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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럭스 5

디럭스 5 (Deluxe 5 Ver 0107 07 01 2000 SET 1) · 2000 · ES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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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화면 하단에서 —키 변경 Controls Settings·저장·불러오기 Save State / Load State

동전을 넣으면 메뉴부터 뜨던 기판

동전을 넣고 스타트를 눌렀는데 게임이 바로 시작되지 않고 화면에 그림 몇 개가 늘어서던 기판이 있었습니다. 레버를 좌우로 움직여 하나를 고르고 버튼을 눌러야 그제서야 판이 열립니다. 처음 보는 사람은 잠깐 당황하지만 두 번째부터는 그 선택 화면이 오히려 재미가 됩니다. 오늘은 어떤 걸 할까 하고 고르는 그 몇 초가 게임의 일부였습니다.

디럭스 5(Deluxe 5)는 그런 기판이었습니다. 위에서 떨어지는 블록을 좌우로 옮기고 돌려 빈틈 없이 채우면 그 줄이 지워지는, 이른바 낙하형 퍼즐을 여러 갈래로 변주해 한 판에 모아 놓은 모음집입니다. 규칙을 설명해 줄 사람이 없어도 한 판만 보면 무엇을 하는 게임인지 알 수 있고, 조작은 레버와 버튼 하나면 끝납니다. 오락실에서 이런 게임은 언제나 자리를 지켰습니다.

디럭스 5 기타 게임 화면 1 - 오락실 (2000)

한 판이 흘러가는 방식

블록이 화면 위에서 천천히 내려옵니다. 레버 좌우로 위치를 잡고, 버튼으로 방향을 돌리고, 레버를 아래로 밀면 빨리 떨어집니다. 가로 한 줄이 빈칸 없이 채워지면 그 줄이 사라지고 위에 쌓여 있던 것들이 한 칸씩 내려앉습니다. 지우지 못하고 계속 쌓기만 하면 더미가 화면 꼭대기에 닿고, 그 순간 판이 끝납니다.

점수는 한 번에 몇 줄을 지웠느냐로 크게 갈립니다. 한 줄씩 꼬박꼬박 지우는 것보다 세 줄, 네 줄을 한꺼번에 터뜨리는 쪽이 훨씬 이득입니다. 그래서 실력이 붙으면 자연스럽게 한쪽 끝에 세로로 긴 홈을 파 두고 기다리는 습관이 생깁니다. 문제는 기다리는 동안 낙하 속도가 계속 빨라진다는 점이고, 이 욕심과 안전 사이의 줄다리기가 이 장르의 핵심입니다.

두 사람이 나란히 붙어 앉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대전에서는 내가 여러 줄을 한꺼번에 지울 때마다 상대 화면 아래로 지저분한 방해 줄이 밀려 올라갑니다. 밀려 올라간 만큼 상대의 여유 공간이 줄고, 그 압박에 손이 급해지면서 실수가 나옵니다. 혼자 할 때는 자기 실수로만 지지만, 둘이 할 때는 상대가 나를 무너뜨립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막히는 곳

가장 흔한 실패는 바닥을 평평하게 유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급한 마음에 눈앞의 블록을 아무 데나 떨어뜨리면 표면에 계단과 구멍이 생기고, 한 번 생긴 구멍은 그 위를 다 지우기 전까지 메워지지 않습니다. 구멍 두세 개가 겹치는 순간 판은 사실상 끝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니 처음에는 점수를 포기하더라도 표면을 고르게 유지하는 데만 신경 쓰는 편이 낫습니다.

다음 블록을 미리 보여 주는 칸을 보는 습관도 중요합니다. 지금 내려오는 조각만 보고 판단하면 다음 조각이 들어갈 자리가 없어집니다. 지금 것과 다음 것을 묶어 두 수를 함께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버티는 시간이 눈에 띄게 길어집니다. 그리고 레버를 아래로 밀어 빨리 떨어뜨리는 조작은 자리를 다 정한 다음에만 쓰는 것이 안전합니다.

만든 곳과 그 시절

디럭스 5를 만든 ESD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국내에서 아케이드 기판을 만들던 회사입니다. 이 시기 국내 기판 회사들은 큰 회사들이 3D 그래픽과 체감형 기기로 옮겨 간 자리 뒤편에서, 작은 화면 하나로 승부가 나는 퍼즐과 액션을 꾸준히 내놓았습니다. 개발비가 크지 않고, 손님이 규칙을 배우는 데 시간이 걸리지 않으며, 한 판이 짧아 회전이 빠르다는 점이 이런 게임의 장점이었습니다.

여러 게임을 한 기판에 담은 구성도 그 시절 사정과 맞물려 있었습니다. 업주 입장에서는 기판 한 장 값으로 여러 판을 놓는 셈이고, 손님이 한 게임에 질려도 다른 판으로 옮겨 앉으니 기계가 놀지 않았습니다. 2000년 무렵 동네 오락실과 문방구 앞 기계에서 이런 모음집 기판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오늘 다시 해 볼 때

이 게임은 화려한 연출이나 긴 이야기로 붙잡는 종류가 아닙니다. 대신 손이 규칙을 기억하는 속도가 아주 빠릅니다. 몇 분만 잡고 있으면 예전에 하던 감각이 그대로 돌아오고, 한 판이 짧아 잠깐 시간이 빌 때 붙잡기에 알맞습니다.

혼자 오래 버티는 것을 목표로 삼아도 좋고, 옆 사람과 한 판씩 번갈아 붙어 누가 더 오래 버티는지 겨루어도 좋습니다. 어느 쪽이든 이 게임이 오락실에서 하던 일은 같았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을 앉히고, 잠깐이라고 생각한 시간을 꽤 길게 잡아 두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