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왕 던전 다이스 몬스터즈
유희왕 던전 다이스 몬스터즈 (Yu Gi Oh Dungeon Dice Monsters J Rapid Fire) · 2001 · Kona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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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가 아니라 주사위를 굴리는 유희왕
유희왕이라고 하면 대부분 카드를 떠올립니다. 손에 든 카드를 내려놓고, 공격력과 수비력을 견주고, 함정 카드를 뒤집는 그 장면 말입니다. 그런데 이 게임은 카드를 쓰지 않습니다. 대신 주사위를 굴립니다. 처음 켠 사람이 가장 먼저 당황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원작 안에서도 이 방식은 별도의 게임으로 등장했습니다. 카드 결투와는 다른 규칙을 가진, 판 위에 던전을 깔고 말을 움직이는 형태의 승부입니다. 그 규칙을 휴대용 기기로 옮긴 것이 이 작품이고, 그래서 이 게임은 유희왕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보드 게임에 훨씬 가깝습니다.
어떤 게임인가
유희왕 던전 다이스 몬스터즈(Yu-Gi-Oh! Dungeon Dice Monsters)는 휴대용 기기로 나온 보드형 대전 게임입니다. 두 플레이어가 빈 판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각자 자기 쪽에서 길을 깔아 나가며 상대 진영까지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삼습니다.
한 턴의 흐름은 주사위를 굴리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굴린 결과에 따라 판 위에 놓을 수 있는 길이 생기고, 조건이 맞으면 몬스터를 불러낼 수 있습니다. 불러낸 몬스터는 깔아 둔 길을 따라 이동하며 상대와 부딪칩니다. 즉 주사위가 자원을 만들고, 그 자원으로 지형과 병력을 동시에 굴리는 구조입니다.
운과 판단이 섞이는 방식
주사위 게임이라고 하면 운이 전부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 게임은 그 인상을 조금 배신합니다. 굴린 결과가 무엇이든 그것을 어디에 쓰느냐는 전적으로 플레이어의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눈이 나와도 길을 앞으로 뻗을지, 옆으로 벌릴지, 아니면 몬스터를 부르는 데 쓸지를 정해야 합니다.
초반에는 대개 길을 빠르게 뻗는 쪽이 유리해 보입니다. 그런데 길만 길게 뽑아 두면 정작 그 길을 지킬 병력이 없어서, 상대 몬스터가 곧장 밀고 들어옵니다. 반대로 소환에만 힘을 쓰면 나아갈 길이 없어 병력이 제자리에 묶입니다. 이 둘의 균형을 어디서 잡느냐가 실력 차이로 드러납니다.
또 하나 중요한 건 길의 모양입니다. 넓게 퍼진 길은 진격 경로가 여럿이라 공격에 유리하지만, 그만큼 막아야 할 입구도 늘어납니다. 좁게 뻗은 길은 지키기 쉬운 대신 한 번 막히면 돌아갈 곳이 없습니다. 판을 깔 때부터 이미 수비 계획이 시작되는 셈입니다.
처음 잡는 사람이 막히는 지점
가장 흔한 실수는 몬스터를 아끼는 것입니다. 강한 것을 부르려고 기다리다 보면, 그동안 상대는 이미 판의 절반을 차지해 버립니다. 이 게임에서 판의 면적은 그 자체로 유리함이기 때문에, 약한 것이라도 먼저 내놓고 자리를 잡는 편이 나은 경우가 많습니다.
두 번째는 정면 충돌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길이 여러 갈래로 나 있으면 부딪치지 않고 돌아가는 경로가 생깁니다. 상대 몬스터가 지키고 선 자리를 굳이 뚫으려 하지 말고, 옆으로 한 칸 돌려 우회하는 것만으로 상황이 완전히 뒤집히기도 합니다.
세 번째는 자기 진영 뒤쪽을 비워 두는 것입니다. 앞으로 나가는 데만 집중하다 보면 정작 내 쪽 입구가 무방비가 됩니다. 이 게임은 상대 진영에 도달하는 쪽이 이기는 구조라, 공격 속도만 올려 놓고 뒤를 열어 두면 한 번의 돌파로 끝나 버립니다.
원작을 알면 더 보이는 것들
등장하는 몬스터들은 유희왕 세계관에서 이미 익숙한 얼굴들입니다. 카드 게임에서 보던 이름이 주사위 게임의 말로 나와 판 위를 걸어 다니는 모습은, 원작을 아는 사람에게는 그 자체로 즐거운 구경거리입니다. 능력이 강한 몬스터일수록 부르는 조건이 까다롭게 잡혀 있다는 점도 카드 쪽 감각과 통합니다.
국내에서는 유희왕 애니메이션과 카드가 크게 유행하던 시기에 이 게임도 함께 알려졌습니다. 다만 카드 결투를 그대로 옮긴 작품들에 비하면 존재감이 옅었습니다. 유희왕을 기대하고 잡았다가 전혀 다른 규칙에 당황해 내려놓은 사람도 적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이 게임은 유희왕의 곁가지로 보기보다, 유희왕 옷을 입은 보드 게임 한 편으로 접근하는 쪽이 맞습니다. 한 판이 짧지 않고 생각할 거리가 꾸준히 나오기 때문에, 차분하게 판을 읽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오래 붙잡을 만합니다.