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러드 워리어
블러드 워리어 (Blood Warrior) · 1994 · Kane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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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을 가득 채우는 덩치
이 게임을 처음 보면 캐릭터가 유난히 크다는 데 먼저 놀라게 됩니다. 화면 안에 둘이 마주 서면 그것만으로 공간이 꽉 찹니다. 덩치가 크니 한 대 맞을 때의 무게감도 다르고, 무기를 크게 휘두를 때 화면이 흔들리는 느낌도 큽니다. 대신 몸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맞기 쉽다는 뜻이기도 해서, 이 게임의 승부는 대체로 짧고 험하게 끝납니다.
블러드 워리어(Blood Warrior)는 일본 전국시대 분위기를 배경으로 여러 무사와 요괴가 무기를 들고 일대일로 맞붙는 대전 격투 게임입니다. 체력 게이지를 먼저 깎는 쪽이 이기는 기본 구조는 다른 대전 격투와 같지만, 맨손 격투 대신 칼과 창 같은 무기가 중심이고 타격이 들어갈 때의 연출이 훨씬 노골적입니다.
무기를 든 대전 격투
무기가 있다는 것은 사거리 싸움이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주먹과 발로 붙는 격투에서는 몸을 붙이는 쪽이 유리한 순간이 많지만, 여기서는 무기의 길이가 곧 안전거리입니다. 상대의 무기 끝이 닿지 않는 자리에서 이쪽 무기만 닿는 거리를 잡는 것이 기본이고, 그 거리를 놓치면 순식간에 체력이 반쯤 사라집니다.
한 방의 위력이 크다 보니 대전의 리듬도 다릅니다. 잔기술을 촘촘히 넣어 조금씩 깎는 흐름보다, 서로 노려보다가 한 번의 실수를 크게 벌하는 흐름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함부로 다가서지 못하고 화면 양 끝에서 견제만 주고받는 장면이 자주 나옵니다. 이 조심스러운 긴장이 이 게임의 성격입니다.
캐릭터마다 무기와 몸집, 움직임이 확연히 다릅니다. 길고 느린 무기를 쓰는 쪽은 거리를 벌리고 버티는 싸움을, 짧고 빠른 쪽은 파고들어 몰아붙이는 싸움을 하게 됩니다. 처음 잡는다면 사거리가 적당하고 동작이 크지 않은 쪽을 고르는 편이 익히기 쉽습니다.
험한 연출로 눈길을 끌던 시기
이 작품이 나온 시기는 대전 격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때입니다. 이미 여러 대작이 오락실을 나누어 갖고 있었고, 후발 주자들은 저마다 다른 무기를 들고 나와야 했습니다. 어떤 곳은 조작의 깊이로, 어떤 곳은 캐릭터의 매력으로 승부를 걸었습니다. 이 게임이 택한 것은 강렬한 연출이었습니다.
큰 스프라이트, 무기가 살을 가르는 표현, 결정타가 들어갈 때의 과장된 반응이 그 선택의 결과입니다. 같은 시기 해외에서 유혈 연출을 앞세운 격투 게임이 큰 화제를 모으고 있었으니, 그 흐름과 무관하지 않은 방향이었습니다. 덕분에 화면 앞을 지나가는 사람의 눈길을 붙잡는 데는 확실히 성공했습니다.
이 회사는 앞서 비슷한 분위기의 무기 격투를 한 편 내놓은 적이 있고, 이 작품은 그 계보를 이어받아 규모를 키운 쪽에 가깝습니다. 시대극 배경, 큰 캐릭터, 무기 중심의 공방이라는 뼈대가 그대로 이어집니다.
대작들 사이에서의 자리
솔직히 말해 이 게임은 당대의 간판들과 나란히 놓일 만한 완성도를 갖추지는 못했습니다. 큰 캐릭터를 쓰다 보니 움직임이 다소 굼뜨고, 대전 격투의 생명인 세밀한 반응과 균형에서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오래 파고들어 연구할 만한 깊이보다는, 한두 판 붙어 보고 인상을 남기는 쪽의 게임입니다.
그래서 즐기는 방법도 조금 다릅니다. 커맨드를 외우고 우열을 따지기보다, 캐릭터를 하나씩 골라 보며 무기와 동작 구경을 하는 쪽이 이 게임의 재미에 가깝습니다. 화면 가득한 덩치들이 큰 무기를 휘두르는 그림 자체가 다른 데서 보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국내에서는 드물었던 기판
국내 오락실에서 이 게임을 만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당시 격투 게임 자리는 몇몇 대작이 거의 다 차지하고 있었고, 새 기판을 들여놓아도 손님이 붙지 않으면 금세 빠졌기 때문입니다. 이 게임처럼 이름이 낯설고 조작이 무거운 작품은 그 경쟁을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기억보다 기록에 가까운 게임입니다. 그 시절 대전 격투 열풍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그래서 얼마나 많은 회사가 저마다의 격투 게임을 들고 뛰어들었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다시 해 보면 투박하지만, 한 방의 무게와 험한 연출이 만들어 내는 그 시절 특유의 분위기는 분명히 살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