 줄의 꼬리 쪽, 즉 구멍에서 가장 먼 자리에 쓸모없는 구슬을 몰아 두면 당장 위험이 커지지 않고, 나중에 같은 색이 오면 거기서 한꺼번에 정리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구멍 근처에 잡동사니를 쌓으면 남은 시간이 사라집니다.
또 하나 조심할 것은 줄이 짧아졌을 때의 방심입니다. 이 계열은 줄이 거의 다 지워졌을 때 남은 구슬이 갑자기 빠른 속도로 빨려 들어가는 구간이 있습니다. 다 끝났다고 손을 늦추면 마지막 서너 개가 그대로 구멍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끝까지 같은 속도로 쏘는 것이 안전합니다.
세미컴이라는 회사
세미컴은 1990년대 한국 아케이드 기판 시장에서 꾸준히 게임을 내던 제작사입니다. 자체 기판을 굴리면서 퍼즐, 액션, 대전물을 가리지 않고 만들었고, 그 시절 국산 기판 회사들이 대개 그랬듯 당대에 잘 되는 장르를 빠르게 따라잡아 자기 식으로 다시 내놓는 방식으로 물량을 채웠습니다.
이 게임도 그런 흐름 위에 있습니다. 새 규칙을 발명한 게임은 아니지만, 규칙이 잘 통하는 장르를 골라 국내 오락실이 감당할 수 있는 기판 위에 얹었다는 점에서 그 시절 국산 아케이드의 현실을 잘 보여 줍니다. 대만과 일본에서 들여오는 기판보다 값이 싸서 동네 오락실이 부담 없이 한 대씩 놓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 오락실에서
1990년대 말 오락실 퍼즐 자리는 회전율이 좋아야 했습니다. 한 판이 길게 늘어지면 뒤에 선 손님이 빠지기 때문입니다. 이 계열은 그 조건에 잘 맞았습니다. 규칙이 즉시 이해되고, 못하는 사람은 금방 죽고, 잘하는 사람은 연쇄로 오래 버티는 구조라 자리 회전과 실력 과시가 동시에 됩니다.
오늘 처음 해 본다면 첫 판은 조준 감각을 익히는 데 쓰는 것이 좋습니다. 구슬이 곡선 줄에 끼어 들어가기 때문에 눈으로 본 각도와 실제로 박히는 자리가 미묘하게 어긋납니다. 그 차이만 몸에 익으면 그다음부터는 줄 전체를 보고 어디를 끊을지 고르는, 이 장르의 진짜 재미가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