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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나 산시로 태풍걸

온나 산시로 태풍걸 (Onna Sansirou Typhoon Gal SET 1) · 1985 · Ta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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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복을 입은 여자 주인공

1985년 오락실 화면에서 여성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일은 흔치 않았습니다. 나온다 해도 대개는 구해야 할 대상이었지, 직접 주먹을 쓰는 쪽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 게임은 유도복을 입은 여성이 화면 한가운데 서서, 덤벼드는 남자들을 붙잡아 메치고 내던집니다. 제목의 산시로는 일본에서 유도를 다룬 이야기의 주인공 이름으로 오래 쓰여 온 것이고, 앞에 붙은 온나는 여자를 뜻합니다. 말하자면 여자 유도 영웅이라는 뜻의 제목입니다.

지금 보면 도트가 큼직하고 동작도 뻣뻣하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사람과 사람이 맨몸으로 붙는다는 발상 자체가 신선했습니다. 총도 검도 없이 손발과 몸으로만 싸우는 게임이 아직 장르로 자리 잡기 전이었기 때문입니다.

온나 산시로 태풍걸 대전격투 게임 화면 1 - 오락실 (1985)

어떤 게임인가

온나 산시로 태풍걸(Onna Sanshirou - Typhoon Gal)은 옆에서 본 화면에서 주인공을 좌우로 움직이며 다가오는 적들을 격투로 처리해 나가는 액션 게임입니다. 화면이 조금씩 옆으로 흐르고, 그 안에서 계속 새로운 적이 등장합니다. 플레이어는 물러설 곳이 마땅치 않은 좁은 공간에서 적을 계속 상대하게 됩니다.

조작은 레버와 버튼 몇 개로 끝납니다. 레버로 움직이고, 버튼으로 치거나 잡습니다. 여기서 이 게임의 성격이 드러나는데, 단순히 때려서 체력을 깎는 것만이 아니라 적에게 달라붙어 붙잡은 다음 던지는 동작이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유도라는 소재를 그대로 조작에 옮겨 놓은 셈입니다.

온나 산시로 태풍걸 대전격투 게임 화면 2 - 오락실 (1985)

붙잡고 던지는 감각

처음 잡으면 대부분 버튼을 계속 두들기다가 금방 쓰러집니다. 이 게임에서 잘하는 길은 거리를 재는 데 있습니다. 적이 사정거리 밖에 있을 때 헛손질을 하면 그 빈틈에 얻어맞고, 너무 깊이 파고들면 여러 명에게 둘러싸입니다. 적이 들어오는 순간에 맞춰 손을 내는 연습을 하면 갑자기 판이 편해집니다.

던지기가 붙으면 상대는 한동안 일어나지 못합니다. 그 사이에 다른 적을 정리할 시간을 벌 수 있으니, 여러 명이 몰릴 때는 때리는 것보다 던지는 쪽이 이득인 경우가 많습니다. 던져진 적이 다른 적에게 부딪히면서 생기는 상황도 있어서, 한 명을 어디로 던질지 생각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막히는 지점은 대개 적의 수가 늘어나는 구간입니다. 앞뒤로 동시에 붙으면 한쪽을 처리하는 동안 반대쪽에서 계속 맞습니다. 이럴 때는 한쪽 끝으로 붙어 등 뒤를 벽으로 막고 한 방향만 상대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오래된 액션 게임의 정석이 여기에도 그대로 통합니다.

격투 게임이 장르가 되기 전

사람이 맨손으로 싸우는 아케이드 게임의 계보를 따지면, 1984년의 가라테 소재 게임들이 문을 열고 1987년의 스트리트 파이터를 거쳐 1991년에 이르러 대전격투라는 장르가 완성됩니다. 이 게임은 그 사이의 어중간한 시기에 놓여 있습니다. 일대일로 마주 서서 겨루는 대전 구도가 아니라, 계속 밀려오는 적을 혼자 상대하는 구조라서 오늘날의 대전격투와는 결이 다릅니다.

오히려 몇 해 뒤에 유행하는 벨트스크롤 액션 쪽에 가까운 면이 있습니다. 다만 화면이 위아래로 넓게 열려 있지 않아서 자유롭게 돌아다니지는 못하고, 좌우로만 움직이는 평면 안에서 싸웁니다. 이런 어정쩡한 구조가 오히려 이 시기 게임들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만드는 사람들이 아직 어떤 형태가 재미있는지 찾아가던 중이었습니다.

타이토라는 회사와 그 시절

타이토는 1978년 스페이스 인베이더로 오락실이라는 공간 자체를 만들어 낸 회사입니다. 1980년대 중반의 타이토는 한 가지 형태에 안주하지 않고 온갖 소재를 시험하던 시기였고, 이 게임도 그런 시도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이듬해에 나온 버블 보블이 크게 성공하면서 회사의 색깔이 굳어지기 전의, 말하자면 아직 여러 갈래를 더듬어 보던 무렵의 결과물입니다.

국내 오락실에서 이 기판을 흔하게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같은 시기에 들어온 슈팅과 액션 게임들이 워낙 강했고, 격투 액션이라는 소재가 대중적으로 힘을 얻으려면 몇 해를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은 이름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쪽에 속합니다.

지금 다시 해 보면 조작이 무겁고 판정이 인색해서 요즘 게임에 익숙한 손에는 답답할 수 있습니다. 대신 몇 판 붙잡고 거리 감각을 익히면, 아직 규칙이 정해지기 전의 게임이 어떤 식으로 재미를 찾으려 했는지가 손끝으로 전해집니다. 그런 종류의 재미를 찾는 사람에게는 한 번쯤 눌러 볼 만한 게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